[노년반격] 인생의 두 번째 명함, 캘리그래퍼 '권도경'의 첫 봄

고석배 기자
  • 입력 2022.05.13 18:31
  • 수정 2022.05.15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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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는 그림을 꿈꾸고, 그림은 글씨를 닮고 싶고

처음이라는 막막과 혼자라는 적막을 이겨낸 이 은 따지고 보면 포기하고 싶을 때 한걸음 더 내딛던 그의 마음들이 이뤄냈다. 모든 상처들이 바람꽃으로 피었는가. 흡사 상투를 튼 듯 독특하고 불량스러운 외모와는 달리 그는 한없이 여리고 따뜻하다. 그는 하나의 호사도 혼자 누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거처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늘 그래왔듯 있는 대로 노래하고 술을 마시며 최고의 자리를 만들어 간다. 언젠가 그가 빚은 술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무슨 맛이었는지는 그의 전시를 보면서 그때쯤의 취기가 돌아야 언사가 가능할 듯하다. 아무튼 굉장했다~는 기억으로 그의 을 기다린다
- 최삼경 작가

(권도경 작가(57). 사진=권도경 제공)

낙원상가 옆에 '낙원'이 있다

[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허리우드극장에서 개봉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이미 스마트시니어 세대이다. 지금은 55세 이상, 입장료 2,000원의 실버영화관이 된 허리우드 극장은 낙원상가에 있다. 과거의 명성만은 못하지만 낙원상가는 아직도 대한민국 악기상가의 대명사다. 허리우드와 악기상가는 알지만 낙원상가가 원래 15층짜리 원조 주상복합아파트인 줄은 잘 모른다. 외형만 보면 상가 건물과 아파트 건물이 다른 건물로 보이지만 구조상 하나의 건물이다.

1층에 신호등이 있고 횡단보도가 있고 도로가 있는 낙원빌딩 옆 골목 허름한 건물에 또 다른 ‘낙원’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1층엔 아구찜, 2층엔 7080뮤직바가 있는 건물 5층이다. 이 ‘낙원’에 오르기 위한 급행 엘리베이터는 없다. 누구나 평등하게 걸어서 계단을 올라야 한다. 보통은 4층에서 사점(死点)을 느끼고 한번 쉰다. 숨을 몰아쉬고 5층에 오르면 두 개의 철문 사이로 포스터가 붙어 있고 각종 부조물이 걸려 있어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 지 예측불가인 곳에 다다른다. 용기있는 자만이 그 철문 중 하나를 열 수 있다. 하나의 문은 술집 ‘낙원’이고 하나의 문은 ‘음주도서관’이다. 주인은 같다. 주인은 꽁지머리다.

(음주도서관. 촬영=고석배 기자)

이 곳은 원래 광고회사 사무실이었다. 한때는 인쇄매체 광고쟁이들 사이에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강소(작지만 강한) 광고회사였다. 그 회사 대표는 지금의 ‘낙원’ 주인 권도경(57)이다. 그때는 꽁지머리가 아니었다. 광고회사 간판 대신 술집을 연 이유가 궁금했다. 주인은 빙그레 웃으며 아직도 자신이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문을 닫은 게 아니라 일이 사라졌을 뿐이라고. 그러고 보니 요즘은 기업체들이 사보도 만들지 않고 포스터나 청첩장 시장도 온라인으로 다 옮겨갔다.

(예약식 주점 '낙원'. 촬영=고석배 기자)

낙원의 밤은 짧아라

“어차피 평소에 술먹고 놀던 자리에 합법적으로 세금 내면서 해보자 해서 시작했어요. 뭐 전에도 불법은 아니었지만(웃음)... 그래서 인허가를 내는데 실사 나온 세무서 직원이 오히려 걱정하시더라구요. 여기까지 손님이 올라올까요 하면서”

사무실을 주점으로 만들겠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다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백 명 중에 백 명이 다 NO라고 해도 자신이 확신이 있다면, 그리고 실패하더라도 이건 필요하다 하면 실행에 옮기는 게 권도경대표가 살아온 삶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예약제 술집으로 오픈해 술은 무한대로 제공하고 1인당 입장료를 받는 [낙원]은, 팬데믹에서도 번호표를 받고 날짜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심지어 권리금을 주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공유주방처럼 하루를 통으로 빌려주는 ‘1일점장’ 상품은 특히 인기가 높다. 자기 공간에서 자기가 누군가를 접대하고 같이 어울리는 로망이 특히 은퇴 세대에게는 강하다고 한다. 젊은이들도 오면 2차를 가지 않는다. 아무리 산해진미 안주가 있어도 분위기 전환상 2차, 3차를 가는 게 한국형 음주문화인데 낙원에만 들어오면 갈 생각을 하지 않고 밤을 새기 일쑤다. ‘예약제’를 애초부터 마케팅 포인트로 잡았냐는 질문에 그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천국 아래 낙원의 옥상에서는 옛 허리우드극장이 보인다.  촬영=고석배 기자)  

일단 제가 자유롭고 싶었어요. 그리고 오는 손님한테도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때 와야 만족시킬수 있다고 봐요. 예약고객의 특성과 취향에 따라 매번 안주가 바뀌어요. 일반 주점과 다르게 최상의 재료와 서비스를 하려면 예약제가 좋아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시간에 구속 받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어요.”

 

광고 카피와 詩 사이, 캘리아트

권도경 대표가 정작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일까? [낙원]의 한쪽 벽을 뚫어 통하는 또 다른 공간 [음주도서관]을 보면 알 수 있다. 도서관이라 해서 책이 빽빽할 줄 알았는데 액자와 미완의 미술 작품들이 더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책도 술에 관한 저서보다 광고와 사회과학에 관한 서적이 더 많다. 그리고 만화책도.

한 발짝만 옮기면 권대표는 권작가가 된다. [음주도서관]은 캘리그래퍼 권작가의 작업실이다. [낙원]과 [음주도서관] 벽 사이에 큰 항아리가 하나 있다. 술독이다. 권작가는 얼마전 작고한 삼해주 인간문화재 김택상선생의 애제자이기도 하다. 그가 직접 빚은 술 때문에 낙원을 찾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술 빚는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술의 주인공은 만드는 자가 아니라, 마시는 자라는 그의 철학이다. 그에게 음주는 실천이다. 그래서 음주도서관 역시 자아실현을 위한 실천적 공간이다.

“제가 딱히 글씨를 잘 쓴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오히려 어릴 때부터 정자로 또박또박 쓰라고 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꼈죠. 대학도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정보를 자세히 알고 들어간 게 아니어요. 글 끄적거리는 걸 좋아하고 만화책을 좋아하던 평범한 청소년기였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어머니의 제 태몽에 어린 동자가 무슨 글씨를 쓰는데 신선이 지긋이 내려보고 있더래요. 지금 와 생각하니 묘해요

(버들, 권도경 작. 촬영=고석배 기자) 

그는 캘리그래퍼 세계에서 나름 유명 작가이다. 인생이모작으로 늦게 출발해 신인딱지가 붙지만 작년 영구(YOUNG 9)전에서는 기존작가들로부터 “작품을 보고 있으면 현기증이 난다”는 평을 받았다. 처음엔 그림이 좋아서 보다가, 글씨를 보게 되고, 내용을 읽다 보니까 너무 아름다워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표현한 듯하다.

작년에는 ‘사람 사는 세상 전(展)’에 초대되어 많은 취재진들과 대선주자급 정치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프닝 행사도 했다. 음악에 맞추어 춤추며, 큰 붓으로 대형 글씨를 쓰는 퍼포먼스의 주인공이었다.

(2021년 사람사는세상 오프닝 퍼포먼스. 사진=권도경 제공)

정체성 선언...권도경의 '첫봄'

권도경 작가는 5월 21일부터 6월 1일까지 목동 구구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많은 공동전시회도 참여하고 10여년전부터 개인전도 몇 번 치루었는데 굳이 ‘첫’ 개인전이라 명명한 이유가 궁금했다.

“전시가 처음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작가로서의 제 정체성 선언입니다. 예전에는 특기로 아트를 하는 직장인이었다면 이번에는 정말 제 나름의 철학을 갖고 직업으로서 ‘작가’로 살겠다는 시작점입니다.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제 작품세계가 더욱 새로워질 거라고 스스로의 기대도 갖고 있습니다”

(손수 만든 '첫 개인전' 포스터. 촬영=고석배 기자) 

[낙원]에서 술마시다 영감이 떠올라 [음주도서관]으로 가 글씨를 쓰면 예전에는 원하는 벗들에게 작품을 주기도 했다.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작가 자신이 100% 흡족하지 않으면 낙관을 찍어 줄 수 없는 프로 작가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잡지사 디자이너 명함으로 창간 때마다 스카우트 되어간 그는 30대에 일찍 독립해 광고쟁이로 잔뼈가 굵었다. 뺑소니 교통사고로 몇 개월간 의식을 잃고 깨어나서도 견적서부터 찾은 일중독이었던 그의 두 번째 명함의 색깔도 많이 바뀌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의 행복을 저당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제 제가 쓴 작품에 이런 글을 썼어요. ‘순간을 살아도 재미가 있으면 낙원이고, 영생을 누려도 재미가 없으면 형벌이다’ 특히 인생 이모작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동안 경쟁 속에서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이제 주변도 둘러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일을 했으면 하고요. 내가 행복해야 남들도 행복하거든요.”

(산이 된 사람, 권도경 작. 촬영=고석배 기자) 

직장을 다니고 사업체를 운영 할 때보다 권작가의 현재 수입은 열악하다. 차도 팔고 아파트도 이제 없다. 그래도 그는 지금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한다. 그의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사유한 철학의 정립 과정 없이는 힘들었으리라. 그의 첫 개인전 부제 역시 ‘사유의 흔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유 없는 예술은 기술일 뿐이고, 노동이 결여된 예술은 허위이다.’

(직접 술 빚는 권도경 작가. 촬영=고석배 기자)

사유 없는 예술은 기술일 뿐이고, 노동이 결여된 예술은 허위

권도경 작가에게 ‘술이 좋아요? 예술이 좋아요?’라는 뻔한 질문을 하였다.

“정말 ‘엄마가 좋아요? 아빠가 좋아요?’같은 질문이네요. 술과 예술은 별개가 아니라 생각해요. 술을 좋아하는 저도 혼자서는 막걸리 한병도 버거워요. 술과 예술이 사실 혼자서 즐기고 만들어지는게 아니거든요. 사회 속에서 소통하고 영감을 얻어 작품이 만들어지고 그 작품으로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해주 듯, 술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경계를 풀어주고 다리를 놔주는 역할을 하니까요. 한마디로 술과 예술은 ‘관계와 소통’에서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어요”

(자신이 만든 술에 자신이 쓴 술병 라벨. 촬영=고석배 기자)  

 권도경 작가는 다음 발걸음으로 민속주 전시회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한다. 인생 이모작으로 예술을 선택했지만 농사를 하나 더 짓는다면 10년전에 비영리단체로 만든 ‘통일나무 한그루’를 키우고 싶다고 한다. DMZ에서 음악회도 하고, 청소년캠프도 하고, 제기차기도 하며 우리 민족 원래의 본질을 미래 세대에게 돌려주고 싶은 게 또 다른 소명이라고 한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설렁설렁 해보이는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그의 인생 철학만은 즉자적이지 않고 다 계획이 있었다. 대자적이었다. 2022년 봄, 우리 곁에 '작가'가 한 명 산을 들고 성큼 다가온다.   

('사람사는세상전' 출품작, 노공이산. 촬영=고석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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