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가리골목 터줏대감 '을지OB베어'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2...’을지OB베어'를 지키는 사람들

고석배 기자
  • 입력 2022.06.09 17:29
  • 수정 2022.06.2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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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21일 새벽

백년을 가라고 백년가게로 지정된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을지OB베어‘ 간판이 내려졌다.

그후 50일동안 ’을지OB베어‘ 맞은편에서

’을지OB베어‘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매일 마다 ’만선호프 불매‘ 문화제를 한다.

’을지OB베어‘가 사라지면 자신들도 사라진다는 절실함에

집회는 쉽게 끝나지 않을 듯하다.

(철거된 '을지OB베어'에 시민들이 종이간판을 붙여 놓았다. 사진=을지OB베어 공대위 제공)

백년가게의 간판이 내려지다

코로나에 의한 영업제한이 막 풀리는 시점이었던 그날은 을지OB베어 안에 창업주의 손주를 비롯해 3명이 가게에서 잠자고 있었다.

“3명이 70명을 어떻게 막습니까? 우리 아들을 아스팔트에 내팽개치고 목을 누르고 아스팔트에 찍게 하고 본능적으로 다시 가게를 지키려 달려가면 붙잡혀 바지가 벗겨지고 아스팔트 바닥에 팬티바람에 질질 끌려다니고,,, 저는 지금도 너무 잔인해 그날 새벽 CCTV 영상을 볼수가 없어요”

최수영 사장은 야간강제집행 당하던 그날을 떠올리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 얼마전에는 김종일 대책위원장 문병을 갔다고 한다. 자신을 알아 보고 아무말도 없이 있는 힘을 다해 손을 꽉 쥐는 김종일 위원장을 보고 최수영 사장은 다짐했다. 을지OB베어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기에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피켓을 들고있는 최수영 대표. 사진=을지OB베어 공대위 제공)

백년가게를 지정한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인 간의 문제’라 개입할 수 없지만 다른 곳으로 옮겨도 백년가게 지정은 유지해주겠다고 건조하게 답변했다. 서울미래유산을 지정한 서울시도 마찬가지였다. ‘사인 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건물주 하고 임차인의 얘기가 나오면 그냥 ‘사인 간의 문제’라 단정해요 그렇게 생각하는 시민들이 실제적으로는 어떠한 충분한 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자기도 어렵게 직장 생활 하고 있고 몇십년만에 어찌어찌 집 장만 하는 소시민인데 건물주하고 임차인의 문제가 닥치면 아주 체념하고 판단을 빨리해요. 그거는 아니죠.

같이 투쟁은 못해주더라도 ‘이거는 상식적이고 건전한 사회가 아니네’하고 아픔을 이해해주고 공감만 해주더라도 사회에 어느정도 반향을 일으켜 변화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 을지OB베어 최수영 사장

최수영 사장은 자신은 만선호프 개인과 싸우는게 아니라한다. 요구조건의 구호도 함께 ‘상생하자‘이다. 그는 중견 건설회사를 퇴직하고 인생이모작으로 아내와 함께 2013년부터 장인의 호프가게를 물려받았다. 가게 안의 오레된 그릇 하나도 쉽게 바꾸지 않고 없는 사람들을 위한 가게가 되어야 한다는 창업주의 정신마저 온전히 지키려고 그 흔한 치킨메뉴조차 추가하지 않았다. 바뀐 거라고는 밤 10시 마감을 11시로 연장한 거 하나였다. 장인이 살아계시는 동안만이라도 그 자리를 꼭 지키고 싶었다.

( 시민들의 응원메시지. 촬영=고석배 기자)

외국의 노포 보호제도 사례

백년가게나 서울미래유산 같은 노포에 대한 정책은 여러나라에서 먼저 시행되고 있다. 일본은 이미 100년전부터 노포보호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도 1956년 이전에 생긴 가게는 라오쯔하오(老子號)를 부여하는 노포 보호제도가 있다. 일본, 프랑스, 영국에서는 건물주의 사정으로 임차인이 퇴거하면 그 손해를 건물주가 온전히 지도록 하는 ’퇴거보상제도‘가 시행 중이다. ’술기로운 생활‘ 유튜버 진행자로 을지OB베어 7년 차 단골이라는 고상균 씨는 외국의 예를 들어 한국도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불평등은 상생이 아니기에 건물주의 권리만큼 임차인의 권리도 찾아주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프랑스나 일본의 경우는 노포에 대한 보호법안이 마련되어서 건물을 부순다거나 매각해버린다거나 할 수 없게 되어 있어요. 건물주와 분쟁이 발생할 때도 노포로 선정된 가게는 쫒겨나지 않게 지자체나 국가가 나서서 조정하도록 되어 있고요.

그러나 한국은 건물주가 되면 재산권행사라는 명목으로 다 해버리고 국가에서는 힘도 못 써요. 뒷짐만 지고 있다는 거죠. 사실 재산권도 중요한 권리이긴 해요. 그걸 무조건 막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해보면 이 허름한 건물의 가치를 건물주가 만든 건 아니잖아요.

오래도록 장사하신 분들에 의해서 건물 가치가 상승한 건데 그 상승분은 고스란히 건물주가 챙기고 임차인이 쌓아온 그 역할의 가치는 평가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게 문제예요.”

- ’술기로운 생활‘ 유튜버 고상균

(’술기로운 생활‘ 유튜버 고상균. 촬영=고석배 기자)

100년 가게는 100년을 갈 수 있을까?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영업의 비율이 가장 높다. 경제활동 인구 중 28%가 자영업에 종사한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통계 에 의하면 전체 자영업자 가운데 30년 이상의 자영업자는 전체의 3.5%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50년 이상은 0.1%이고 100년 이상 된 가게는 27개로 불과 0.001%이다. 100년 된 가게가 이미 3만 개가 넘고, 200년 된 가게도 1만 개가 넘는 일본과 확연히 비교된다.

이러한 '다산다사(多産多死)'형 구조를 극복하고 노포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겠다는 것이 백년가게 사업이고 서울미래유산 사업이다. 하지만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선정에만 급급하고 선정이후 유지관리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백년가게특별법도 국회에서 잠들고 있고 정부는 뾰족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백년가게는 오십 년도 못 넘기고 죽어가고 있다. 일본 관광객에게 조차 비빔밥으로 소문났던 명동 ’전주중앙회관‘은 문을 닫았고 서울 중구의 '금강 보글보글 섞어찌개'도 폐업했다. 종로구의 ’동헌필방‘은 카페로 변했고 강남구의 대형버스를 개조한 ’영동스낵카‘와 관악구의 ’콜롬버스스낵카‘는 재개발로 인해 결국 고철이 되었다. 헌책방 1세대인 공씨책방은 건물주에 쫒겨 청계천에서 광화문, 신촌 등을 돌다 결국 책의 일부를 버리고 성수동의 지하로 들어가 끈질기게 버티고 있지만, 1955년에 신발 판매점으로 개업한 프로월드컵(구 서울고무상사)은 건물주에 쫒겨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결국 폐업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대형 커피체인점 할리스가 들어섰다.

(만선호프 불매 문화제. 촬영=고석배 기자) 

문화적 가치와 자본의 가치

’문화적 가치‘는 결국 ’경제적 가치‘의 자본논리에 이길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옛 을지OB베어 맞은편에서는 매일 밤 ’문화제‘가 열린다. 어느 날은 콘서트를 하고 어느 날은 시낭송회를 한다. 디스크쇼가 있는 날은 신나는 신청곡과 함께 흥겨운 춤판도 벌어진다. 을지OB베어를 힙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공대위(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매일밤 저항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문화제가 끝나면 을지로 노가리골목을 행진도 하고 피케팅도 한다. 그들은 노가리 골목이 을지OB베어의 거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상생의 거리이고 우리 모두의 거리임을 주장한다. 매일밤 자발적으로 문화제에 참가하는 대부분은 42년 을지OB베어보다 나이가 어린 20, 30 MZ세대이다. 그들은 을지OB베어의 노가리보다 치즈와 소시지를 더 좋아하는 단골들이었고 그곳의 알바생들이었고 그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슬퍼하지만 울지 않는다. 그리고 행진하며 힙지로를 가득메운 동년배 MZ세대에게 이렇게 외친다.

“여러분 저희는 이상한 사람들 아닙니다... 그렇게 지켜왔던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란 이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슬퍼서, 그렇게 사라지다가 우리도 사라질까 봐, 서울에서 장사하는 모든 가게들이 쫒겨날까 봐 그게 두려워서 모였습니다.”

(문화제 후 행진 모습. 촬영=고석배 기자)

힙지로의 그루터기

힙지로는 새롭고 개성 있다는 뜻의 '힙(hip)과 을지로의 '지로'가 합쳐진 말이다. 힙지로는 옛(Retro)것과 새(New)것이 만나 어울리는 뉴트로이기도 하다. 코로나 규제가 풀리면서 오후 6시가 되면 힙지로 골목 가게마다 줄을 서는 모습이 장관이다. 7시부터 야외 테이블에서 힙한 야장을 즐기기 위한 대기줄이다. SNS를 통해 이곳을 알고 대학동기들과 모임을 갖기 위해 원주에서부터 올라왔다는 H대학교 4학년 황00군은 현장에 와서야 을지OB베어의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한다.

“만선호프가 되게 많잖아요. 한 술집이 거리를 다 차지 하는 것 보다도 여러 술집이 있는 것도 저희 입장에서는 다양하게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것 같아서 좋은 거 같아요. 그래서 좀 자제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 H대학교 4학년 황00 군

(지나가는 시민들의 응원품. 사진=을지OB베어 공대위 제공) 

을지로 노가리골목이 젊은이들의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며 핫해진 이유는 공구, 타이어, 용재, 인쇄, 타일 등 다양한 업종이 섞여 거리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힙지로가 자본에 의한 단순화로 젠트리피케이션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홍대, 북촌, 경리단길, 망리단길, 대학로, 연남동 최근에는 성수동까지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그 거리를 만든 주인공들이 밀려나고 있다. 우리는 피맛골을 하나의 세련된 현대식 공간에 옮겨놓아도 브랜드만 남겨두면 별일 없을 줄 알았다. 결과적으로 지금 피맛골을 찾는 젊은이가 얼마나 있는가?

주변에선 ‘을지OB베어’를 지키는 사람들이 저러다 제풀에 지치겠지 하지만 그들은 지치기보다 시민들이 응원으로 가지고 오는 박카스를 마시며 갈수록 생기가 돋는다.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문화제도 점점 다양해지고 시스템화 되간다. 매주 화요일에는 정기 강연회가 있고 수요일에는 기도회가 있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라이브라디오쇼도 진행한다. 6월 7일에는 ‘노포의 장사법’ 저자 박찬일 셰프가 첫 강연을 했다. 그는 강연에서 '노포는 공공재이기에 마음대로 없앨 수 없다'고 했다. “노가리골목에서 장사하는 사람들과 이곳을 오가는 시민들은 42년전, 이곳에 처음 생맥주와 노가리를 팔기 시작한 ‘을지OB베어’에 빚을 졌다”고 말했다.

(박찬일 셰프 강연회. 사진=을지OB베어 공대위 제공)

다양성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 ‘만선호프’에도 크고 멀리 볼 때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을지OB베어’를 지키는 사람들은 다양성을 지키는 게 상생의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듯하다. 을지OB베어가 사라지면 자신들도 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도 진행한다. 을지OB베어를 지키는 사람들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노인과 노포는 시대의 그루터기이다. 그루터기는 힘들면 제일 먼저 찾는 빈 의자이다. 청년은 노인을 존경하고 노인은 빈 의자처럼 청년을 포용해야 한다. 노포가 단지 추억의 장소가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소통의 장이 되어야 한다. 노인과 노포가 맘 편히 쉴 수 있는 그루터기로 남아 미래 세대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을지OB베어’가 다시 지도에 표기되어야 한다.

(절실하게 상생을 호소하는 시민. 촬영=고석배 기자)

 

[기자수첩] 노가리골목 터줏대감 '을지OB베어'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1..."을지OB베어가 사라지면, 우리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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