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시니어] 시니어 파워포인트로 이모작을 시작하다...시니어 전문 강사 김미영

고석배 기자
  • 입력 2022.06.14 17:03
  • 수정 2022.09.0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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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냥 취미 삼아 ‘문서작성’을 배우고 싶어 신청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막상 수업 시간에 만나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경력 단절 여성이나 퇴직하신 분들이 재취업을 하기 위해서 또는 창업하기 위한 사업제안서를 만들기 위해서 배우는 경우가 많았어요. 현재 직장을 다니면서 젊은 직원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찾아오는 경우도 있고요. 거의 일과 관련한 사유로 ‘문서 작성 과정’을 신청하더라고요”

(파워포인트 강의를 하는 김미영 강사. 촬영=고석배 기자)

[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시니어 전문 문서작성 강사 김미영 씨는 자신에 대한 수식어로 ‘시니어 전문’이란 표현을 부담스러워 한다. 어떤 소명감보다는 우연한 기회에 ‘50플러스센터’와 연결되어 시작했기 때문에 별로 내세울 게 없다 겸손해하지만, 그녀는 이미 시니어용 ‘눈이 편한 파워포인트, 한글, 엑셀’ 시리즈를 출판한 장본인이다. 또한 컴퓨터 전문서적으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000 무조건 따라 하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유리천장 밖에 길이 있었다

그녀의 학창시절 꿈은 디자이너나 프로그래머였지만 막상 대학은 경영학과를 진학하였다. 졸업 후에는 출퇴근 전쟁과 월급날, 보너스를 기다리는 전형적인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 일을 배우느라 정신없었지만 당시 대부분 문서가 수기나 타자기로 입력된 것들이라 짬짬이 컴퓨터로 문서화 하는 일이 즐거웠다. 한글 프로그램이 생겨 한참 센세이널을 일으키고 지금의 엑셀과 비슷한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이 있던 시절이었다. 회사에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만들었다.

그렇게 직장에서 인정받아갈 때쯤 그녀가 롤모델로 생각하는 직장 여자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상사부터 동료직원까지 모두가 일 잘한다고 칭찬일색이었다.

“그런데 그 언니나 저나 하는 일은 비슷하더라고요.. 저 모습이 내 10년 후의 모습인가? 라는 생각을 하니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일부 상사들이 ‘미스킴’하고 부르는 소리가 듣기 싫더라고요”

사회생활에서 여자로서의 ‘유리천장’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윈도도 없던 시절 독학으로 컴퓨터 공부를 하였다. 프로그래밍도 따로 배워 정보처리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엑셀, 파워포인트 같은 프로그램은 초창기라 가르쳐주는 곳도 없고, 책도 없었다. 프로그램이 출시되면 혼자서 끙끙 앓으며 밤을 새워 익혔다. 좌충우돌이었지만 그렇게 막 써보면서 익혔던 경험이 후에 책을 쓰고 강의하는 데 도움이 됐다. 모르는 사람의 답답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 김미영 강사. 촬영=고석배 기자)

'역지사지'에 답이 있다 

“제게 배우는 사람들은 무척 다양해요. 시니어 수강생들은 살아온 이력이나 직업들이 정말 다양해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 입장에서 역지사지를 해요.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을 하는 거죠. 저도 처음 배울 때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내가 맨 처음에 ‘이게 참 이랬는데, 이게 답답했었는데...’ 하던 생각을 잊지 않고 기억해내는 거예요. 역지사지를 하지 않으면 초등학생 강의나  시니어 대상 강의나 똑같아져요. 가르치는 내용이 같다고 강의가 똑같으면 죽은 강의예요. 아이와 어른의 관심 사항이 다르듯이 예제도 당연히 달라져야지요.“

그녀는 시니어 대상 강의에서 역지사지를 가장 중요시 한다. ‘역지사지’는 30년 가까이 강사 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노하우이기도 하다. 50플러스 강의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개중에는 괴팍한 수강생도 있었다. 자신도 ‘라떼는~’이라는 말이 나오면 뜨끔한 세대가 되었지만 소위 ‘꼰대’ 같은 수강생을 만날 때는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런 분들이랑은 일단 친해지려고 애를 써요. 그분들은 본인을 알아주기를 원하시는 것이거든요. 그분들은 대체로 선입견을 품고 계시는 경우가 많아요. 강의와 상관없는 내용을 물어보면서 강사들 다 거기서 거기다. 알지도 못하면서 강의한다면서 막 자기 말만 하시더라고요. 수업에 관련 없는 질문이지만 제가 엄청 시간을 들여 자료를 찾고 다음 시간에 알려드렸어요. 그 이후로는 굉장히 친절하시고 달라지셨어요. 얘가 내 말을 안 무시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셨나 봐요. 그러니까 비록 퇴직자이지만 과거의 자신의 캐리어를 존중 받고 싶으셔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해요.

( 수강생의 질문을 받는 김미영 강사. 촬영=고석배 기자)

두근거리는 시니어 강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강의하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보람 또한 더 크다고 한다. 그녀가 시니어를 대상으로 처음 강의를 시작하는 날 정신이 번쩍 났었다. 자신의 강의를 듣기 위해 두 시간 가까이 대중교통을 타고 오는 수강생들이 하나라도 놓칠세라 깨알같이 강의를 받아 적는 모습, 돋보기를 썼다 벗었다 하면서 쉬는 시간까지 연습하는 모습, 끝나고도 계속 질문하시는 모습들을 보고 ‘아! 정말 제대로 좋은 수업을 해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서도 시니어 학생들의 생각에 가슴이 계속 두근거렸어요. 저한테는 참 기쁘고 신선한 두근거림이었어요.

시니어 전문 문서작성 강사 김미영 씨가 보람을 느낄 때는 여느 강사와 같다. 자신에게 수업을 듣고 배운 내용을 활용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보험회사에서 일하던 분이 어느 날 핸드폰에 담긴 후배들의 엑셀 사진을 보여주며 자신도 이렇게 만들고 싶다고 부러워했다. 과정이 끝나갈 무렵 “제가 엑셀로 이렇게 업무 문서를 만들어 출력까지 했어요!”하면서 너무 기뻐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또 한번은 만학도로 대학원에 입학해 문서작성 때문에 고민하던 분이 중간고사 과제를 만들어와 “저 잘했죠?” 하면서 자랑하던 모습도 기억난다고 한다. ‘SNS 활용’ 강의 때는 예비 사위에게 딸의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사진을 편집해서 보여주셨던 분도 계셨다. 시니어 세대는 배움의 소중함을 알기에 배움의 즐거움은 오히려 아이들보다 더 아이들 같이 기뻐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시니어 세대와의 수업은 늘 보람차다.

(서초50플러스, 강의 들어가기 전 김미영 강사. 촬영=고석배 기자)

시니어 대상 강의 비법

그녀는 50플러스센터에서 제법 소문난 인기 강사이다. 그녀에게 시니어 세대를 위한 특별한 강의 비법을 물어보았다.

“특별히 비법이라기보다  시니어 대상 수업에서 제가 꼭 넣는 부분이 있어요. 바로 지난 시간  복습 타임이죠. 수업 시작하면서 "지난 시간 배운 내용 연습해 보셨나요?"하고 여쭤보면 “하나도 생각이 안 나요.” 하는 대답이 많이 돌아오거든요. 그럴 땐 “괞찮아요! 제가 있잖아요”하면서 지난 내용을 다시 한번 훑어보곤 해요. 그 시간이 참 중요해요. 진도 위주로 수업하지 않고 느리지만 확실히 알고 가야 해요. 그게 나중에 뒤돌아 오는 것보다 빠르거든요. 수강생들도 그걸 원하고요. 그래서 그런지 제 수업을 들으면 마음이 다들 편하대요

컴퓨터를 다루는 직업은 데이터의 인풋이 들어가야 아웃풋이 나오는 맺고 끊는 게 확실한 직업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이과와 문과의 중간이라고 한다. 컴퓨터 강사라는 직업은 수업 내용은 이과이지만 대상은 사람이기에 인문학적인 소양도 갖추어야 하고 파워포인트 등을 가르칠 때는 창의력 있는 예술적 감각도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녀는 또한 강사이기 전에 저술가이기도 하다.

제가 한참 책을 많이 쓸 때는 엑셀을 네 개 출판사에서 냈어요. 그런데 내용이 그 내용이잖아요. 출판사가 다르니까 다 다른 예제로 다 다르게 접근해서 만들어야 하므로 창의적이지 않으면 안 돼요. 그래도 엑셀과 파워포인트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파워포인트가 편 한 것 같아요. 엑셀은 왠지 딱딱하고 완벽해야 하지만 파워포인트는 디자인의 변화가 무궁무진하고 자유롭거든요. 아마도 어렸을 적 디자이너의 꿈이 잠재된 것 같아요.

(수업 지도하는 김미영 강사. 촬영=고석배 기자)

문서 작성은 인생 이모작의 첫걸음

그녀는 남매를 두고 있다. 일의 연장이라 생각해서인지 자녀들에게 특별히 컴퓨터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군대 간 아들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컴퓨터 활용을 제법 한다고 살짝 자랑하는 그녀 또한 50플러스 세대이다. 나이는 적지만 남들보다 퇴직을 빨리했기에 인생 이모작을 먼저 걸어온 선배로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저 같은 경우도 새로운 일에 대한 확신이 잘 서지 않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그런데 한발 한발 걸어가니까 어느덧 제 길이 생겨나고 그 길에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더라구요. 나이나 시기를 따지기보다는 내가 그 일을 정말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그에 대한 답이 있다면 일단 한 발 내딛었으면 해요. 한 걸음이 두 걸음 되고 두 걸음이 세 걸음 되지만 문제는 한발 떼기까지의 결심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시니어 세대에게 ‘워드’ 좀 친다는 말은 문서작성을 할 줄 안다는 의미가 아니라 타자 좀 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부터 세대 차이가 난다. 아날로그 세대를 거치지 않은 세대는 타자나 워드프로세서를 모른다. 컴퓨터가 막 나오고 도스가 윈도가 되고, 사무실의 데스크탑이 노트북으로 바뀌는 동안 회사의 중역까지 오르고 퇴직한 지금의 시니어 세대는 인류역사상 가장 큰 변화의 한 가운데 있던 ‘낀세대’이다.

그들이 변화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후배 세대들이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혼자가 되었다. 간단한 문서 하나야 작성할 수 있겠지만 복잡한 엑셀의 수식 계산이나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멋진 파워포인트 기획안은 이제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여기서 막힌다. 경력단절 50플러스 여성은 더하다. 젊은 날 직장을 다니다 결혼과 육아로 세상이 디지털로 변한 건 아이들을 통해서야 겨우 체감할 뿐이었다. 자녀를 다 키우고 남편이 퇴직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에서 무엇인가 하고 싶어도 ‘문서작성’ 앞에 큰 절벽을 만난다.

(수업 준비 중인 김미영 강사. 촬영=고석배 기자)

'이웃'같은 강사의 꿈 

김미영 강사는 인생 이모작이 막연할 때는 서두르기보다 첫걸음부터 떼기를 권한다. 그 첫걸음은 ‘문서작성’이 될 수 있다. 옆에서 지켜본 수강생들이 워드에 능숙해지고 엑셀 연산과 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이 낯설지 않아지면 얼굴이 밝아지고 일상에 자신감도 생기는 걸 자주 보았다 한다. 어쩌면 인생 이모작의 시작은 자신감 세우기부터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게 더 많아요. 자기 발전을 위해서 배움과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수강생들이 너무 보기 좋고 멋져 보이거든요. 롤모델로 삼고 싶은 수강생들도 많으세요. 지금 당장은 그분들의 인생 이모작 시작에 도움이 되도록 저도 열심히 성장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도 제가 관심 있던 새로운 분야에 대해서 시간을 투자해 배워보고 싶어요. 생각해 둔 것도 있고요. 요즘 좋은 강좌들 많더라구요!

그녀는 강사라는 직업을 한마디로 ‘이웃’이라고 정의한다. 이웃이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게 진짜 이웃이고 또 그 이웃에게 도움을 받듯 자신도 가르치면서 많이 배웠다 한다. 그리고 새로운 각오도 하게 되었다. 일찌감치 인생 이모작을 시작한 김미영 강사의 인생 삼모작 프로젝트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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