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투어] 오정해 '동백꽃 피는 날' 대학로 입성... 4·3역사 차분하게 노래하는 뮤지컬
[컬처투어] 오정해 '동백꽃 피는 날' 대학로 입성... 4·3역사 차분하게 노래하는 뮤지컬
  • 고석배 기자
  • 승인 2022.06.25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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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의 4월, 차가운 땅에 떨어져 있는 동백꽃. 촬영=고석배 기자)

[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동백꽃은 꽃잎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꽃송이 채 온몸으로 툭 떨어진다. 한창 피어나는 계절 4월에 지상으로 낙화하는 동백꽃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다른 꽃말이 있다. 육지 사람들이 그 꽃말을 물어도 제주 사람은 입을 닫는다. 말만 해도, 아니 슬퍼만 해도 죄가 되는 세월이 있었다.

(꽃이 피지 않는 동백 나무. 촬영=고석배 기자)

제주에는 그 세월 동안 떨어질 꽃마저 피지 않는 동백나무가 한그루 있다. 급기야 그 소문은 서울의 유명 방송국 ‘세상에 이런 일이’ 제작팀에게까지 알려진다. 그러나 그 나무는 제주의 어디에 있는지 소문만 무성할 뿐 알 수가 없다. 잘하면 특종을 잡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방송국은 방송 작가를 출장 보낸다. 할아버지 고향이 제주라지만, 그 작가는 태어나서 제주가 처음이다. 두말할 필요 없는 한국 최고의 관광지, 제주도 출장에 MZ세대 막내 작가는 불만이 많다. 아무리 좋은 풍광도 ‘일’로서 가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일’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작가 앞에서 벌어지고 마는데...

(뮤지컬 '동백꽃 피는 날'. 촬영=고석배 기자)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고, 말을 낳으면 제주로 보내라”라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사람이 아니라 ‘뮤지컬’ 한편이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입소문이 대학로까지 퍼져 특종처럼 서울로 올라 온 이 뮤지컬은 ‘동백꽃 피는 날’이다. 2021년 쇼케이스 공연을 거쳐 올 4월에 서귀포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성황리에 초연을 마친 창작 뮤지컬 ‘동백꽃 피는 날’은 7월 6일까지 대학로 SH아트홀에서 공연한다.

(포스터=메가기획 제공)

세상에 70년 동안 살아있는 나무가 꽃을 피우지 않는 경우는 없다. ‘꽃 피지 않는 동백꽃’은 비현실적인 허구이다. 흔한 문학적 표현일 뿐이다. 제주 4·3 창작 뮤지컬 ‘동백꽃 피는 날’에 는 이 ‘꽃 피지 않는 동백꽃’이 등장한다. 관객들은 처음부터 설정임을 눈치챈다. 관객들이 살아온 세상에서 상식과 과학을 넘어서는 일은 예술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관객들은 뮤지컬의 스토리가 전개 되면서 4·3의 장면이 한번쯤은 나오리라고 예측한다. 기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불편한 진실은 말 그대로 불편하다. 하지만 ‘동백꽃 피는 날’의 압권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굳이 눈을 가릴 필요가 없다. 관객들의 예상을 단숨에 무너트리고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처절하게,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선명하게 각인되는 4·3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단 5분간의 시간 동안 관객은 자신의 그림자를 밟고 과거의 시간으로 초대된다. 최면에 빠진 관객에게 제정신으로 돌아오라고 배우들은 열심히 관객을 웃긴다. 연기에서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연기가 더 힘들다고 했던가?

(뮤지컬 '동백꽃 피는 날'. 촬영=고석배 기자)

한 번도 울거나 슬퍼하지 않는 극 중 역할이 있다. 주인공이 아니면서도 어느 드라마에서나 설정되는 감초 같은 역할의 ‘개똥이’다. 개똥이 역을 맡은 배우 ‘김하정’은 꼰대 아빠를 둔 MZ세대이다. 꼰대아빠의 이름은 “묻고 따블로 가”의 배우 김응수이다. 그녀는 공연 내내 가장 힘든 건 슬픈 장면에서 슬퍼할 수 없는 거라고 한다. 공연 연습 때도 “네가 울면 관객들이 안 운다”는 연출의 꾸지람을 듣곤 했다.

( 개똥이 역을 맡은 김하정 배우. 사진=메가기획 제공)
( 개똥이 역을 맡은 김하정 배우. 사진=메가기획 제공)

제주에서 공연을 연습하던 중 쉬는 날 한번은 무대의 배경이 되는 북촌리 너븐숭이 기념관을 가게 되었어요, 그곳 추모비석에 이름과 나이가  써있는데 이름도 없는 두 살자리  아기를 발견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사실 저도 공연 전에는 잘 몰랐지만  우리나라는 참 아픈 이야기가 많은 나라잖아요. 알 기회도 별로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저희  MZ세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햇던 게 더 큰 것 같아요. 저희 공연 뿐 아니라 기회가 된다면  MZ세대들이 과거의 아픈 역사에 한번쯤 관심을 갖고 찾았으면 좋겠어요.        

- 배우 김하정(개똥이 역)

(배우 김응수와 그의 딸 김하정. 촬영=고석배 기자)

‘동백꽃 피는 날’의 최대 반전은 관객의 상식과 과학을 뛰어넘는 데에 있다. ‘꽃피지 않는 동백나무’에 다시 꽃이 피는 것이다. 자칫 관객은 뒤통수를 맞았다고 흥분할 수도 있다. 4·3이라는 엄중한 역사 현실을 이렇게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으로 처리하다니... 그러나 성급하지 마시라! 이는 실화이다.

(성산포 광치기 해변의 돌담. 촬영=고석배 기자)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한다는 성산포에 가면 ‘광치기 해변’이 있다. 올레길 1코스의 마지막이자 한국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첫 해돋이의 마술적인 광경을 보러 오는 곳이 여기다. 유럽 최대잡지 ‘GEO’는 제주 기행문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 갑갑하게 하는 이유다. 
오늘날 이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광치기 해변’이란 ‘관을 가지고 가족을 기다리는 해변’이란 의미이다. 70년 전 어느 날 한 아이가 어미의 몸 위에서 젖을 물고 울고 있었다. 생후 17개월이었다. 어미는 총에 맞아 죽어 있었다. 총알은 모래밭을 울며 기어 다니는 아이에게도 향하였다. 기적같이 마을주민은 살아있는 이 아이를 발견하였다. 그 아기의 이름은 오인권. 이는 실화이다.

('동백꽃 피는 날' 연출 김재한 감독. 촬영=고석배 기자)

‘동백꽃 피는 날’은 판타지 리얼리즘 뮤지컬이다. 현실과 초현실의 위험한 경계를 김재한 감독의 연출력으로 뛰어넘었다. 김재한 감독은 '손 없는 색시’(2019), ‘창업’(2021) 등 대학로에서 굵직한 뮤지컬을 제주도 출신 작곡가 김경택과 함께 만들었다. 그는 평소 ‘인생은 아름다워’, ‘택시운전사’, ‘아이캔스피크’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 그는 역사앞에 비켜서지 않고 기꺼이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가 연출한 창업 또한 역사극이었다. 그는 역사를 무겁게 바라보기보다 침착하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를 약간은 우회적일지 모르지만, 아이캔스피크에서 나문희 선생님이 상을 여덟 개 받았어요. 그렇게 되니까 살아남잖아요. 기억에 남게 되고요. 너무 역사는 무겁다는 생각 보다는 침착하게 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마전  4·3 유족분들도 서울까지 올라와 공연을 보았어요. 저는 그분들을 이 공연으로 감히 위로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잊지 않겠다. 꼭 기억하고 전하겠다"고 약속드리고 싶었어요. 

- 김재한 감독

(뮤지컬 '동백꽃 피는 날'. 사진=메가기획 제공)

 

(뮤지컬 '동백꽃 피는 날'. 사진=메가기획 제공)

김재한 감독은 ‘동백꽃 피는 날’을 직접 대본으로 쓰고 제작하면서 가장 중점에 둔 부분은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출한 지점이다“고 말한다. 연출자의 대답으로서 당연한 듯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 ‘많은 사람’이란 부분의 의미는 다르다. 극중 분임할머니와 아들 춘식, 그리고 방속작가 연수가 나오는 장면이 있다. 1세대와 2세대 그리고 3세대이다. 1세대의 슬픈 이야기를 직접 곁에서 보고 자란 2세대가 자기 자식 세대에게 전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3세대는 왜 알려주지 않았냐 항변한다. ”몰랐어요! 알려주지 않았으니까요. 학교에서도 배운 적이 없었으니까요.“ 김재한 연출가는 이 장면이 '많은 사람'에게 던지고 싶은 함축적 메시지라고 말한다.

(뮤지컬 '동백꽃 피는 날'. 촬영=고석배 기자) 

한편 ‘동백꽃 피는 날’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많은 여배우들이 뮤지컬 배우 채연정과 함께 이 작품의 '분임할머니' 더블캐스팅에 욕심을 냈다. 나문희, 양희경, 윤복희, 김성녀 등 이름만 대도 알만한 배우들이 이 공연을 하고 싶어 했지만 사정이 맞지 않았다. 그 행운이 배우 오정해에게 돌아갔다. 오정해는 김재한 연출가와 중앙대학교 동문이기도 하다. 김재한 감독이 사석에서 ‘누나’라고 한다. 오정해는 “우연한 기회에 제주에 들러 평화공원이란 곳을 가게 됐고 4·3 사건을 알게 됐다”며 “작품을 접한 뒤 그 느낌과 너무 가까워서, 오랜만의 뮤지컬이지만 출연을 결심하고 좋은 작품과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백꽃 피는 날' 분임할머니 역의 배우 오정해. 사진=메가기획 제공)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은 그 자체로서 완성'이라고 했다. ‘동백꽃 피는 날’은 눈물보다 웃음이 더 많은 뮤지컬이다. 배우들의 디테일한 희극 연기는 대중 매체의 개그맨을 압도한다. 하지만 공연 내내 터지는 폭소가 커질수록 ‘동백꽃 피는 날’은 더욱 처절한 비극이 된다. 무대에서의 어떠한 소격 장치로도 비극의 위험한 감정이입을 막을 수 없다. 4·3은 상식을 비상식으로 만들었고 과학을 비과학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연극을 보고나서 70년 동안 꽃이 피지 않는 동백꽃이 세상에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4·3은 실화이기 때문이다.

누가 알까
그때 총과 칼 그리고 죽창에
찔리고 찢기고 밟혀 죽임을 당한, 
그걸 목격한 
저 앞 바다의 통곡을 ,
구천을 맴도는
한 맺힌 영혼의 절규를,
그 아픈 역사의 파편들을, 

말없는 현장의 돌담 벽에
붉은 동백꽃 잎으로나 새겨둘까
하얀 국화잎 한 잎, 한 잎 떼어
해해 연연 조각난 세월로 붙여둘까

- 성산포 광치기해변 돌담에  새겨진 글 

(너븐숭이 애기무덤 앞 동백나무. 촬영=고석배 기자)
(너븐숭이 애기무덤 앞 동백나무. 촬영=고석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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