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66] 아마추어 요양보호사들

오은주 기자
  • 입력 2022.07.18 11:19
  • 수정 2022.07.18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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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여보, 오늘도 무사히 잘 보내요!”

요즈음 중식씨와 경선씨는 아침 8시쯤 아파트의 현관문 앞에서 이런 인사를 나누었다. 염색을 싫어해서 머리칼이 온통 허연 중식씨와, 염색을 했으나 자라나는 흰머리칼이 숨길 수 없이 머리밑으로 드러나는 경선씨는 영락없는 60대 중반의 부부다. 그런데 ‘오늘도 무사히!’라니. 이 말은 보통 개인택시나 버스를 운전해서 늘 위험에 노출된 가장에게 해주는 아침인사말인데 이 부부는 무슨 일을 하는가.

중식씨와 경선씨는 매일 아침 각자의 부모님 댁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부모님이라고는 하지만 아버님들은 다 돌아가시고, 여성이 좀더 수명이 길다는 통계치가 맞는지 양가의 어머님들만 살아계신다. 중식씨의 어머님은 88세, 경선씨의 어머님은 89세로 두 분 다 90세를 목전에 둔 고령인데다 무릎관절이 특히 불편한 상태였다. 60대를 노인이라 칭하기는 빠르지만 60대 자식이 80대 노부모를 돌보는 전형적인 ‘노노봉양’이었다. 매일 아침 이렇게 두 사람이 아침밥을 먹고 8시쯤 집을 나서야 부모님께 아침밥을 챙겨드리고 10시에 오는, 이른바 노인들의 유치원이라는, 동네 데이케어 센터의 버스를 태워드릴 시간과 맞았다.

요양병원은 한사코 싫다는 친정어머니를 집에서 돌보면서 처음에 경선씨는 끙끙 앓았다. 경선씨도 허리와 무릎이 부실해질 나이라 별달리 힘들게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은데도 기력이 딸렸다. 두 분 다 보행은 무척 힘든 상태지만 기저귀를 차지 않았고, 치매 증상이 없어서 아직 요양등급 판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등급 판정을 받으면 나라에서 보내주는 요양보호사가 하루에 3시간은 집으로 온다니 훨씬 수월할 것 같은데, 90살이 가까운 나이에 요양등급을 받지 못할 상태가 본인과 자녀에게 행복인지 불행인지, 득인지 실인지 명확한 판단이 어려웠다.

데이케어센터의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모시고 오면 일단은 두 분 다 소지품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중식씨의 어머니는 화장지와 종이냅킨을 무척 소중하게 여겨서, 센터에서 간식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주는 종이냅킨을 쓰지 않고 가방이나 바지 주머니 등에 꽁꽁 숨겨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경선씨의 어머니는 먹을 것을 남기는 걸 죄악시하는 터라 떡이나 빵은 아예 미리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왔다. 냅킨은 구겨져서 쓸 수가 없고 떡과 빵은 납작해지거나 쉬어 버려 제 맛을 잃었지만 그 두 가지를 두 분이 보는 데서는 버릴 수가 없었다.

“애비야, 그 종이 뒀다 써라.”

“애미야, 그 빵 맛있다. 너 주려고 싸 왔어.”

공산품과 먹을 것이 부족했던 젊은 시절을 보낸 분들이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이해했다. 그 다음은 보통 이른 저녁밥을 차려드리고 집으로 퇴근(?)하는 게 일과인데 주중에 하루는 다른 형제들이 와서 어머니와 같이 식사를 하고 돌봐드리는 터라 그런 날은 한결 수월했다.

중식씨와 경선씨는 그 날을 매주 수요일로 맞추어서 정했다. 오늘은 바로 그 수요일이라 중식씨의 여동생과 경선씨의 여동생이 저녁식사 전에 각자 어머니의 집으로 와주었다.

중식씨와 경선씨는 자신들의 집 앞에서 막걸리에 파전을 먹으며 주중 휴가일인 수요일 저녁의 여유를 챙겼다. 두 사람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이게 고령 어머니를 모시는 최선의 방법인지 여전히 정답을 찾지 못한 채 한 잔의 막걸리에 몸과 마음을 달랬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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