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OB베어가 사라지면 만선호프도 사라진다...중구청과 중구 의회가 답해야

고석배 기자
  • 입력 2022.07.19 16:06
  • 수정 2022.08.02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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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리 골목은 애초에 다양한 가게들이 모여 있는 문화를 전제로 만들어지고

야간 옥외영업도 허용되었습니다.  

그것을 반 넘도록 독점해 10개쯤 되는 가게를 가졌으면 됐지

6평짜리 원조가게 을지OB베어까지 쫒아내고 골목을 다 독점 해야만 했는가?

여기 모인 시민들은 그걸 묻고 있는 겁니다.

비단 만선호프에만 묻고 있는 게 아니예요.

중구청과 서울시에도 묻고 있습니다.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한 가게가 골목에 공용도로를 독점해 그렇게 돈을 벌어서

결국 원조 가게가 있는 건물마저 사들일 정도의

사실상 특혜가 될 때까지 과연 무엇을 했는가?

시민들은 그것을 묻고 있는 겁니다.

 

- 이종건 을지OB베어 공대위원장, 문화제 사전 연설 중 

('서울미래유산'으로서 중구 조례에 의해 야간 옥외 영업이 허용 된 을지로 노가리골목. 촬영=고석배 기자) 

 

[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을지OB베어 사태가 새 국면에 돌입했다. 을지OB베어가 야간강제집행 된 지 3개월만인 7월 18일, 그 자리에 새로운 가게가 오픈했다. 개업 축하 화환 뒤, 문 옆에 걸려있던 ‘서울미래유산’과 ‘백년가게’ 연판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가게의 간판은 ‘힙지로호프광장’이다. 사실상 만선호프의 12번째 가게다. 인근에서 오랫동안 잡화상을 운영해온 김O식 씨는 옛 을지OB베어 자리에 들어선 ‘힙지로 호프 광장’을 가리키며 혀를 찼다.

“양심에 찔려 차마 ‘만선호프’ 간판을 달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안 좋은 여론을 눈속임하려는 술책에 불과합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힙지로 호프 광장’도 만선 방종식 회장 소유라는 걸”

(7월 18일 오픈한 힙지로 호프광장. 촬영=고석배 기자)

지난 3개월간 을지OB베어는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철거된 을지OB베어 맞은편 공간에서 문화제와 기도회, 강연회를 열며 상생을 요구했다. 지난 42년간의 추억이 묻어있는 을지OB베어의 집기가 드러내지고 새롭게 인테리어 되는 과정을 지켜본 이종건 을지OB베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위원장은 ‘힙지로 호프 광장’의 오픈에도 흔들리지 않고 담담했다.

“어차피 만선호프는 대화를 거부하고 상생 요구에 타협점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새 가게 오픈은 그간의 태도를 보아서 예견되었던 일입니다. 긴 싸움이 될 것 같지만 지치지 않고 긴 호흡으로 끝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OB베어사태 공동대책위원장 이종건

(굿즈 배송 준비를 하는 이종건(왼쪽) 공대위 위원장. 사진=을지OB베어 공대위 제공)

을지OB베어 공대위는 장기전을 대비한 기금 마련을 위해 굿즈상품도 제작 판매하고 있다. 굿즈상품 제작은 인근 청계천 기술자들이 함께 참여했다. 을지로 현장에서도 판매하지만, 전국에서 마음만이라도 함께하겠다는 시민들의 온라인 주문이 많다고 한다.

(사진=을지OB베어 공대위 제공)

한편 만선호프 측에서 신청한 방해금지 가처분은 법원이 집시법에 따른 소음 기준을 준수하는 조건으로 사실상 기각하고 집회를 허용했다. 법원은 시위 장소가 채권자 소유 건물 또는 부지가 아닌 인근 도로에 해당한다는 점, 채권자가 금지를 구하는 표현의 내용 자체는 사회적 상당성을 결여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이러한 내용의 표현을 금지하면 집회·시위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제약이 될 우려가 있다는 점 등을 들며 만선호프 측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을지OB베어는 을지로 노가리골목뿐이 아니라 중구청에서도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7월 13일,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중구청 앞에서는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관리주체인 중구청에 책임을 묻고 골목의 본래 가치 보존을 위한 대책을 요구하기 위한 수요예배가 열렸다. 예배에 참석한 시민들은 을지OB베어 사태는 더 이상 사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시민들은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생태계를 부수며 그 가치를 폭력적으로 독점한 가게와 이를 내버려 둔 행정의 철저한 실패로 벌어진 결과이기에 중구청은 더 이상 사인 간의 문제라며 뒤로 숨지 말고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7월13일, 중구청 앞 수요 현장예배. 사진=을지OB베어 공대위 제공)

을지 OB베어는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인터넷과 SNS의 소문을 타고 명소로 떠올랐다. 하지만 무질서한 야장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노가리골목 호프번영회는 정식으로 옥외영업 허가를 받기 위해 구청과 구의회를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2017년 5월 중구 구의회의 조례개정을 통해 야간개장이 허용되었다. 허용 구간은 을지로 11·13길, 충무로 9·11길 일대 465m이다. 도로점용료’를 내는 조건으로 야간 옥외영업을 허용하고 차량 통행을 금지시켰다. 파격적인 조례개정이었다. 당시 “노가리골목을 관광명소로 발전시키고 미래세대에 물려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상권 활성화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조례를 개정해 ‘지역 활성화 사업 구역’으로 지정한 것이다.

당시 노가리골목 번영회장은 뮌헨호프의 정규호(79) 사장이었다. 그는 이제 자신도 떠날때가 되었다며 “야간 옥외 영업이 모든 상인이 잘되자고 한 일인데, 지금 보면 결과적으로 만선호프만 좋게 됐다”는 회한의 말을 전했다. 뮌헨호프도 조만간 골목을 떠나야 한다. 지금 건물 자리가 도시 재개발 지역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1989년 을지OB베어에 이어 두번째로 노가리골목에 문을 연 뮌헨호프. 촬영=고석배 기자)
(1989년 을지OB베어에 이어 두번째로 노가리골목에 문을 연 뮌헨호프. 촬영=고석배 기자)

을지OB베어와 함께 초기 노가리 골목을 이루었던 초원호프, 썸호프 등 몇 개 호프집도 이미 시행사와 보상비를 합의하고 떠났다, 뮌헨호프와 함께 돈치킨과 을지로호프 마저 재개발로 떠나면 남은 호프가게는 17개다. 만선호프는 12개 중 1개 매장만 철거한다. 만선호프가 아닌 가게는 종로전호프, 에이스호프, 노가리호프광장,명동골뱅이,알칼라치킨,영동호프로 6개만 남는다. 17개 중 11개가 만선호프다. 점유율 65%다. 힙지로 노가리 골목은 이제 더 이상 힙하지 않게 된다. ‘힙’이란 ‘다양성’을 말하지 ‘독점’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의 지자체에는 저마다 지역특성에 맞는 골목을 활성화하고 있다. 법성포 굴비거리, 곰소항 젓갈거리, 애월 까페거리, 제주 흑돼지거리, 마석 가구거리 등 한 품목 안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가게를 보는 재미로 시민들은 애써 멀리까지 찾아 나선다. 하지만 전국 어느 거리에도 한 업소가 65%는 커녕 과반 가까이 점유하는 경우도 없다.

(서명하는 시민. 촬영=고석배 기자)

안근철 청계천 을지로 보존연대 활동가는 “골목 문화의 기본은 다양성인데 을지로 노가리 골목은 만선 호프의 색과 간판으로 채워지면서 다양성이 깨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라면 다양성을 담보로 했던 야장 허가는 취소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덧붙여 “하늘을 보며 바람을 쐬고 노가리 굽는 냄새에 맥주를 목으로 넘기는 기쁨을 알기에 야장 허가 취소까지 말씀드리는 것이 참 슬프다”고 했다.

(야장을 기다리는 노가리골목 의자들.  촬영=고석배 기자)

중구청 의회는 총 9명의 의원으로 지난 7월 1일 새로운 임기를 시작했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새로 중구의회 의장이 된 국민의힘 길기영 의원은

"오늘도 을지로 거리를 다녀왔다. 사태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으며 회기가 시작되는 대로 괌심을 갖고 들여보겠다”고 말했다.

부의장인 민주당 윤판오 의원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업무보고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조만간 철저히 파악하고 대처하려 한다”고 말했다.

구의회에서도 여야를 떠나 ‘을지OB사태’를 ‘사인 간의 문제’가 아닌 ‘공공성의 문제’로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현재 중구 의회는 아직 회기가 열리지 않고 있는 상태다.

(중구청 앞에서 신임구청장의 면담을 요구하는 을지OB베어. 사진=을지OB베어 공대위)

새로운 중구청장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을지OB베어는 중구청장과의 면담도 요구하고 있다. 7월 19일에는 중구청의 윤혜경 경제친화국장과 전통시장 과장을 만나 구청장과의 면담을 사전 조율했다. 김길성 신임구청장은 후보시절 을지OB베어문제 해결 의지를 피력했다. 

을지OB베어 최수영 사장은 “처음에는 이미 사법적으로 판결 난 ‘사인 간의 문제’라며 손 놓고 있던 공무원들도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서서히 태도가 변하고 있다”고 말하며 “만선호프는 우리가 한 열흘이나 길어야 보름 이러고 말겠지 했다가 우리가 생각보다 강력히 저항하니 요즘 초조해하고 있다. 오히려 시간은 우리 편이다. 점점 많은 시민이 우리에게 관심 두는 것을 요즘 피부로 느낀다”며 의지를 전했다.

(촬영=고석배 기자)

을지로 노가리골목을 중심으로 주변이 재개발되면 골목은 대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새로 건설될 대형빌딩의 건물주와 입주자들이 이 거리의 야간 옥외 영업을 허용할까는 미지수이다. 어쩌면 강력하게 민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때 가장 피해 보는 업체는 매장이 가장 많은 만선호프다. 만선호프가 대항할 힘은 시민들의 지지다. 하지만 지금 만선 호프는 민심을 계속 잃어가고 있다. 만선호프는 가장 우군이 될 수 있는 을지OB베어의 발등에 도끼를 겨누고 있다. 하지만 그 발등은 어리석게도 자기 발등인 줄을 모르고 있다. 을지OB베어 공대위 이종건 위원장은 단지 만선호프와의 1:1 자리싸움이 아님을 강조한다. 오히려 만선호프는 을지OB베어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날, 힘없이 무너질거라고 걱정한다.     

이 골목과 문화가 만드러지기까지 42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다양성을 잃은 지금, 이 문화가 없어지는 데는
1년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게 너무 아깝습니다.
만선호프 보고 착한 일 하라는 거 아닙니다.
봐 달라는 거 아닙니다.

만선호프를 위해서입니다. 
그게 만선호프가 이 골목에서 지속가능하게 살아 남을 수 있는
제가 볼 때는 거의 유일한 방법인 거 같습니다.

- 이종건 을지OB베어 공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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