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반격] 2080 청년ㆍ할멍의 블루스...극장식 레스토랑 ‘해녀의 부엌’

고석배 기자
  • 입력 2022.07.22 14:35
  • 수정 2022.07.2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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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보러 오는 관객들 역시도 진짜 진솔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엄청나게 오열하세요.
어떨 때는 이분들이 울기 위해서 이곳에 왔나 생각될 때도 있어요.

김하원 '해녀의 부엌' 대표

(‘해녀의 부엌’. 촬영=고석배 기자)

[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제주의 끝은 마라도가 아니라 종달리다. 한반도에서 바라보면 마라도가 최남단이지만 제주가 독립국 ‘탐라’였던 시절은 종달리가 땅끝이었다. 고구마처럼 생긴 제주도는 서쪽 현경면 두모리(頭毛里)가 '머리'이고, 동쪽 구좌읍 종달리 지미봉(地尾峰)이 '꼬리'이다. 제주목사가 제일 마지막으로 순시했던 곳도 종달리였고, 올레길 마지막 21코스가 끝나는 지점도 종달리다. 늘 제주의 마지막이었던 구좌읍 종달리에 제주의 1등 자랑거리가 생겼다. 2019년, 120평 어판장 자리에 제주에서 제일 크고 재미난 부엌이 하나 생겼다.

(종달리 마을 지미봉. 촬영=고석배 기자)

해녀 극장식 레스토랑의 탄생

코로나시기를 포함한 3년간 예매율 96.8%. 연인원 약 40,000명 관람. 제주의 최근 가장 핫한 관광콘텐츠 ‘해녀의 부엌’. 찾아오는 사람의 70%는 구전으로 소개받아 따로 광고하지 않아도 손님 걱정하지 않는 극장식레스토랑. 생각해보니 세계적 관광지 제주에 지역을 상징하는 공연콘텐츠 하나 없었다. 미국 브로드웨이에도, 캄보디아 앙코르왓에도 음식과 공연의 경계는 자연스러웠다. 아니 오페라의 출발이 만찬임을 잊고 있었다.

"뭐 하는 곳이냐?" 기자가 물을 때 ‘해녀의 부엌’ 김하원 대표는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생각해낸 답이 ‘해녀 극장식 레스토랑’이었다. 지원사업에 응모했을 때 심사위원들의 질문도 비슷했다. “공연이 돈이 안 되니 해산물을 팔겠다는 거냐? 아니면 해산물을 팔고 싶은데 자신이 없어 공연하겠다는 거냐?” 예술과 유통은 전혀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니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조언에 흔들리기도 했다. 처음부터 답을 보고 시작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려운 점은 해녀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종달리 어판장 옆을 걸어가는 해녀. 촬영=고석배 기자)

삶의 주인공이 된 해녀

해녀가 주목받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해녀들은 자신을 부끄러워해 관광객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 하면 피하곤 했다. 교육의 기회도 받지 못하고 가장으로서 생업의 바다에 뛰어들어야 했던 삶이 갑자기 관객으로부터 뜨거운 박수로 응원받게 되었다.

종달리 ‘해녀의 부엌’은 91세 권영희 해녀의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날, 그녀는 공연이 끝나고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내가 죽을 때가 되었나 보다!
이렇게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  권영희 해녀(91세 )

지난해까지 물질하시던 권영희 해녀는 이제 물질하지 않는다. 90이 넘으면서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주민들이 못 나가게 말리고 있다. 그리고 농담처럼 얘기한다. “물질 나가지 말고 해녀의 부엌 가서 돈 버세요!” 그녀는 얼마 전 모 화장품회사의 광고 모델이 되기도 했다.

‘해녀의 부엌’은 해녀들에게 “이 역할을 해주세요!”가 아닌 완전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관광객들이 마을을 지나다 할머니들에게 “이곳에 뭐 볼만한 곳이 있어요?” 물으면 손잡고 데려올 수 있는 곳이 되게 하는 게 목표였다.

('해녀 이야기'에 출연하고 있는 91세 권영희 해녀(좌). 촬영=고석배 기자)

청년이 마을에 오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긴다

해녀들에게는 귀찮은 일이었다. 열 살 때부터 할 줄 아는 건 물질밖에 모르는 해녀들에게 연기를 하자는 것도, 제주의 토속 밥상을 차리자는 것도, 더군다나 30년 동안 방치된 어판장을 비우는 것도 다 귀찮고 쓰잘머리 없는 일이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마을에 청년이 들어오면 ‘좋은 어떤 일이 생기는구나’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마을에 경조사가 있으면 달려가 서빙도 해주고, 연세 많으신 해녀분들이 바다에서 나오면 무거운 해산물 들어주러 총출동했다. 이야기 들어주는 말벗도 되어주고 심심해하시면 웃겨도 드렸다. 80세 해녀 할멍들과의 관계와 소통은 사업 시작 전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여한 일이고 지금도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해녀이야기' 공연 모습. 촬영=고석배 기자) 

2080이 최대의 경쟁력

해녀의 부엌은 12명의 청년과 12명의 해녀가 함께하는 기업이다. 20대 청년들과 80대 해녀들 간에 충돌이 없을 수는 없다. 살아온 삶의 궤적이 다르기에 20대가 아무리 기업문화나 규칙을 만들어도 80대는 따라올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기업이기에 세금을 내야 함에도 아직도 해녀들의 공연비는 현금으로 줘야 한다. 중요한 공연이 갑자기 해녀의 사정으로 일정이 바뀌기 일쑤다.

하지만 ‘2080은 해녀의 부엌 최대 경쟁력’이다. 김하원 대표는 청년들에게 우리의 언어를 항상 되돌아보자고 한다. 청년들은 자신이 하고픈 것에 해녀를 끼워 넣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나 늘 경계한다. 해녀들의 언어로 대화하고 생각하니 해녀들도 조금씩 변화를 보였다. 청년들은 스스로 20대 청년 시절을 가장 멋있게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80대 해녀 할머니들이 박수받고 자긍심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 청년들도 행복해한다. 그리고 청년들은 “나중에 내가 80대가 되었을 때 이런 청년들을 만나고 싶다, 이런 청년들이 되기 위해 지금 노력하자”며 ‘해녀의 부엌’에 자긍심을 느낀다. 80대 해녀와 20대 청년의 브랜드에 대한 자긍심이야말로 ‘해녀의 부엌’이 지속 가능한 관광콘텐츠로 성장하는 원동력이다.

(20대 청년 배우와 80대 해녀 그리고 관객이 공연 중 함께 어울린다. 촬영=고석배 기자)

‘해녀의 부엌’은 해녀의 ‘문제’에서 시작 됐다

구좌읍 종달리에서 나고 자란 김하원 대표는 해녀의 딸이다. 큰어머니도 고모도 이웃집 삼촌도 모두 해녀다. 뮤지컬을 하고 싶어 연극영화과에 들어갔지만 중퇴했다. 배우가 되기보다 연기가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그 어렵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갔다. 졸업 후 치유연극을 공부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와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해녀들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전국의 톳 80%는 제주 바다에서 나고 나머지 20%는 완도에서 양식으로 길러진다. 그런데 톳이 일본으로 수출될 때는 한국산으로 변한다. 한국산과 일본의 자연산은 무려 4배 차이다. 제주의 톳은 자연산임에도 완도 양식산과 똑같이 적용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톳처럼 뿔소라도 일본 수출에 의존하고 있었다. 양식 전복이 2만 7천원인데 해녀들이 직접 건져 올린 자연산 뿔소라의 가격은 2천 700원이다. 가격결정권은 일본이 독점하고 있었다. 뿔소라는 제주 해녀 수입의 60%를 차지함에도 일본은 자신들이 사주지 않으면 팔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수매가를 계속 낮췄다.

그렇다고 한국 시장에 진입하려니 문제가 있었다. ‘해녀 최저가 보상제’로 5천원 이하엔 뿔소라를 공급할 수 없었다. 가격 경쟁에서 떨어지니 뿔소라가 한국 시장에서 대중화되기 힘들었다. 해녀를 보호하겠다는 법이 아이러니하게 해녀를 옥죄고 일본만 좋은 법이 됐다.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해녀들은 이미 고령화됐고 청년들은 제주를 떠나 육지로 나갔다. 김하원 대표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고향에 다시 돌아온 이유다. 그리고 '한예종' 친구들과 선배들을 제주로 불러 모았다. ‘해녀의 부엌은 이렇게 제주 해녀의 문제에서부터 시작했다.

(공연 중 해녀가 직접 빼낸 뿔소라 속. 촬영=고석배 기자)

오프라인 다이닝에서 시작해 온라인 HMR기업이 되다

결과는 폭발적이었다. 무대도 성공했고 밥상도 성공했다. 보란 듯이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그리고 온라인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또한 거꾸로 된 마케팅 문법이다. 온라인에서 먼저 성공한 뒤 오프로 가는 기본 사업 모델을 김하원 대표는 처음부터 거부했다. 지속가능한 로컬비즈니스가 되기 위해서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구조는 만들지 않겠다는 신념이 있었다. ’해녀의 부엌‘은 첫해부터 흑자였다.

그리고 창업 3년도 되지 않아 유명 브랜드가 됐다. ’배달의 민족‘이 관심을 두고 ’전국별미 플랫폼‘에 ’해녀의 밥상‘을 입점시켰다. 제주의 뿔소라를 전국의 안방에서 먹게 하겠다는 바람이 이루어졌다. 식품 대기업 ’동원‘도 찾아왔다. 제조와 유통은 동원이 책임지고 원물과 콘텐츠는 ’해녀의 부엌‘이 맡는 업무제휴를 맺었다. 2022년, ’해녀의 부엌‘은 원물 공장 준공도 앞두고 있다. 다이닝에서 시작해 HMR(가정 대용식)기업이 됐다.

(뷔페식 다이닝. 사진='해녀의 부엌' 제공)

’로컬 크리에이터‘의 모범이 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21년 신설한 올해의 관광벤처 ESG(친환경·사회적 책임경영·지배구조 개선) 최우수기업에 ’해녀의 부엌‘이 선정됐다. 2020년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올해의 로컬크리에이터‘ 거점 분야 최우수상을 받고 모범사례로 발표도 했다. 감동적인 발표에 여기저기서 강의가 쇄도했다. 김하원 대표는 어느새 로컬크리에이터의 대명사가 됐다. 로컬크리에이터란 지역의 문화적 특성이나 자원 등에 혁신적 아이디어를 접목하여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을 말한다.

'지역'은 '보물'이예요 그리고 '로컬 크리에이터'란 보물을 캐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돈이 되는 세상에 '로컬의 전통'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돼 버렸어요.
어느 지역에서든 관광콘텐츠를 만들더라도 그곳만의 진짜 지역성, 역사성, 문화성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자신 있게 어필 포인트로 잡아서 콘텐츠를 만들고 사업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 관광공사 '내일의 내 일 콘서트'에서 김하원 대표 강연 중에서

(관광공사 '내일의 내 일'에서 '로컬 크리에이터'에 대해 강연하는 김하원 대표. 촬영=고석배 기자)

종달리에서 제주의 콘텐츠로

’해녀의 부엌‘은 지난해 북촌리에 2호점을 냈다. 종달리 부엌이 연극에 초점을 맞췄다면, 북촌리 부엌은 ‘미디어 아트’, ‘다이닝’에 비중을 두고 예약제로 한 타임당 14인만 받는다. 외국인을 타깃으로 잡았기에 종달리 1호점처럼 ‘뷔페식’이나 '한상차림'이 아닌 ‘코스요리’다. 종달리가 공연을 끝내고 다이닝을 한다면 북촌리는 처음부터 솥에서 바로 꺼낸 상웨떡을 선보이며 공연과 식사를 함께 즐기게 한다.

종달리가 ‘물’이라면 북촌리는 ‘불’이다. 해녀들이 물속에서 나와 추위를 피하던 ‘불턱’을 재현했다. 고객의 식탁의자는 해녀들의 옷으로 만들어졌다. 목, 금, 토, 일 주 4일 문을 연다. 런치는 4코스 음식 제공에 80분이고 디너는 7코스 120분이다. 수십만 원 하는 서울의 파인다이닝에 비하면 10만원도 안되는 비용은 그리 비싼 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2호점이 열리자마자 예약률 100%다.

‘해녀의 부엌’ 2호점은 미디어아트라는 첨단 공연을 도입했지만, 제주에서도 외진 마을인 북촌리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리고 4면의 파노라마 영상으로 만나는 ‘북촌 이야기’ 콘텐츠에서는 중요한 이야기도 놓치지 않았다. 젊은 청년과 외국인에게 70여 년 전 북촌리 마을에서 일어난 아픈 이야기도 전달하고 있다.

(조천읍 북촌리의 미디어아트 레스토랑. 사진='해녀의 부엌' 제공)

제주에서 세계의 식탁으로

‘해녀의 부엌’은 3년 만의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배가 고프다. 지난 6월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AVPN(아시아벤처필란트로피네트워크) 글로벌 콘퍼런스 2022’에도 참여했다. AVPN 글로벌 콘퍼런스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회공헌 회의로, 전 세계 임팩트투자자와 사회혁신가들이 모여 전략적 파트너십 관계를 구축하며 사회 경제적 과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이다.

유네스코에 등재한 ‘제주 해녀’는 충분한 글로벌 콘텐츠로서의 잠재력이 있다. 한국인에게 해녀는 엄마와 여성의 고된 노동을 연상하지만, 외국인에겐 어메이징 그 자체다. 아무런 잠수장비도 없이 그것도 할머니가 20미터 아래 바다를 들어간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외국인에게 해녀는 살아있는 ‘인어공주’예요.
우리는 이 지점을 어필 포인트로 잡고 해외 진출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일본의 독점에 가로막혀 어려움을 겪은 제주 해산물이 세계식탁에 오를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해요.

-' 해녀의 부엌' 김하원 대표

('해녀 이야기' 공연 모습. 촬영=고석배 기자)

‘해녀의 부엌’은 치유의 공간

‘해녀의 부엌’ 공연 스토리는 비극이 아니다. 단지 해녀의 실제 살아온 세월을 진솔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김하원 대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관람평은 “해녀의 부엌을 보고 모두 치유와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랬듯이...”라는 문장이다. 학폭 피해를 본 딸을 위한 치유 여행으로 ‘해녀의 부엌’을 찾기도 하고 20년간 의절했던 남매가 화해 여행으로 공연을 보러 오기도 한다.

자기 인생이 되게 창피하고 수치스럽다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자기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공연을 눈앞에서 보잖아요.
엄청 눈물을 흘리세요.
그리고 자기 삶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 안에서 치유의 힘이 작동돼요.
또 이걸 보러 오는 관객들 역시도 진짜 진실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엄청나게 오열하세요.
어떨 때는 이분들이 울기 위해서 이곳에 왔나 생각될 때도 있어요.

제주 ‘해녀의 부엌’은 치유의 공간이다. 치유를 위해 제주 여행을 하려면 우선 ‘해녀의 부엌’부터 예약하고 일정을 잡아야 한다. 종달리에서 뷔페식 ‘해녀 이야기’를 먼저 들어도 좋고 한상차림 ‘부엌 이야기’를 먼저 들어도 좋다. 혹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외국어 서비스가 되는 북촌리 미디어아트 레스토랑의 코스요리를 추천한다. 가기 전에 꼭 ‘베지근하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고 떠나기를 바란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난다.

(촬영=고석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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