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67] 할머니 할아버지 되기

오은주 기자
  • 입력 2022.07.2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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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인철씨는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운동모자를 휙 벗고 마스크를 내린 뒤 거실 벽에 붙은 큰 거울에 얼굴과 전신을 이리저리 비춰 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소파에 앉아 있는 부인 민자씨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당신 눈에도 내가 진짜로 할아버지로 보여?”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드라마와 스마트폰을 동시에 보고 있던 아내 민자씨는 사뭇 진지한 남편의 질문에 깔린 진정한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왜 누가 당신 보고 할아버지라고 해요?”

“아, 지금 막 공원에서 운동 끝내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여살 정도 돼보이는 여자애가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더라고. 난 처음에 내 뒤에 누가 또 서 있어서 그 사람한테 인사하는 줄 알고 뒤돌아 봤는데 아무도 없었어. 게다가 그 여자애를 데리고 있는 젊은 엄마가 ‘인사 잘 했네’라고 칭찬까지 하더라고. 그리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집은 13층을 누르고 난 7층이라 먼저 내리게 됐지. 7층에서 문이 열리자 그 여자애가 또 이러는거야.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라고. 아주 쐐기를 박는 격이지.”

민자씨는 웃다가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 했다.

“원래 애들이 보는 인상이 제일 정직하다고 해요. 당신도 60세가 넘었으니 할아버지란 소리를 듣게는 됐지요.”

문제는 인철씨가 스스로를 할아버지로 규정지은 적이 없다는 데 있었다. 2년 전에 결혼한 딸이 요즘 임신 5개월 차라 할아버지라고 불릴 마음의 채비는 남몰래 하고 있지만 막상 들어보니 그야말로 현타(현실타격)가 왔다. 할아버지가 된다는 기다림이 벌써 할아버지 특유의 외모로 바뀌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단 말인가. 남자 나이 63세면 할아버지 소리를 들어서 마땅한 나이인가?

“어휴, 당신은 호칭과 역할은 할아버지라고 받아들이면서 낯선 사람들이 외모로 판단하는 할아버지란 규정이 싫은 거잖아요. 할아버지를 역할에 따른 호칭으로 생각하지 않고 늙음으로 인식하니까 그런 건데, 누군가 그랬잖아요. 젊음이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고.”

인철씨는 소파에 앉아서 뭐 벌써 늙음을 받아들이는데 도가 튼 것처럼 이야기하는 민자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는 당신은 왜 귀찮다면서 맨날 자라나는 흰머리 감추느라고 염색을 하고 그래? 나 할머니야 하고 당당하게 그냥 머리칼 허옇게 하고 다니지.”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이 다 검은색이나 갈색으로 염색하는데 나만 흰머리로 나가면 지들이 덩달아 늙어 보인다고 하도 지청구를 줘서 염색을 하는 건데 이젠 그것도 그만 둬야겠다 싶긴 해요.”

그래도 인철씨는 굴하지 않았다.

“내가 친구들 사이에선 운동짱 몸짱이라 제일 젊어 보이는데 할아버지라니, 인정 못해.”

민자씨는 이제 남편 인철씨가 안타깝다 못해 귀여울 지경이었다.

“그럼 당신, 5개월 후에 손자가 태어났을 때 그 애를 보며 뭐라고 호칭할 거예요? 애기 보고 나, 김인철이야! 이렇게 말해요? 애기한테 스스로를 호칭할 때, 나 할아버지야!라고 말할 수밖에 다른 호칭이 없어요. 걍 인정하고, 이제 젊어 보이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건강하게 살면서 든든하고 멋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궁리나 합시다.”

인철씨도 아내의 말에 동감과 공감을 하면서도 아직은 할아버지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 받아들이지 않고 싶었다.

“그땐 그때구 난 아직 인정 못해. 할아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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