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엔딩] 어서 와, 이런 장례는 처음이지 1...작고 아름다운 장례 '채비'

고석배 기자
  • 입력 2022.07.28 14:55
  • 수정 2022.08.1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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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2021년 12월 1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세이다. 2017년 고령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는 2026년 초고령사회로 진입을 앞두고 있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 장수 만세다. 2020년 연간 사망자 수는 30만 명을 넘어섰으며, 2060년이 되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43.9%에 달한다. 가히 노인의 나라가 다가오고 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공간 채비. 촬영=고석배기자)

죽음의 질 최하위권 대한민국

오래 살고 많이 죽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잘 살고 잘 죽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건강 기대수명은 얼마일까. 놀랍게도 66세에 불과해서 남은 17여 년을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살아야 한다.

노인이 되어 병들면 집에서 병원으로 옮기게 된다. 병원은 기계장치를 연결해서라도 생명을 연장하려 한다. 영양공급관, 산소공급장치(콧줄), 소변줄, 링거를 주렁주렁 매단 채 최후의 시간을 보낸다. 이 상태로는 최소한의 이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가정의학과와 호스피스 의사인 박중철은 저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에서 "한국인들은 고통 없는 삶을 일 순위로 꼽았다"고 전한다. 죽음의 순간에 가족이 함께하기를 원했고, 주변에 폐를 끼치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가급적 스스로 주변을 정리하고 세상을 떠나고 싶어 했다.

우리나라의 죽음의 질 지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사는 일도 힘든데, 죽는 일도 참 고된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위해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죽음을 알아야 잘 죽을 수도 있다. 좋은 죽음을 가로막는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법적 제도적 개선도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형식적이고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는 현행 접객 위주의 3일장 문화를 바꾸어 깊은 추모와 애도로 인생의 마지막을 존엄하게 맞이하고 보내는 혁신적인 장례가 우리에게 절실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는 2026년에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다. 이때 고인은 당연히 초고령이고, 상주도 대부분 고령이다. 현업에서 은퇴하고 관계도, 재정도 모두 줄어든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고비용, 큰 규모의 장례식을 계속 치를 수는 없다. 상주는 물론이고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든 손자들도 부담을 피할 수 없다.

(채비추모장례에서 유품으로 추억을 나누는 모습. 촬영=고석배기자)

카페에서 장례식을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했고, 사회 전체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일본은 작은 장례를 선호한다. 2017년에 일본 공정거래위원회가 발간한 ‘장례식 거래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전통적으로 많이 진행하던 3일장이나 회사장에 대한 선호도는 급격히 감소하고, 가족장에 대한 욕구는 비례해서 증가하고 있다.

우리와 달리 일본 사회는 부의금을 많이 하는 것이 결례이다. 조문객의 부의금에 따라 반드시 답례품을 준비하는 유족에게 큰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의 특성도 있지만 이러한 이유로 오래 전부터 기존 3일장보다 가족 중심의 1일장을 더 선호한다. 더 이상 장례식장에서 치르는 밤샘 예식도 없어지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대형 상조업체(호조회)는 1일장, 가족장을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확대하고 있다. 회원제로 장례비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협동조합형 장례업체의 신규진입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기존의 3일장 문화를 바꾸려는 업체가 있다. 이미 2010년부터 정직한 장례서비스와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그곳이다. 이 장례 전문 협동조합은 다수의 해외 사례들을 연구하면서 초고령화와 지나친 연명의료로 인한 죽음의 질 저하가 한국 사회에도 밀어닥칠 것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오랜 연구와 준비 끝에 장례의 본질은 접객이 아닌 애도와 추모라고 보았고, 기존 병원 장례식장을 벗어난 혁신적인 ‘대안장례’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2020년 7월에 ‘작고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채비장례를 창안하고, 그것을 실행할 공간 ‘공간채비’를 서울시 중구 충무로에 개소했다.

(공간 채비 내부. 촬영=고석배기자)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공간채비’는 아름다운 추모식을 진행하기 위해서 내부를 카페로 만들었다. 죽음이 무겁고 엄숙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찬란한 인생을 마무리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한국인의 삶이, 마지막에라도 한숨 돌리고 좀 쉬면서 장례를 치르자는 염원을 담았다.

‘채비 추모식’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고인의 생애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해 공유하고, 유족과 조문객이 이별의 슬픔을 직접 표현할 수 있는 예술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채비 추모식은 종교예식, 제사, 기타 유족의 개별적인 모든 순서를 다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유연하게 구성되어 있다. 정해진 형식에 매일 필요가 없다.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애도와 추모로 만나기 위한 예식이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충무로에 위치한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채비 외관. 촬영=고석배 기자)

요즘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는 홀로 사는 시니어들의 문의나 방문 상담이 많아졌다고 한다. 사전(생전)장례식에 관한 문의도 드물지 않다. 한국 사회를 이끌었던 1차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과 죽음의 문제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장례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늦지 않게 선택해야 한다. 장례를 의례적인 행사로 취급해 깊이 애도하고 추모하지 않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채권자처럼 우리 주위를 맴돌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삶은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미리 준비해야 잘 죽을 수 있다. 언제까지 죽음에게 당하고만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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