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채운의 스카이가든15] 일주일

권채운 작가
  • 입력 2022.08.0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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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채운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 당선      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권채운
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 당선
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양성입니다. 진료실 밖에서 기다리던 내게 또렷하게 들려온 의사의 목소리는 의례적인 것이었지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감기 몸살이 아니에요?

코로나 양성이니까 처방전 받아서 약국에 가시면 됩니다.

코로나라구요?

한 사흘 지독한 몸살을 앓았다. 집에 있던 종합감기약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어서 병원을 찾은 것이었는데 의사는 대뜸 진단키트를 들이밀었다. 면봉이 콧속을 쑤시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말로만 듣던 코로나 검사였지만 양성이 나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나라에서 지정한 고령자 축에 속했기 때문에 3차까지 백신을 접종했고, 집밖을 나서기 전에 KF94 마스크를 쓰고, 수시로 손 소독제를 썼으며, 집에 돌아오는 즉시 30초 동안 흐르는 물에 손을 씻었다. 기저질환자가 통상 복용해야 하는 약을 타러 병원에 갈 때 말고는 외출을 삼갔고, 대형 마트도 백화점도 출입하지 않았다. 친구들 얼굴 본 지도 2년이 넘었다. 정부 지침을 착실하게 지키다 보면 이 역병의 시간도 지나가리라. 매일 문자로 전송되는 코로나 확진자 수는 내게 그저 숫자에 불과했었다. 일주일치 약을 타가지고 현관을 들어서기도 전에 보건소에서 문자가 왔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자가 격리를 하라는 명령이었다.

어디서 옮았을까.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벗은 적이 없는데? 어디서 옮은 걸 알아낸다고 해도 무슨 수가 나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 생각에 골몰했다. 처방받은 약은 소염진통제와 소화제와 알레르기약과 거담제와 항생제였다. 보통 닷새 정도 앓는다고 하니 이제 이틀만 견디면 되겠지.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들도 이틀 앓고 나서 거뜬하게 학교에 다니지 않는가. 그러나 웬걸, 몸살은 걷히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는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면도날을 삼킨 것처럼 아프다는 말이 엄살은 아니었네. 이러다가 정말 죽는 건 아닐까.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이 몇 명이었더라. 그 숫자에 내가 보태지는 건 아닐까.

참고 참다가 아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엄마도 코로나 걸린 거야? 많이 아파? 우리 식구들도 아플 만큼 아프고 지나갔으니까 엄마도 이제 한 이틀 지나면 좋아질 거야.

코로나 선배인 아들은 대수롭잖게 말했다. 저도 아파봤으니까 별거 아니라는 투였다. 저는 젊고, 나는 늙었다는 얘기를 꼭 해야 하나? 어차피 혼자 앓는 건데 괜한 짓이었다.

한 움큼의 약을 털어 넣으려면 먼저 밥을 먹어야 했다. 열에 달뜬 몸을 일으켜 쌀을 씻는데 눈물이 배어 나왔다. 혼자 사는 게 편하지만 몸이 아프면 얘기가 달라진다. 엄마 밥은 어떡하느냐고 걱정이라도 해주기를 기대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나보다 앞서 자가 격리를 했던 친구는 자식들이 각종 밀키트며 갈비탕이며 전복을 편리한 배송 시스템으로 보내주어서 일주일을 잘 버텼노라고 했다. 평소에도 인스턴트라면 질색을 해서 아들이 거기까지 생각을 못하는 걸까.

입맛이 똑 떨어져서 라면을 끓였다가도 그냥 쏟아 버렸고, 냉동실의 굴비도 비린내가 확 끼쳤다. 누룽지를 끓이니 그나마 목 넘김이 수월했다.

누룽지 한 숟갈 눈물 한 모금으로 약을 삼켰다. 그래, 닷새 앓는다고 했으니 이제 하루 남았다. 그러나 남들은 닷새만 앓고 일어난다는데 일주일을 앓고도 좋아지기는커녕 목이 잠기면서 미열과 가래와 기침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설사까지 시작되었다.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비닐장갑을 끼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이렇게 심한데 의사가 팍스로비드를 처방해 주겠지. 코로나로 죽는 것처럼 허망한 게 있을까. 의사는 혈관주사를 놓고 기침약과 항생제를 처방했다.

코로나 약 안 먹어도 되겠어요? 밤에 갑자기 호흡 곤란이 오면 어쩌죠? 오늘이 며칠 째지요? 아픈지는 일주일 됐고 확진 받은 지는 5일째인데요. 제가 보기에는 이 약만 드셔도 좋아질 것 같습니다. 밤에 급하시면 119 부르시구요. 요즘에는 119도 잘 안 온다던데요? 걱정 마세요. 식사 잘 하시고 이 약 드시면 좋아질 겁니다. 입맛이 똑 떨어졌는데 무슨 수로 식사를 잘 해요? 억지로라도 드셔야 합니다.

자식농사 망했다. 어미가 홀로 앓아누웠다는데, 그것도 국제전염병인 코로나로 앓아누웠다는데, 좀 어떠냐는 전화 한 번이 없다. 서운하다. 목보다 가슴이 더 아프다. 일주일? 일주일만 아프면 낫는다고? 일주일 만에 죽을 수도 있지 않나.

엄마, 이제 괜찮지? 일주일 됐잖아. 목소리는 좋아졌는데? 내가 너냐? 너, 엄마 나이가 몇인 줄은 알고 있냐? 됐고, 장례 치를 준비나 해라. 천하에 불상놈 같으니라구. 엄마, 왜 그래? 우리 식구들도 일주일 만에 다 나았단 말이야. 이놈아, 젊은 놈 일주일하고 늙은이 일주일이 똑 같으냐? 일주일 좋아하네. 그 말을 밀어내듯이 목이 찢어져라 하고 기침이 터져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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