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以目視目] 인간은 신도 악마도 아니다

정해용 기자
  • 입력 2022.08.1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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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가벼운 퀴즈를 하나 소개하고 싶다.

문제: ‘우리나라 5천만 인구의 머리카락 숫자를 다 더한 숫자와 중국 14억 인구의 머리카락을 다 곱한 숫자 중 어느 숫자가 클까.’

도움될만 한 힌트도 드리겠다. 일단 중국 인구는 수적으로 월등 많다. 단순히 보아도 28배나 된다. 또 하나, 같은 숫자들을 놓고 곱할 때와 더할 때, 그 결과 값은 일반적으로 곱하기의 값이 훨씬 높다. ‘산술적 증가’와 ‘기하급수적 증가’ 같은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면 답은 쉽게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계산 값을 묻는 게 아니라 어느 쪽이 크겠는가 하는 단순한 질문이니까.

잠깐만 생각해도 답을 떠올리셨을 것이다. 더하기보다는 곱하기의 값이 크게 되어 있다. 그런데 ‘중국’쪽이 많을 거라고 결론을 내리시면 안 된다. 답은 ‘한국’이다. 수학에 취미가 있는 분이라면 벌써 문제의 ‘함정’을 발견하셨을 것이다. 곱하기의 값은 더하기의 값보다 대개 더 크게 마련이지만, 예외가 있다.

곱하기에서는 ‘0’이라는 숫자가 한번만 들어가도 전체의 답이 ‘0’이 되어 버린다. 이것이 함정이다. 아무리 13억 9천9백만의 머리카락 수가 많아도 단 한 사람의 민머리가 있으면 전체를 곱한 값은 0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살면서 만족스러운 일도 있고, 그렇지 못한 일도 있다.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잘한 일도 있고 후회되는 일도 있다. 그래서 ‘영욕’이란 말을 쓴다. 아무리 잘 못 산 사람도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며, 아무리 잘 살아낸 사람이라도 스스로 후회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신이나 악마가 아니니까, 누구도 마이너스나 플러스의 삶만을 살았을 리는 없다.

자기 삶의 경험에 하나하나 플러스마이너스의 점수를 매겨보면 어떻게 될까. 대개 얼마쯤은 플러스의 점수가 남지 않을까. 이 점수에 너무 인색할 필요는 없다. 부모님에게 출산의 기쁨을 안겨준 데서부터 시작해보자. 길 가다 넘어진 사람의 손을 잡아준 일은 플러스다.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그것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렀다면 더 이상 마이너스 점수를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반대로 아주 잘한 일이 있더라도 그에 대한 보상을 이미 누렸다면 플러스의 점수를 좀 깎아 계산해도 된다. 인간은 살면서 이미 어느 정도는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다. ‘중간정산’을 인정하자. 그런 결과로 얼마라도 남는 값이 있다면 당신은 플러스의 삶을 산 것이다.

경계해야 할 것은, 한번이라도 큰 잘못이 있을 때 그것을 자기 삶 전체의 값에 곱하기로 계산해버리는 일이다. 너무나 후회되는 나머지 지금까지 쌓아놓은 중간 결과 값에 지금의 ‘헛되다’라는 기분을 곱해 버리면 삶 전체가 헛된 것이라는 결과값에 도달하고 만다. 인생은 그렇게 헛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또 몇 가지 자랑스러운 일이 있을 때 자아도취된 나머지 스스로를 영웅으로 믿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자아도취든 자기비하든 ‘곱하기셈법’으로는 자기 삶에 합리적인 결산이 나오기 어렵다.

자기 삶의 결과 값은 플러스, 마이너스로만 계산해야 한다. 설혹 이 계산 결과 얻어지는 답이 마이너스라 하더라도, 목숨이 있는 한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은 남아있게 마련이다. 이 시간 동안 최대한 빚을 만회하고 떠나겠다고 결심한다면, 그것은 더 오래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와 목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더 옳은 태도다.

이제 눈을 타인들에게로 돌려보자. 우리는 어떤 인물이나 주변 사람들의 공과를 판단하는 데 있어 곱하기와 더하기 중 어느 셈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을까.

여기에도 더하기(플러스, 마이너스) 셈법을 적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만일 그의 인생을 곱하기 셈법으로 계산한다면, 그가 한 모든 일이 다 훌륭하다거나 그가 한 모든 일이 다 나빴다는 식의 극단적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 위대한 영웅 아니면 엄청난 악한. 그리 이성적인 계산법은 아니다.

현실에 있어서 우리 사회는 다른 사람들을 평가할 때, 특히 사회적 지명도가 높거나 영향력이 높은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에, 그를 터무니없이 미화하고 신격화하거나 터무니없이 깎아내리고 짓밟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마이너스 하나 없이 장점만 가졌거나 장점 하나 없이 마이너스 요소만 지닌 인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 사람은 세기에 한둘 나오기도 힘들 것이다. 단점 하나가 발견된 사람에게는 어떤 장점이나 좋은 점이 있어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큰 장점 하나가 발견된 사람에게는 마치 어떤 단점도 없는 완전무결의 영웅으로 만들어 숭배한다. 그러나 이 영웅도 그리 처지가 좋지는 않다. 다른 단점이 밝혀지는 순간 그동안의 칭송은 사라지고 하루아침에 쓰레기로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잘 보이면 영웅이 되고 잘못 보이면 짓밟히는, 오만 또는 편견의 세계. 이것은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랄 수가 없다. 내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성급한 ‘곱하기 셈법’보다 ‘더하기 셈법’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는 침착하고 정직하고 성숙한 계산법이 우리 사회에 정착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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