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生障老病死' 늙음과 장애를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게’

고석배 기자
  • 입력 2022.08.25 13:32
  • 수정 2022.08.2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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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무상으로 무언가를 제공하는 것보다 그들이 일할 수 있게 해주고 그 대가를 가져갈 수 있게 해주는 게 진정한 복지이다. 적자생존을 앞세우는 자본주의의 냉혹한 단점을 극복하는 데는 복지가 최선의 답이다.

-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게' 중에서 

[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엘리베이터 앞에 ‘이 엘리베이터는 장애인용이므로 일반인은 계단을 이용해 주세요.’라고 적힌 문구가 있다. 잘못된 글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힌트를 준다면 잘못된 단어가 하나 들어있다. 셋을 셀 동안 찾아보라!

정답은 ‘일반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 정답을 맞히셨다면 당신은 장애 감수성이 높으신 분이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퀴즈다. ‘일반인’ 대신 들어가야 할 단어는? ①정상인 ②비장애우 ③미장애자 ④비장애인. 정답을 못 맞히신 분에게는 소정의 선물로 책을 한권 소개해드린다.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게. 촬영=고석배 기자)

흔치 않은 장애 관련 교양서

눈치가 빠른 분들은 짐작했겠지만 소개하려는 책은 장애 관련 교양서적이다. 장애인 관련 전공서적이나 학술서적은 많지만 교양서적은 흔치 않다. 교보문고는 이 책을 교양인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 소개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이 쏟아지는데 저마다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교양인’을 포기하고 싶을테다.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게’는 ‘교양인’임을 포기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딱 맞는 책이다. 학술서적이 아니기에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다. 간혹 낯선 용어가 나와도 책 속에 알라딘의 램프가 있는지 선생님이 나타나 쉽게 이해시켜 준다. 이 책을 읽으면 인구의 5%에 해당하는 장애인의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나라 인구 5%는 250만 명이다. 250만 명의 세상에 대해서 소위 ‘지성인’이라는 사람들은 얼마나 알까?

확실한 것은 이 책이 전하는 내용을 거꾸로 행한다면 ‘지성인’임을 자연스럽게 포기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장애인의 반대말을 ‘정상인’이라고 답을 쓰면 된다. 그 순간 당신은 어렵게 받은 학위는 물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아온 명예를 한순간에 반납할 수 있다.

(5%의 장애인과 95%의 비장애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장애인권강사들의 의기투합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게’는 마선옥, 김도운 공저이다. 두 사람은 장애인인식개선 교육 강사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만나 파트너 강사로서 책도 함께 집필했다. 책을 읽을 때, 마치 선생님이 옆에 있는 것처럼 친절히 느껴지는 건 아마도 이들이 강사이기 때문이다. 평소 1시간이라는 짧은 강의 시간이 아쉬웠다고 한다. 그래서 책을 통해 강의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담아내면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내용과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 책은 ‘장애’에 관한 입문서이자 심화서이다. 장애에 관해 백지상태인 사람에게도 적합하고 장애 문제에 관해 심도 있게 논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장애를 다룬 많은 책과 달리 저자 마선옥씨 자신이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관찰자의 시선이 아니라 주체적 입장에서 직접 체화된 언어를 한뜸 한뜸 조각칼로 영혼을 새기듯 글을 썼다.

책은 독특하게 담론과 칼럼, 소설이라는 각자 다른 3가지 색깔의 글로 구성되었다. 1장부터 3장은 ‘장애 바로알기’, ‘장애, 존중의 대상이 되다,’ ‘장애인, 일을 하다’라는 소제목으로 장애에 대한 이론과 장애인식 개선에 대한 실제적 담론을 다루었다. 4장은 마선옥 저자가 1년간 일간지에 기고했던 칼럼 12편으로 구성했다. 5장은 김도운 저자의 장애인을 소재로 한 ‘아픈 손가락’이란 단편소설로 엮었다.

(50플러스에서 사회적 장애인식교육을 하는 마선옥 강사. 촬영=고석배 기자)

세 살이 되기 전에 죽여라!

책을 열면서 장애에도 역사가 있음에 놀라고 그 비참함에 한 번 더 놀란다. 장애의 역사란 장애인을 바라보는 각 시대의 인식이다. 고대 유럽에서는 선천적 장애아로 태어나거나 3세 이전에 장애를 가지면 살해해도 법적으로 합법이었다, 문명국이라 자부했던 로마에서도 청각장애인을 익살 시킨 기록이 있다. 중세에도 일부 성직자를 제외하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개선되지 않았다. 17세기 근대에 와서야 엘리자베스 구빈법이 제정되었다. 여기서 장애인은 노동력이 없는 자로 분류돼 보호가 필요한 동정의 대상이 된다. 이때부터 장애인은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19세기 다윈의 진화론은 95%의 사람들에게는 큰 축복이었다. 하지만 5%에게는 적자생존의 패자로 규정하고 심지어 강제 불임시술을 합법화하는 ‘단종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히틀러의 장애인 30만명 학살 사건은 유대인 학살 사건에 가려 덜 알려진 끔찍하고 부끄러운 인류의 역사다.

(마선옥 꿈제작소 대표. 촬영=고석배 기자)

장애인도 링에 올라 가고 싶다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게‘에서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을 한 줄로 쓴다면 “장애인에게도 직업이 필요하다”이다.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왜 장애인이 고용돼야 하고 장애인에게 직업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이며, 실제 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에 주어지는 여러 가지 혜택과 정보도 상세히 기술했다. 그리고 장애인의 유망직업과 취업사례도 담아 실용적인 정보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직업이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지만 자아실현의 수단이기도 하다. 장애인에게 굶지 않을 정도로 생존의 문제만 해결해주면 된다는 복지의 관점은 이제 구시대 꼰대의 유산이다. 장애인에게도 행복추구권이 있다. 직업을 갖고 자아를 실현하며 사람들 틈에서 부딪치고 어울리고 싶다. 링에서 경쟁 또한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장애인은 링에 올려보내지지 않는다.

단순 노무직이나 일을 해도 티가 안 나고, 안 해도 티가 안 나는 일을 시킨다. 장애 노동자들은 시간만 때우다 퇴근하면 된다. 과연 그들의 직장생활은 행복할까? 저자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고용률이 현격히 떨어짐에도 ‘역차별’이라는 주장에 분통을 터트리고 나아가 양적 고용 확대뿐 아니라 고용의 질적 개선도 절실함을 밝히고 있다.

(촬영=고석배 기자)

장애는 누가 만드는가?

저자는 장애는 개인의 탓이 아님을 강조한다. 사회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도 생활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면 그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사회가 휠체어를 타고 아무런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사회인가? 그런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다. 사회의 부족한 시스템과 대중의 무관심이 장애를 낳았다. 그러므로 95%가 장애를 만든 가해자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신발과 장갑은 항상 짝으로 나온다, 한쪽만 왜 판매하지 않는가? 팔이나 다리가 한쪽만 있는 지체장애인이 항상 ‘짝’으로만 사야 한다면 이는 폭력이다. 이를 ’장애차별‘이 아니라 ’장애억압‘이라고 한다.

'차별'을 넘어서  '억압'까지 벗어 던져야 진정한 해방에 이르게 됩니다

- 마선옥 꿈제작소 대표

(마선옥 저자 자필, 생장노병사. 촬영=고석배 기자)

生障老病死

250만 명의 한국 장애인 중 90%는 후천성이다. 마선옥 저자는 책에 자필서명을 할 때면 꼭 生障老病死(생장노병사)라는 글을 남긴다. 막힐 障(장)이 하나 더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굴레 중 생노병사 외에 장애가 하나 더 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서이다. 늙음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장애를 피할 수 있는 인간 역시 없다.

마선옥 저자가 장애인권교육에 나설 때면 꼭 전하는 영상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아이가 누나와 함께 미끄럼틀을 타는 영상이다. 주변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사람은 아이의 엄마다.

이 영상으로 아이의 엄마는 “지켜봐 주세요”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못 하는 친구, 잘못하는 선수, 잘못하는 느린 학습자 지켜봐 주세요! 저희 아버지가 제게 왼손으로 글씨 쓰는 연습을 시킬 때 “빨리 빨리”를 재촉 했다면 저는 포기 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 문체가 등록까지 되어 있어요.  生障老病死(생장노병사)는 제 문체이니 다시 한번 봐주세요”

- 마선옥 꿈제작소 대표

 지켜봐 주세요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게‘ 저자 마선옥씨는 장애인권 강사 외에 또 다른 명함이 있다. ㈜꿈제작소 대표이다. 친환경 제품인 ‘물 안 주는 스마트 조명 화분’을 개발해 나라장터에도 등록되었다. 연매출 50억을 목표로 세계시장도 노크하고 있다.

꿈 많은 십 대 시절 교통사고로 오른 팔을 절단하고 절망의 삶을 살았던 소녀는, 30년 후, 명강사와 성공한 사업가 두 가지 길을 가는 꿈 많은 중년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녀에게는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았다.

(물 안주는 스마트 조명 화분. 사진=(주)꿈제작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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