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69] 자식 세대에게 배울 것

오은주 기자
  • 입력 2022.08.30 11:07
  • 수정 2022.08.3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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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올해 다같이 59세가 된 영숙씨의 고향 친구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질적인 자식 세대의 행태를 이야기하느라 대부분의 모임 시간을 보냈다. 맛집 앞에 몇시간이고 줄을 서고, 결혼 전에 남녀가 거리낌 없이 같이 여행을 가고, 명품백이나 신발을 사려고 혹은 되팔려고 백화점 앞에 줄을 서고, 어디서나 SNS에 올릴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리는 행태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데서 시작해서 아들딸이 결혼을 한 친구들은 또 그 달라진 결혼 풍경에 열을 올렸다.

아들네 집에 가면 왜 아들이 늘 집안일을 하는지, 딸네 집에 가면 사위가 주방일을 하는 게 기특하고 부러우면서도 왠지 아직은 적응이 안 되는 상태를 토로하기도 했다. 아들이나 사위가 집안일을 흔쾌히 또 당연하게 같이 하는걸 보면 아직도 밥상에 밥숟가락도 놓지 않거나 가스레인지나 인덕션의 불을 한 번도 켜보지 않은 것을 자랑삼아 얘기하는 영숙씨 또래의 구식 남편들은 개조 프로젝트를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우리 남편들도 배웠으면 좋겠다.”라고 이구동성이었다.

영숙씨가 얼마 전 맞벌이 하는 아들네 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던 날 겪은 해프닝도 그러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주방에서 무슨 특별요리를 준비하는지 콧등에 밀가루를 묻히면서 분주했다. 다섯 살짜리 손자랑 모처럼 놀아주느라 할아버지가 더 신바람이 났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레고로 집짓기를 하던 손자애가 다용도실로 쪼르르 가더니 작은 청소기를 들고 와서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요즘 다섯 살 아이는 옛날 초등학생 수준이라더니 어찌나 말이 또렷한지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할아버지는 청소 안 하세요? 아빠는 매일 청소해요.”

아뿔사! 다섯 살짜리 손자는 매일 아빠가 퇴근 후에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왔기에 저녁 시간에 남자가 청소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영숙씨의 남편은 헛웃음을 치더니 일어나서 거실을 청소하는 시늉을 했다.

“우리 손주가 할아버지 교육 단단히 시키네. 오늘 교육 받고 이제부터 당신도 집에서 청소 좀 해요.”

그러나 요즘 손주의 할머니에 대한 질문도 만만치가 않았다. 손주의 머릿속에 든 생각의 흐름은 이러한 것 같았다. ‘엄마는 여자다. 우리 엄마는 회사에 출근한다. 할머니는 여자다. 그러니까 여자인 할머니도 회사에 출근을 할 것이다.’

손자는 영숙씨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어느 회사 다니세요?”

순간 당황한 영숙씨는 ‘할머니는 요즘 회사 안 다녀.”라고 얼버무렸다. 손자는 “우린 엄마는 매일 회사에 다니는데……”라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영숙씨는 그렇게 말하는 손주의 아빠를 출산하면서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러고는 내내 전업주부로만 살아왔다. 손자의 그 말에 과거를 떠올려보니 임신했을 당시에는 남편이 집안살림을 많이 도와주었다. 영숙씨가 전업주부가 되서 살림을 도맡고 나서는 자연히 집안일의 업무분장(?)이 이루어져 지금까지 흘러온 셈이다. 영숙씨는 아직도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게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자신도 늙어가고 남편도 퇴직을 하면 시간이 많아질 테니, 그때를 대비해서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익혀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결혼 5년차 맞벌이 5년차인 아들이 언제 만들었는지 스테이크와 야채구이를 그럴듯하게 준비해서 영숙씨를 식탁으로 불렀다. 영숙씨는 아들과 남편에게 말했다.

“그래, 뭐든지 젊었을 때부터 배우는 게 좋지. 내 아들 잘한다.”

“여보, 우리도 젊은 사람들한테 컴퓨터하고 휴대폰 사용법만 배울게 아니라, 이런 생활방식도 배웁시다.”

“스테이크 쯤이야 나도 구울 수 있다구!”

자연스럽고 평등한 가정 풍경이 주는 편안함 속에서 영숙씨와 남편은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우리도 이렇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많다고 느낀 두 사람은 진정 신중년 부부였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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