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드론으로 보는 세상] 경복궁을 거쳐 청와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門

이종문 기자
  • 입력 2022.09.0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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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이종문 기자] 윤석열 정부 출범 첫날인 5월 10일, 청와대가 일반 국민들에게 개방됐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이승만 대통령이 일제 총독 관저였던 이곳 청와대(구. 경무대)에서 업무를 시작한 후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되던 곳이다. 경무대라는 이름에서 푸른 기와라는 뜻의 ‘청와대’로 바뀐 것은 제4대 윤보선 대통령 시절부터다. 이제는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 기능은 용산과 한남동으로 각각 옮겨졌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청와대에는 본관 집무실 외에 영빈관, 춘추관, 상춘대 등이 있고, 조선 건국 역사의 상징인 경복궁과 이어져 있어 유의미한 유적들이 포진해 있다. 오운정, 침류각, 석조여래좌상(통일신라 9세기), 항아리 모양의 장식기와 절병통 등이 그것들이다. 그동안 엄중한 보안상의 이유로 제한되었던 항공촬영이 청와대 개방으로 인해 일부 허락되어 청와대와 경복궁의 비경을 드론에 담아 보았다.

경복궁(사적 제117호)은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고려의 수도인 개경(開京)으로부터 한양성(漢陽城)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지은 궁궐이다. 명칭은 《시경》의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이란 글귀에서 따서 경복궁이라 했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 제일의 법궁이다.

북으로 북악산이 있고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넓은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가 펼쳐졌다. 1592년 일본의 침략에 의한 임진왜란으로 불타서 없어졌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됐다. 흥선대원군(고종의 부친)이 중건한 경복궁은 500여 동의 건물들이 미로같이 빼곡히 들어선 웅장한 모습이었다.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을 1910년 강제로 병합하고 조선민족 말살정책으로 고종황제를 포함한 왕족을 말살시키고 궁궐도 파괴했다. 그 결과 지금의 경복궁은 실제 면적의 일부만 남아있다.

대표적인 건물로는 근정전과 경회루가 있다. 근정전은 1985년 국보 제223호로 지정됐다. 조선 초기부터 역대 국왕의 즉위식이나 대례 등을 거행하던 곳으로, 1395년(태조4년)에 지은 것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현재의 근정전은 조선 말기인 1867년(고종4년) 11월에 흥선대원군이 중건(重建)한 것이다. 다포양식(多包樣式)의 건물로, 현존하는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경회루는 국보 제224호로서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重層) 팔작지붕건물이다. 근정전 서북쪽에 있는 경회루는 방형 연못 안에 세운 이 건물은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기 위한 곳이었다.

일본이 파괴한 경복궁의 중요한 건물들이 1968년부터 복원 사업을 거쳐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이마저도 그동안 경복궁 뒤로 청와대(대통령집무실과 거주지)가 위치해 있어서 일반인들이 경복궁 전체를 다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경복궁 옛 후원 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청와대, 국민 품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 신청하면 누구나 방문이 가능하다. 올 추석 명절엔 경복궁도 일반에게 무료 공개한다. 경복궁을 거쳐 청와대를 잇는 길에서 우리의 역사를 마주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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