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以目視目] 20세기 '자포니즘'을 대체하는 21세기 '한류' 열풍

정해용 기자
  • 입력 2022.09.2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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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 '부채를 든 여인'

[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20세기의 기원을 찾아 유럽 역사를 뒤지노라면 예상치 못했던 하나의 문화 트렌드와 마주치게 된다. 1900년 전후 40~50년에 걸쳐 유럽의 문화예술계에 유행했던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코드다. 문자만 보고도 짐작이 된다. 일본풍(風)의 영향이 1백여 년 전 유럽 예술 문화계에 넓게 퍼져 있었다.

그 무렵 파리 예술의 주류였던 인상파, 후기 인상파 그리고 뒤를 이은 아르누보와 사실주의 화가들에 이르기까지, 당시로서는 이국적 문화인 일본풍을 앞다퉈 받아들여 그들의 작품에 반영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보자.

유명한 클라우드 모네의 그림 ‘마담 모네’(1875)는 그의 부인인 듯한 모네 부인이 일본식 부채를 들고 붉은 기모노를 입은 초상화다. 그림 속 벽면에는 일본식 부채 그림이 무수히 장식되어 있다. 헨드릭 브라우트너의 ‘하얀 기모노를 입은 소녀’(1894)는 일본식 가구와 침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루돌프 폰 알트의 유화 ‘빈의 일본 살롱’(1855)은 당시 일본식 건물 인테리어가 어디까지 퍼져나갔는지를 알게 해준다.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당대 문호 에밀 졸라의 초상화 속에는 서재의 벽면에 걸린 일본식 풍경화와 인물화를 생생히 보여준다.

19세기 화가인 빈센트 고흐는 “어쨌든 요즘 내 모든 작품은 일본 미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파리에서 열린 일본미술전시회를 보고 나서 사군자와 십장생의 소재들을(매화와 소나무, 학 등) 서양식 유화로 흉내 내 그렸다. 그림 속엔 일본식 한자어들까지 옮겨놓았다.

마네, 모네, 에드가 드가, 르누아르, 고갱, 클림트, 알프레드 스티븐 등이 모두 일본풍의 그림을 최소한 몇 점씩은 남겨놓았다.

‘자포니즘의 쇼크’는 미술가들이나 파리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벨기에, 프로이센, 스페인, 미국, 남미 국가들에도 예외 없이 19세기 말 일본풍의 흔적이 남아있다. 일본판화가 대량 수입되어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소품으로 판매되었다. 일본문화를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문화잡지도 간행되었다. 여러 나라에 일본식 정원과 건축물이 소개되었고, 영국에서는 ‘앵글로-재패니스’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색채가 뚜렷한 유파가 일어났다. 런던에 가부키극장이 등장하여 일본인 무용가가 공연하고, 이사도라 덩컨 등이 일본 춤을 사사하는 등 여파가 컸다. 유명한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가 ‘나비부인’이란 오페라를 작곡한 것도 이 시기였다.

150년 전부터 100년 전까지 유럽에 유행했던 ‘자포니즘’에 관심을 두는 의도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자포니즘’의 배경에는 근대화 개혁으로 스스로 혁신하던 당시 일본이라는 국가를 살피자는 것이다. 동양에는 중국(청나라), 한국(조선), 인도(무굴) 같은 유서 깊은 문명국들이 있었음에도 왜 하필이면 일본이었을까. 서구열강이 눈길을 돌리던 당시 동양에서 정신을 차리고 정치와 사회를 혁신하는 나라는 유감스럽게도 일본밖에 없었다. 서태후가 쥐고 흔들던 청나라는 부패와 자만의 수렁에 빠져 있어, 격변하는 근대화시대의 충격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었다. 서구열강의 소규모 원정군에게 번번이 얻어터지다가 끝내 일본에 짓밟히고 국권마저 잃은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그런 청나라를 상전으로 떠받들며 스스로는 무능과 부패, 그리고 쇄국으로 일관하던 조선 또한 같은 신세를 피할 수 없었다. 1868년 시작된 메이지 유신을 통해 국가 개조에 성공한 일본은 서구열강의 입장에서는 아시아에서 대화상대가 될 만한 유일한 문명국가로 보였을 것이다.

둘째, 근래 현저하게 떠오르고 있는 ‘한류’가 세계의 문명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진지하게 되새겨보자는 의도다. 세계 시민들이 한국의 노래를 듣고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에 열광하고 한국어와 한국의 전통문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찍이 우리 민족에게 이런 기회는 거의 없었다. 자연히 그들은 한민족과 한국인들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더 많은 걸 알고 싶어 할 것이다. 이것은 1백여 년 전 유럽 사회의 ‘자포니즘’ 유행에 비견할만한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은 지금 세계 문명사회의 선두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할 기회와, 지난 역사로부터 배우고 깨우쳐 국가를 혁신하라는 요구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는 셈이다. 더 이상 선진국 따라잡기에 급급하던 한국이 아니다. 지금을 직시하고 1백여 년의 과거를 돌아보아야 한다. 옹색한 자기방어나 군색한 꼼수가 필요치 않다. 이 시대와 국제사회의 요구를 아주 진지하고 냉철하며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슬기롭고 대담하게 응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쓰디쓴 실패들에 대하여 회피적으로 눈을 감아버리고 적당히 안주할 것인가, 전에 없던 민족 웅비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류역사를 리드하는 호연지기의 정신으로 한 단계 더 높이 나아갈 것인가.

이 시대 세계가 우리 민족에게 던지는 기회와 요구 앞에서 우리 각자는 어떻게 응답하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한 번씩은 고민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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