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99] 베트남 하노이, 구걸의 풍경 10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9.29 16:45
  • 수정 2022.10.28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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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 구걸의 풍경

살아있는 것들에게
가장 숭고한 먹기 위해,
제 몸보다 수백 배 큰,
만다라를 끌고,

사람들이 잠든 후
막 생을 마감한 경전을 끌고,
야단법석(野壇法席) 중이다

- 만다라, 윤재훈

(하노이. 촬영=윤재훈 기자)
(하노이. 촬영=윤재훈 기자)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은 사망 전 유언을 남겼다. 자신을 화장한 후 재를 3등분하여 베트남의 북·중·남부에 한 줌씩 뿌려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베트남 정부는 하노이 바딘(Ba Dinh) 광장 앞에 대규모 능을 짓고 호찌민의 시신을 방부 처리한 뒤, 안치하여 참배객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레닌 이후 시신이 미이라로 보존되고 있는 두 번째 공산권 지도자가 되었다.

호찌민의 유언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남긴 유언 중 하나는,

전쟁에서 승리 시,
남베트남 사람들을 탄압하지 말라

는 말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지켜지지 않았다. 대인(大人)다운 풍모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가 사망한 것에 관계없이 베트남전은 3년간이나 지속되었고, 결국 1975년에 북베트남이 승리함으로써 그의 숙원인 베트남의 통일을 이루어진다. 북베트남 정부는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을 그의 이름을 따서 호찌민으로 개명하고, 통일 수도는 하노이로 정했다.
호치민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나 중국에 머물던 시절에 중국 여자와 결혼하여 딸 하나를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이후 혁명동지이자 애인이었던 '응우옌 티 민 카이'하고 결혼하려 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호찌민이 체포되면서 이들 역시 실종되었고, 북베트남 주석이 된 이후 호찌민이 이들을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다. 여기에 베트남에서는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지만 외국에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하긴, 자국의 이익에 따라 정치가의 입이란 쉽게 변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혁명가로 20대 초반부터 노년 시절까지 반평생을 ‘반식민지 해방 투쟁’을 전개한 자주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보트 피플로 탈출한 베트남계 미국인들이나 비슷한 반공주의자들에게는, 베트남 공산당이 벌인 반대파 탄압과 민간인 학살을 방관했다는 평가도 함께 존재한다.

(하노이. 촬영=윤재훈 기자)
(하노이 풍경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요.” 촬영=윤재훈 기자)

밖에 나갔다 들어오니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30대 젊은 부부가 식사 중이다. 베트남의 전통 옷인 아오자이가 잘 어울린 것 같은 여주인은 항상 웃는 얼굴인데, 참 친절하게 대해준다.

학교 갔다 오는 아이, 동생을 업고 엄마와 함께 하루종일 물건을 파는 아이, 빈부의 격차가 극심하다. 이곳도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에 다니는데, 오지마을에서 망태를 메고 엄마를 따라 나온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이곳도 중국이나 미얀마 등지에서 넘어온 소수민족들이 많다.

초라한 휴대폰 가게 앞에는 동생을 등에 업은 초등학생쯤 보이는 여자아이가, 멍하니 진열장을 바라보며 움직일 줄 모른다. 무슨 생각을 할까, 엄마에게 사 달라고 투정을 부릴 수 없는 집안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아이는 무척이나 갖고 싶은 모양이다.

(하노이 풍경 “너무 힘이 들어요.” 촬영=윤재훈 기자)

길가에는 제 몸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할 것 같은 아이에게 엄마는 동생을 업힌다. 그리고 밤새 자신이 만든 수공예품을 지어준다. 오늘 저 아이는 하루종일 낯선 하노이 시내를 떠돌면, 잘 팔리지도 않는 저것을 팔러 다닐 것이다. 부모의 마음이나 철없는 아이의 마음이나, 속절없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 옆에는 어린 소년이 동생을 등 아래로 늘어뜨린 채 힘이 드는지 울고 있다. 오늘 하루 하나도 팔지 못한 모양이다. 멀리서 이방인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부끄러운지 뒤돌아서 버린다. 밥이나 먹었을까, 쓰레빠를 신고 온종일 거리를 따라 떠돌면서 위축된 채 저 물건을 사람들에게 내밀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아이를 업고, 물건을 팔러 다니는 세상, 그 아이들에게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한 번도 서로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눈보다 예민한 촉감으로 서로를 확인한다고 합니다
점자를 만지듯 그릇을 닦지만
그것이 햇빛 아래 얼마나 눈부신지
이 세상에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두 살 때 데려온 광숙이가
“어부바 어부바”하면서 등에 매달리던 기억이
평생을 두고 가장 가슴 아프다고 합니다
겨울바람에 홀로 남은 까치밥처럼
두고두고 시리다고 합니다

밤이 찾아와도
불을 켤 필요가 없는 집이지만
그래도 어두움이 싫어 항상 밝은색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생일날 환한 새 한복을 맞춰 입고
서로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가족들은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창가 햇볕 아래에서
사진에다 얼굴을 대고 아무리 뚫어져라 들여다보지만
세상은 하얀색과 검은색 두 가지로만 보인다고 합니다

네 명의 자녀를 데려다 키웠다지요
국적은 모두 한국 애들이랍니다
태어나면서 앞이 안 보인다는 이유로 버림을 받았다지요
번잡한 시장통에서,
고아원 앞에서 지치게 울다가,
눈 내리는 날, 어느 부잣집 앞에서

2
그게 어디 우리들의 책임입니까
낮달을 보며 한낮을 짖던 개들도
날이 저물면 새끼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부모님은 저를 버렸답니다
제 이름은 서러운 광숙이지요
하마, 조국도 우리를 버린 게지요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에도 무슨 조건이 있답니까
머나먼 바다 건너 異國 땅에서
둥근 사랑 하나 배웠답니다
못 본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을 버릴 수는 없는 게죠

엄마를 찾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꼭 한 번은 만나보고 싶네요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서러운 이야기도 있지요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알 수 없는 그런 얘기 말이에요

어두컴컴한 공간에 홀로 앉으면
오늘도 일산시장 어디쯤 흐르는
바람을 만납니다

- 둥근 사랑. 니콜스 맹인 가족. 윤재훈

(“하나도 못 팔았니, 엄마 미안해요.” 촬영=윤재훈 기자)
(하노이 풍경 “하나도 못 팔았니, 엄마 미안해요.” 촬영=윤재훈 기자)

저 아이는 하루 종일 물건을 팔지 못했을까? 엄마도 아이도 속이 상한 모양이다. 어디선가 낯이 익은 풍경이다. 아마도 인도나 네팔, 캄보디아, 미얀마 어디쯤에서도 이런 풍경이 펼쳐졌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느 거리에서도 이런 살풍경(殺風景)은 있을 것이다.

밤새 맨발로 매트로 주변을
개처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는,
5, 6세쯤 되어 보이는 아이
유리 조각이라도 밟으면 어떻게 하려고.

인도쯤에서나 왔을까
역 앞에는 할머니, 숙업宿業이 깊어 보이는
목발을 짚은 아빠, 엄마,
또래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
7~8명이나 되는 가족이 떼거리로 몰려다닌다.

아이도 벌써 생의 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이국에 와서 돈이 떨어진 걸까
아니면 단체로 구걸을 하기로
작정이라도 하고 온 걸까?

그래도, 매트로 표는 사서
블랙홀처럼 한없이 깊은 나락 속으로
사라지는데,

아이는 오늘 밤 돌아가
무슨 꿈을 꾸려나

- 구걸의 시련. 윤재훈

(행복한 귀가. 촬영=윤재훈 기자)
(하노이 풍경 행복한 귀가. 촬영=윤재훈 기자)

물처럼 흘러가는 그들의 아픈 현실, 이 지상의 풍경, 구걸부터 배우는 아이들의 눈에는 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참으로 덕이 있는 위정자들이 더욱 절실한 시대인데, 세상은 계속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저 아이를 내보내는 엄마의 마음도, 동생을 업혀 내보내며 사람들이 안쓰러워 조금 더 사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일 것이다.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동물은 먹고 사는 것의 문제다. 거기에는 보다 현명한 위정자와 인치(人治)가 중요할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먹는 문제가 삶의 전부다
먹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먹기 위해 상대에게 거짓말도,
때로는 서슴없이 칼도 겨눈다

깊은 밤, 하얀 벽을 따라
오글거리며 오르는 것들
풀씨처럼 작은 개미들이
제 몸보다 수백 배 큰
거미를 옮긴다

멀리서 보니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이는 듯 흔들리며
거대한 절벽을 오른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가장 숭고한 먹기 위해,
제 몸보다 수백 배 큰,
만다라를 끌고,
사람들이 잠든 후
막 생을 마감한 경전을 끌고,
야단법석(野壇法席) 중이다

- 만다라,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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