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㊻] 백남준의 일생과 예술을 기억하는 공간에서 ‘되감기 버튼’

천건희 기자
  • 입력 2022.11.02 10:33
  • 수정 2022.11.0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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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아트센터, 탄생 90주년 기념전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 2023년 3월까지 전시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성장기를 보낸 창신동 한옥을 리모델링한 ‘백남준 기념관’

촬영=천건희 기자
백남준 기념관 / 촬영=천건희 기자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인 세계적인 현대 예술가 백남준(1932~2006)의 탄생 90주년이다. 백남준 작가는 생전에 “나는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서 세상을 떠도는 문화 상인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의 예술과 인생을 보여주는 「백남준 기념관」 과 「백남준 아트센터」를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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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오마주 작품 <웨이브> / 촬영=천건희 기자

「백남준 기념관」은 종로구 창신동 골목 안, 둥근 벽돌 담장의 작은 한옥이다. 이곳 창신동 197번지 일대는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그의 성장기를 보낸 곳이다. 서울시가 창신·숭인 도시재생 사업으로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2017년 3월, 한옥을 리모델링해 「백남준 기념관」으로 개관했다. 이곳은 백남준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이 아니라, 그의 예술적 활동과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곳이다.

박남준 작업실 / 촬영=천건희 기자
백남준 작업실 / 촬영=천건희 기자

한옥 처마 아래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이라는 문구가 걸린 대문을 들어서니 9개의 모니터가 부착된 아치형 영상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마당에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오마주한 김상돈의 <웨이브 파(波)>가 자리 잡고 있다. <다다익선>의 1003개 텔레비전 브라운관 대신 투명 아크릴 조각을 사용한 작품으로 고풍스런 한옥과 어우러져 작품의 가치를 더한다. 복도를 따라 내부로 들어서니 백남준 예술의 근간이 되는 다양한 생각들이 재구성되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다.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는 백남준 작가의 말이 마음에 담긴다.

백남준 버츄얼 뮤지엄 / 촬영=천건희 기자
백남준 버츄얼 뮤지엄 / 촬영=천건희 기자

거실에 전시된 ‘백남준 버츄얼 뮤지엄’은 백남준이 즐겨 사용한 아날로그 TV로 백남준의 무한대 시공간을 구현한 가상박물관이다. 아날로그 TV의 로터리 다이얼을 돌리면 백남준의 생애와 작품, 어록 등 관련 자료를 탐색할 수 있는 화면이 6개의 멀티스크린 패널에 펼쳐진다. “비디오는 인연을 묶는 신(神)...새로운 인연이 물결처럼 퍼져나가기를 빈다”는 그의 소망과 함께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다”라고 한 백남준의 말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백남준의 방 / 촬영=천건희 기자
백남준의 방 / 촬영=천건희 기자

백남준의 삶과 관련된 오브제들로 채워진 ‘백남준의 방’에는 백남준의 책상이 있다. 책상 위 공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책상 위 작은 TV에 관련 영상으로 재생된다. 비디오 아티스트 기념관다운 전시로 좁은 공간에서도 여유로움이 있다. 방 한편에는 뉴욕 소호의 백남준 작업실을 사진과 설치물을 결합하여 재현했는데, 색동 깔개를 통해 어린 시절 한국에서의 삶이 작품 활동에 영향을 주었음을 느낄 수 있다.

백남준기념관 카페 / 촬영=천건희 기자
백남준기념관 카페 / 촬영=천건희 기자

「백남준 기념관」에는 전시실 외 지역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있다. 카페에는 창조와 파괴를 하나로 보았던 작가의 뜻을 기려,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 때 사용한 부서진 피아노를 재생한 ‘피아노 테이블’도 한쪽에 설치되어 있다. 한옥에서 비디오 아트를 만날 수 있는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은 소박하지만, 다시 또 오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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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아트센타 / 촬영=천건희 기자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2008년 개관한 「백남준 아트센터」는 백남준의 작품을 소장·전시하는 곳으로 작가 스스로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이라고 명명했다. 외관은 피아노 형태를 연상시키는 곡선으로 외벽은 독특한 여러 겹의 거울 구조로 되어있다. 「백남준 아트센터」의 로고에 사용된 ‘?-␦= ∞’는 백남준이 자신의 54회 생일을 기념해서 만든 작품 속에 적은 수식이다. 하나의 질문에 대하여 그것을 뒤집어 새로운 질문으로 변형시키면 무한한 변형과 순환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백남준 특유의 상상력과 유머 감각은 감동이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백남준 아트센터」 1층에서는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으로 실제로 컨설턴트로 활동한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가 전시 중이다. 1960년대 중반부터 약 20년에 걸쳐 비디오 아트에 대한 지원 당위성과 발전 방향성을 주도적으로 제안했다니 놀랍다. 천재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되는 <TV 정원>, 신소장품 <걸리버> 등을 보며 「종이없는 사회를 위한 확장된 교육」(1968) 등의 보고서를 작성했던 백남준을 새롭게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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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틴 성당 / 촬영=천건희 기자

2층에서 이루어지는 ‘바로크 백남준, 아날로그 몰입을 위하여’ 전시에는 대규모 미디어 설치 작품인 <시스틴 성당>(1993)과 <바로크 레이저>(1995), <촛불 하나>(1998) 등 많은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1993년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시스틴 성당>의 영상은 무작위 연속화면으로 큰 전시장을 뒤덮는다. 머리 위에 쏟아지는 빛과 영상과 소리는 압도적이었다. 전시된 텔레비전과 비디오 작품들은 지금의 고화질이 아닌 해상도 낮은 영상이 주는 분위기로 인해 아날로그적인 느낌을 준다. 백남준의 빛이 촛불에서 시작해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거쳐 레이저에 이른 여정도 느껴진다. 또한 VR 체험 공간이 있어 1963년 독일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을 내가 직접 전시를 관람한 듯 체험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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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레이저 / 촬영=천건희 기자

최초의 인공위성 예술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1984년 방송에서 보았던 기억으로 백남준을 미디어 아티스트로만 알고 있었음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세대를 앞서간 철학자이며 교육자로서의 백남준 말들은 존경심과 함께 가슴에 깊이 남는다.

“다른 것을 맛보는 것이 예술이지

일등을 매기는 것이 예술이 아니다”

“인생에는 되감기 버튼이 없다.”

미디어아트 감동만이 아니라 예술을 매개로 한 사회적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하는 ‘백남준의 보고서 1968-1979’ 전시는 2023년 3월까지 이어진다. 「백남준 아트센터」는 전시장 밖 야외 카페와 뒤 산책로도 좋다. 입장료도 무료이니 여러 번의 방문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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