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01] 하노이 풍경12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11.0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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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풍경

아득한 삼한 시대
어디쯤 놓인 것 같은 학교
누런 들판에서는 쌀 타작 하는
아빠의 굵은 근육에 저절로 배가 불러오고

언제 왔다 갔을까
창틀에는 하얗게 허물을 벗어놓고 간 뱀
그 사이 숲속 어디쯤에는 둥지라도 틀었는지
아기새들이 눈 시리게 하늘을 나는
아득한 전설 속 어디쯤 있는 것 같은 산골 학교
아름다운 동쪽 나라 한국에서는 사라진
아이들의 지저귐에 하루해가 뜨고 진다
- 깔리양족 마을에서. 윤재훈

(하노이 풍경. 촬영=윤재훈)
(하노이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버스는 새벽 5시경에 하노이 터미널에 도착한다. 30세의 싸파 호텔 젊은 여주인은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아준다. 15km 정도 되는데, 택시비는 12만 동(6,000원 정도)이다. 비싼 것인지 싼 것인지는 감이 잘 안 온다.

싸파에서는 오지에 있는 <따핏 마을>을 가는 데는 왕복으로 20만 동을 주었고, 비슷한 거리인 신짜이 마을까지는 왕복으로 10만 동을 주었다. 배낭 여행자들도 가끔은 경비가 약간 넉넉해지는 날은 택시를 타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거기다 친절한 기사까지 만나면 너무 고마워서, 팁까지 주고 싶을 때가 있다. “주머니에서 인심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2만 동을 팁으로 주고 혹시나 그를 다시 부를 일이 있을까 하고, 연락처을 수첩에 메모해 둔다.

거리를 오고 가는 택시들은 매우 급하고 양보가 없었으며, 넘쳐나는 오토바이 때문인지 계속해서 경적을 울린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거리에는 한국에서 온 버스들로 넘쳐난다.

(학교 앞. 촬영=윤재훈)
(하노이 학교 앞. 촬영=윤재훈 기자)

예약해 두었던 <리얼 달링 카페>에 도착했다. 아직 새벽이라 게스트하우스는 조용하다. 그런데 바로 건너편에 있는 <웬즈 하이스쿨>은 아이들의 소리로 소란하다. 시계를 보니 이제 6시 50분을 넘어가고 있는데, 벌써 사위(四圍)는 환하다. 사철 더운 나라라 그런지, 아침이 빨리 밝아오는 것 같다.

그런데 학교 앞은 오토바이로 미어질 정도로 혼잡하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마치 아이들은 소황제 같다. 부모들은 아이들을 내려놓고 서둘러 사라지는데, 마치 혼잡한 시장 바닥에 온 것 같다. 문득 이번에 한국에서 일어난 ‘10. 29 참사’가 오버랩 된다.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참사 사고 현장에서 한 희생자 가족이 사고 현장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국가가 없던 시간"
 
꽃다운 젊은 목숨들이 단지 축제를 즐기러 갔다가 목숨을 잃은 참담한 사태가 일어났다. 그런데 그 와중에 희생자, 사망자, 참사와 사고 등으로 언어까지 통제를 하면서, 국민의 가슴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심지어 일선 기관 종사자들의 가슴에 찬 리본에 글자가 없다. 까닭을 물어보니 아무런 글씨도 못쓰게 했다고 한다. 갑자기 옛 독재 시절로 회귀한 듯하다.

“이제 우리 국민은, 스스로 알아서 기지, 않는다”
이런 망국적인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심지어는 전쟁 전범들의 망언이 들끓고 있는 이 와중에 일본의 관함식에 우리 해군의 군함을 보내면서, '한반도에서 전쟁 억제력을 키워야 한다'며 구걸 외교를 하고 있다. 일본의 여당인 자민당에서조차 초계기 사건으로 시비를 걸며 참가에 유감 표시를 했는데, 배알도 없는 것인가.

"세상에! 전범기로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는 욱일기에, 우리 젊은 국인들의 경례를 강요하고 있다."

대학생역사동아리연합, 대학생겨레하나 관계자들이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욱일기에 경례하는 윤석열 정부 규탄 청년학생 기자회견'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여기에 국회 청문회에 나와 하는 국방부 장관의 말은 더욱 가관이다. 분명한 욱일기 앞에서 욱일기가 아니라고, 정신 나간 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는 과연 어느 나라 국방부 장관인지 인간적인 연민마저 느껴지게 한다. 한마디로 우리의 바다에서 우크라이나처럼 전쟁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 정부에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할 때, 우리보다 못난 인간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는 플라톤의 말처럼, 정말 자학적인 느낌만 끝임없이 파도처럼 올라온다.

(운동장 없는 체육 시간. 촬영=윤재훈)
(하노이 학교 운동장 없는 체육 시간. 촬영=윤재훈 기자)

학교 안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흙이 보이지 않는다. 운동장도 없고, 시멘트로 포장된 조그만 공간 안에서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는데, 어디나 아이들 노는 모습은 비슷하다. 천천히 학교 구경을 나선다. 교실 안에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하는 것이 우리의 교실 풍경과 비슷하고, 매점에는 조무래기들이 모여 햄버거와 우유로 아침를 먹는 모양이다.

영어 선생님과 이야기가 통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체육 시간인지 차들이 어지럽게 세워진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아이들이 운동을 한다. 그래도 이곳에는 아직 교권은 살아 있는 듯하다. 선생님의 권위가 살아있고, 말에 힘이 들어간다. 아마도 교사의 권위에 대한 절반의 책임은 선생님들에게도 있을 것이다. 어디를 가나 아이들은 순박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특히 제기차기 놀이를 많이 한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로. 촬영=윤재훈)
(하노이 학교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로. 촬영=윤재훈 기자)

우리는 어린 시절, 정부에서 주관한 ‘획일적인 교육’의 피해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지천명을 넘기고, 이순도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생각이 획일적이고 단선적이다. 토론 교육은 받아본 적도 없고, 주입식으로만 밀어붙이면 매을 앞세운 강압적인 교육의 피해자이다. 무조건 선생님 말씀에 복종해야 하며, 나의 의견을 낼 수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보다 더 지독한 사람을 또 교육부 장관으로 밀어 부쳤다.

망국적인 일제고사로, 빈익빈(貧益貧) 부익부(富益富)에 과외를 더욱 유발시키며, 사교육을 조장하고, 나아가 ‘사교육 업체와 깊은 유착 의혹’이 있는 그의 임명을 강행했다.

(친구들과 있는 시간은, 어디나 즐거워요. 촬영=윤재훈)
(하노이 학교 친구들과 있는 시간은, 어디나 즐거워요. 촬영=윤재훈 기자)

동산을 넘어 학교 가는 길에 배가 고프면 삐비꽃을 뽑아먹던 그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우리는 일제가 공습을 피해 판자로 지어 놓고 간 시커먼 학교 건물에서, 공부를 했다.

먼지가 내려앉은 조용하던 운동장에
다시 아이들의 소리 왁자해지고
거미줄에 잠자던 노란 거미도
깜짝 놀라 깨어나 길게 은빛 줄을 내리는,

고국에서는 일제시대 공습을 피해
검정 판자 잇대어 짓던 그 아득했던 학교가
아직도 동그랗게 마을 가운데 남아
아이들의 지저귐 소리에 새 학기를 맞는다

그 소리에 잔뜩 물기를 머금었던
꽃봉오리들은 화들짝 깨어나 다시 생기를 찾고
바람에 흔들리며 잠자리를 희롱하는 오지 산마을
오랜만에 본 선생님 얼굴에
아이들의 얼굴 다시 해맑아지고
가을 햇살 아래 생글거리며 달음박질을 친다

아득한 삼한 시대
어디쯤 놓인 것 같은 학교
누런 들판에서는 쌀 타작 하는
아빠의 굵은 근육에 저절로 배가 불러오고

언제 왔다 갔을까
창틀에는 하얗게 허물을 벗어놓고 간 뱀
그 사이 숲속 어디쯤에는 둥지라도 틀었는지
아기새들이 눈 시리게 하늘을 나는
아득한 전설 속 어디쯤 있는 것 같은 산골 학교
아름다운 동쪽 나라 한국에서는 사라진
아이들의 지저귐에 하루해가 뜨고 진다
- 깔리양족 마을에서. 윤재훈

그리고 학교가 파할 무렵이면, 아이들은 ‘국민교육헌장’을 의무적으로 외워야 했다. 매를 들고 우리 앞을 왔다갔다 하던 선생님은 외우지 못하면 집에 보내지 않았다. 지금은 상상이 안 갈 수도 있지만, 그때는 그랬다. 마침내 어떻게, 어떻게, 외우면, 그때사 선생님이 집에 가라고 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외웠다. 위정자들은 그렇게, 의무적으로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그런 획일적인 일제의 잔재 교육을 시켰다. 사실 그들이 일본 군관 학교을 나오고, 음험한 곳에서 조선의 독립군들을 죽이고, 잡아들이고, 배반하는 일을 했으니, 당연한 일인 것이다. 지금도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면 입에서 술, 술, 나오는 슬픈 현실이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에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

반공 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

물론 스승님의 그림자를 밟아서도 안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만큼 선생님 이전에 나이 드신 어른들을 공경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젊은이는 언젠가,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노년들도 평생 봉사하고, 고민하고, 사색하면서, 잉여 인간이나 뒷방 신세가 아닌 진정한 ‘어른’으로 나아가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것이다.

(거리의 찻집. 촬영=윤재훈)
(하노이 거리의 찻집. 촬영=윤재훈 기자)

요즘 며칠 무리를 했는지 무척 피곤하다. 잠결에 옆에 있는 베트남 청년에게 살짝 닿은 듯한데 그가 “아야” 해서 깜짝 놀랐다. 말의 억양이 우리하고 똑같다.

쉬엄쉬엄 하노이 거리를 구경하는데, 어디를 가나 낮으막한 의자에 삼삼오오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더운 나라이다 보니 수분을 많이 섭취해야 되어서일까, 아니면 유난히 차를 좋아하는 민족일까, 차양막 아래 앉아 느긋하게 앉아서 차를 마시는 그들의 모습이, 마치 수행자들처럼 한가롭다.

(부유한 집 아이들인 듯. 촬영=윤재훈)
(부유한 집 아이들인 듯. 촬영=윤재훈 기자)

학교 앞은 토요일이라 그런지 11시 30분 정도 되자 다시 한 번 오토바이 물결이 밀려온다. 우리네 학교 앞과 비슷한 모습이다. 단지 차와 오토바이의 모습만 다를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하노이 시민과 오지마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극명하게 대조되는 듯하다. 싸파 오지에서 사는 아이들은 매일 먼 길을 동생까지 업고 와, 부모님들의 장사를 돕거나, 직접 구걸에 나서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점차 네팔이나 인도, 캄보디아, 아프리카 어디쯤의 모습을 닮아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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