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05] 하노이의 속살...동쑤언 시장 15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12.01 14:43
  • 수정 2022.12.01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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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속살 '동쑤언시장'

그 옛날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미제‘라면 쓰레기도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지금 아프리카의 아이들처럼 미국부대 근처 쓰레기장을 뒤지던
아이들이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옛 시절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다.
-’ 미군부대 앞에서‘. 윤재훈

(하노이 최대의 동쑤언 시장, 막 잡아온 모양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하노이 최대의 재래시장은 (동쑤언 시장), 인근의 모든 농산물이 다 이곳으로 모인다. 오후가 되면 육고기를 파는 상인들이 나와 주섬주섬 고기를 펼친다. 냉장고는 물론 없다. 사철 더운 나라인데, 저렇게 육고기를 밖에 내어놓고 팔아도 괜찮은 걸까, 걱정이 앞선다.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다니는데, 저 낮은 좌판으로 얼마나 많은 먼지가 올라올까?

(돌아갈 줄 모르는 상인들. 촬영=윤재훈)
(하노이 최대의 동쑤언 시장. 돌아갈 줄 모르는 상인들. 촬영=윤재훈 기자)

날이 저물었는데도 상인들은 돌아갈 줄 모른다. 아침에 가지고 나온 물건들을 아직 다 팔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오늘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일까? 쉽게 일어설 기척이 보이지 않는다.

(골목길의 아이들. 촬영=윤재훈 기자)

오늘도 학교에서는 커다란 음악 소리에 이번에는 북까지 치면서 조회를 하는 모양이다. 그 소리에 잠을 깼다. 시계를 보니 아직 7시도 안 되었다.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 보내야 하니 부모들은 더 이른 새벽에 일어났겠다.

사철 더운 여름이다 보니 아침이 빨리 밝아와, 베트남의 아침 시간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이른 모양이다. 아침잠이 많은 이국인에게는 참 고역이겠다. 문화의 현격한 차이를 느낀다. 교문에는 지금도 오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소녀들이 부르는 맑은 노랫소리가 음악이 되어야 하는데, 소음이 되어 버렸다.

(한 그릇의 쌀국수가 저녁 요기다. 촬영=윤재훈)
(한 그릇의 쌀국수가 저녁 요기다. 촬영=윤재훈 기자)

밤이 되자 베트남 최대의 음식, 쌀국수 노점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저마다 저렴하고 간단한 한 끼의 저녁 식단를 위해 시장으로 나온 모양인데, 영양가는 많이 부족할 듯하다. 넘치도록 먹는 우리의 식단에 비해 너무 간소하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살찐 사람을 볼 수 없는 것일까? 먹거리에 있어 우리 국민의 탄소발자국은 세계 수준의 비해 너무 넘치도록 풍요롭다. 국수를 마는 주모의 손길이 바빠진다.

재래시장, 어스름한 길가
남편은 가물거리는 눈으로
다림질을 하고
아낙은 다이알 미싱 앞에 앉아
상인의 낡은 옷을 꿰맨다
재봉선마다 실밥이 터져 나와
지난하게 돌아온
길들이 각인되어 있다

웅성거리던 소리 사라지고
물건마다 파란 비닐이 덮여
고요하게 저물어가는 파장(罷場)

다닥다닥 몇 집이 붙어 있고
시장과 함께 저물어온
주모의 해장국 집에는
돌아가지 못한 상인들만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잔을 따르며
하루의 시름을 풀어내고 있다

벌겋게 타오르는 구공탄 위로
솥뚜껑만 숨 가쁘게 한숨을 내쉬며
하루의 시름을 내뿜는 시간
쓱싹쓱싹, 족발을 썰어내는
주모의 칼질 소리만
상인들의 목소리와 섞여
난장(亂場)을 지나가는데

언제, 들어가실까
아니면, 급한 일감이라도 밀린 것일까
밤을 잃은 노부부
침침한 눈으로 한 땀, 한 땀,
골무를 누르는 바느질 소리만
밤을 사윈다

- 노부부 세탁소. 윤재훈

 

(풍요로운 남국의 과일들. 촬영=윤재훈)
(풍요로운 남국의 과일들. 촬영=윤재훈 기자)

야심한 시간인데도, 남국의 과일집으로는 계속해서 물건이 들어오는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사람들의 숫자는 갈수록 현저하게 줄어든다. 모두 고단한 하루의 일터를 마치고 저마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서둘러 돌아갔을 것이다.

(밤마다 펼쳐지는 노점시장. 촬영=윤재훈)
(밤마다 펼쳐지는 노점시장. 촬영=윤재훈 기자)

베트남은 낮보다는 오히려 밤이 더 사람들로 붐비는 듯하다. 더운 나라이다 보니 낮에는 고치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다, 밤이 되면 나오는 것일까? 뒤안길마다 사람들로 넘쳐난다.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펴놓은 낮은 의자와 탁자에는 사람들이 모여앉아 저녁인지, 야식인지 모를 식사를 하고 있다.

(모란시장 가서 붉은 김치 얹어, 국밥 한 그릇 먹는 것이 소망이다. 촬영=윤재훈)
(하노이 버스. 모란시장 가서 붉은 김치 얹어, 국밥 한 그릇 먹는 것이 소망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9시 차로 (하롱베이)로 출발한다. 막 고개를 드는데 허름한 버스 정면에 한글이 보인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성일중고, 영성중, 모란역이 쓰여있고, 창문에는 보건대, 성보여상 글씨까지 있다. 아마 성남 일대를 휘저으며 숨차게 달리다 폐차가 되어 이곳까지 밀려왔을까, 버스의 모습이 황혼녘을 넘어가는 노파 같다.

한국의 폐차를 수입한 나라에서는 일부러 한글을 지우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이 경제적으로 위상이 높기 때문이다.

그 옛날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미제‘라면 쓰레기도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지금 아프리카의 아이들처럼 미국부대 근처 쓰레기장을 뒤지던
아이들이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옛 시절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다.

- 미군부대 앞에서. 윤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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