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06] 베트남 최고의 관광지, 계림(桂林)을 닮은 하롱베이1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12.26 10:39
  • 수정 2023.01.04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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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최고의 관광지, 계림(桂林)을 닮은 하롱베이

소녀들이 재잘거리며 걸어가는 너머로
금송화 한들거리고, 그녀들 뒤로 파랑새가 따라가다가
솟구치는 곳에 하늘이 흔들리고 있다
그 너머로 아스라이 복숭아 꽃밭이 펼쳐지고 시냇가에서
천렵하는 아이들, 등에는 한낮의 태양이 빛난다

- ‘먼 산 바래서서’, 윤재훈

(버스정류장 모습. 촬영=윤재훈)
(버스정류장 모습.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하롱베이에 가는 버스에 오른다. 에어컨이 너무 빵빵하게 나와 약간 쌀쌀하다. 네팔이나 몽골 등에서는 관광객들을 가장 뒤에 나쁜 자리로 내몰더니, 하노이에서는 앞쪽에 좋은 자리를 준다. 정류장을 출발해 잠깐 가던 버스는 서더니 한참동안 손님을 기다린다.

완행버스이다 보니 가는 곳마다 선다. 차장은 손님을 불러들이기 위해 소리높여 사람들을 부른다. 우리의 옛날 풍경 그대로다. 동전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버스 옆을 탁, 탁, 치며 ‘오라이’ 하던 어린 누이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그 시절 서울역에는 단봇짐을 싸들고 내리는 소녀들로 넘쳐났다. 대개는 직업소개소에서 팔려가는 당나귀처럼 어느 집 식모로 가거나, 아니면 공순이로 갔다. 남자아이들은 공돌이로 가서 장기 노동에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입 하나 덜기 위해서 무작정 상경한 아이들은 밤잠을 잃어가며 돈을 벌어 집으로 부쳤고, 가족들은 쌀을 사서 입에 풀칠을 하거나 장손들의 학비에 보탰다. 하얀 흙먼지를 날리면 산모롱이를 돌아 나오던 그 아득했던 고향길 버스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소녀들이 재잘거리며 걸어가는 너머로
금송화 한들거리고, 그녀들 뒤로 파랑새가 따라가다가
솟구치는 곳에 하늘이 흔들리고 있다
그 너머로 아스라이 복숭아 꽃밭이 펼쳐지고 시냇가에서
천렵하는 아이들, 등에는 한낮의 태양이 빛난다
시냇물 따라 은피리 떼들 앞서가는 길 위로 전신주에는 연이 걸려 있고,
까치도 걸려 있고, 소녀도 걸려 배시시 웃는다
내 모습도 태양 빛에 걸려 길게 늘어지고, 산그늘에 포개지면,
기슭에 앉아 먼 산등성이로 피어오르는 구름을 본다

세월은 유전하는가
저만큼에서 빛나는 모습, 바라볼수록 아련해지는데,
그리운 것들은 다시 무엇이 되는가

매어도 매어도 자꾸만 매듭은 풀리고, 물그림자에 비치는
노란 물봉선에 앉으려던 잠자리는 자꾸만 떠오르고,
호반새의 부리에 수면은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데,
그리운 것들은 다시 무엇이 되는가

- ‘먼 산 바래서서’, 윤재훈

(아이들의 하학길. 촬영=윤재훈)
(아이들의 하학길. 촬영=윤재훈 기자)

길가를 따라 계속 집들이 나타난다. 무슨 일인지 기사는 쉬지 않고 계속 크락숀을 울려대니, 길을 가는 사람이나 차 안의 사람들은 불안하기만 한데, 정작 본인이 가장 힘들 것 같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저절로 하심(下心)이 된다. 고국에서 여행을 할 때는 내가 잘 아는 곳이고 말이 통하는 자국민이라, 경거망동하기가 쉽고 다툴 소지도 많다. 거기에 신고만 하면 출동을 잘하는 한국 경찰들이 있어 믿는 구석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경을 벗어나면 그 양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제는 나를 지켜줄 울타리가 없다. 온전히 나 혼자 판단하고 지켜야 한다. 말도 통하지 않고 얼굴 생김새도 다른 외국인이니 그 나라에서 지켜줄 의무도 없다. 그러다 보니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고, 누구 한 사람 만나도 공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오랜 여행을 하다 보면 저절로 인성이 변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여행은 나를 돌아보기에 참으로 좋은 정신수양이다. 특히 장기 여행일 때는 더욱 그렇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쉽게 화내기보다는, 그 문화 속에 잠겨서 그냥 바라보기만 하여야 한다.

(하노이 풍경. 촬영=윤재훈)
(하노이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그리고 외국으로 나오면 우리 대사관을 믿지 마시라,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약간의 도움이라도 받기 위해 전화라도 한다면, 귀찮아하는 듯한 직원들의 목소리가 역력하다. 왜, 국민의 아까운 세금만 축내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자국민들의 눈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봉급 받으며 쉬라고 한 것은 아닐 텐데, 조금이라도 도와주려는 그런 의지가 없다. SNS에 들어가거나 여행자들을 만나보면, 각 나라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대해서 많은 불평들을 한다. 그 원성이 대단한데 그들은 알기나 할까?

(미소가 아름다운 섬 소녀. 촬영=윤재훈 기자)

11시쯤이 되자 휴게소에 버스가 정차하고 사람들은 점심을 먹는다. 손만 들면 차가 서고, 사람이 서 있으면 탈 것이냐고 묻는다. 속도가 ‘가는 시간 반, 서 있는 시간 반’인 것 같은데, 사람들은 이골이 났는지 뭐라, 말하는 사람도 없다.

거리에 비해, 2시간 훨씬 더 걸리는 듯하다. 드디어 하롱베이(만)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는 갓빠섬에 도착하니, 맨 먼저 참이슬 소주와 ‘빵또아’라는 한국 글씨의 아이스크림이 보여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바닷가에 접해 커다란 재래시장이 있고 아오자이를 비롯한 베트남의 전통 물건들이 많다.

벤치를 따라 베트남 특산물인 대나무 의자가 바다를 조망할 수 있게 쭉 놓여있고, 한 소녀가 앉아있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환하게 웃으며 V자를 한다.

(간식거리를 잡으러 나온 오후. 촬영=윤재훈 기자)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일본인 처녀 여행자와 슈퍼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사고, 그녀에게 과자와 음료수 하나를 선물로 사주었다. 여행지에서는 작은 것 하나만 사주어도 참 고맙다. 우리도 바닷가에 분위기 있게 놓여있는 대나무 의자에 잠간 앉아있는데, 그녀는 내일 가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한지 먼저 하롱베이 투어를 알아본다고 일어선다.

이제 그녀도 가고 나 혼자 슬금슬금 바닷가로 나가는데, 사내들 둘이서 모래와 갯벌이 반쯤이나 섞여 있는 바닥을 삽으로 파서 지렁이와 조개, 쏙새끼, 개불보다 작은 것들을 잡는다.

(그녀의 미소가 천진불이다. 촬영=윤재훈)
(그녀의 미소가 천진불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잠시 후에 옆에 있던 베트남 처녀가 소리를 지르는데, 그녀의 손에 ‘쏙’이 들려있다. 그녀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자신도 한국을 무척 좋아한다고 하며, 나를 보고 연호한다. 엄마는 61세인데, 역시 ‘욘사마’를 열광한단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한국을 3번이나 다녀왔다고 하며 지금 지바에 거주한다고 한다.

아가씨들이 들고있는 봉투에는 커다란 새우들이 여러 마리 들어있다. 방금 들어온 작은 어선에서 뭔가를 받더니, 아마도 거기서 얻은 듯하다.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더니, 이윽고 자기 집으로 가 이것을 먹자고 한다. 오랜만에 보는 새우, 살짝 구워서라도 먹으면 참 고소할 것 같아, 주섬주섬 그녀들을 따라나선다.

가는 길에 베트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처럼, 길거리에 앉아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이 남국의 나라도 중국인들처럼 차를 마시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내가 3잔을 샀는데, 2만 동이다. 가는 길에 집에 가서 먹을까 하고 리어카에서 망고도 3개 샀는데, 3만 동이다.

그녀의 집은 한참을 올라간다. 여기서도 가난한 사람들은 산 위로 올라가는 모양이다. 집 한 채를 세 칸으로 막아, 세 집이 살고 있는 모양이다. 그녀의 집안에는 한국 물건이 참 많다. 한국 화장품 일색에 신라면를 비롯한 여러 종류가 보이고,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모양이다. 휴대폰에 있는 사진들도 보여준다. 그 옛날 우리들의 자취방처럼 작은 부엌이 입구에 달린 방 하나, 그녀는 새우를 익혀오고 과일로 저녁을 때우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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