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107] 하롱(下龍)베이에 한국 술집들 2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12.28 10:31
  • 수정 2023.01.05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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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下龍)베이에 한국 술집들

개떡이 싫어, 고향의 보리밭을 찾지 않는다는 그녀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며,
새새끼처럼 깃을 접고,
그 집에 한 번 들르고 싶다

L∙P판에 지직거리는 음 속으로 빗물이 섞여 흐르고,
아양 섞인 그녀의 젊은 날이 묻어나올 것 같은
구석 자리 어디쯤.
양철지붕 떨어지는 빗소리 들릴 것 같은 곳에, 앉고 싶다

- ‘미로 싸롱’, 윤재훈

(노상 카페. 촬영=윤재훈)
(하롱베이 노상 카페.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하롱베이 해안가로 들어오는 바닷가 입구에서 가라오케라는 한글을 보고 깜작 놀랐다. 이 바닷가 외딴 곳에 한국 술집 간판이 왠일일까? 했는데, 그녀는 그 술집에서 근무한다고 한다. 한국을 대책 없이 좋아하는 이 순박하고 친절한 처녀가 그곳에서 근무를 한다니, 술에 취해 진상 짓거리를 하는 손님들을 매일 밤에 볼 것을 생각하니, 그만 얼굴이 화끈거려진다.

우리들의 젊은 날에도 술집에서는 그런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지 않았는가? 순박한 시골 처녀들은 돈을 벌어 집으로 보내겠다고 무작정 상경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직업소개소에서는 대부분 술집이나 식모, 공순이로 팔려나갔다. 기술 없는 남자들은 공돌이로 갔다. 시골에서 올라와 술도 먹을 줄 모르면서 무작정 술집으로 나와 서투른 술 시중을 들던, 그러면서 먹지도 못한 술을 마시고 토하던 앳된 소녀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녀의 집에서 본 하롱베이, 촬영=윤재훈)
(그녀의 집에서 본 하롱베이, 촬영=윤재훈 기자)

그러다 마음 맞는 총각을 만나면 밖에서 만나 서로 사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녀들은 업주들의 농간에 속아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빛만 불어났다. 가끔은 그런 그녀를 이 술집에서 빼내겠다고 힘들게 모아놓은 돈까지 탕진하고 마는, 그런 순박한 총각들도 있었다.

대부분 지하실에 있던 쌀롱들, 간혹 친구들과 몰려가 맥주에 비싼 안주를 시켜놓고 흥이 오르면, 올갠의 반주에 맞춰 비스듬하게 어깨춤을 추는 송창식의 ‘고래 사냥’이나 윤향기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불렀다. 특히나 후렴구에 ‘별이 빛나는 밤에’를 세 번이나 열창했던 그 진하고 아련했던 후감(後感)이 오늘 더욱 애틋하게 다가온다. 물론 오브리도 있었다. 어렴풋이 그 분위기에 젖어본다.

너와 내가 맹세한 사랑한다던 그 말
너와 내가 맹세한 사랑한다던 그 말
차라리 듣지 말 것을 애당초 믿지 말 것을
사랑한다는 그말에 모든 것 다버리고
별이 빛나던 밤에 너와 내가 맹세하던 날
사랑한다는 그 말은 별빛 따라 흘렀네

머나먼 하늘 위에 별들이 빛나던 밤
그리워요, 사랑해요, 유성처럼 사라져 버린
별이 빛나던 밤에 너와 내가 맹세하던 날
사랑한다는 그 말은 별빛 따라 흘렀네
별이 빛나던 밤에 별이 빛나던 밤에
별이 빛나던 밤에

(그녀의 방 안. 촬영=윤재훈)
(하롱베이에서 만난 그녀의 방 안. 촬영=윤재훈 기자)

어둠이 깊게 내린 이국의 밤 바닷가, 술에 취해 같이 노래를 부르던 한국의 밤하늘, 그 지하실 술집에서 만났던 소녀들이 생각난다.

그녀는 술도 못하는데,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 참 친절하다. 한국문화에 대해 상당히 알고 있으며, 직접 음식을 집어주기도 한다. 그녀의 집에는 내가 보지도 못한 한국 물건과 화장품들로 가득하다. 

하롱베이 보러 갓빠섬에 이렇게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듯한데, 술집에서 매일 시달릴 그녀의 뇌리 속에 한국인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지금도 한국인 관광객들은 뱀탕집과 마사지 샵, 사창가들을 전전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런데도 한국을 그렇게 좋아하는 그녀의 생각까지도 궁금하다. 지금도 한국인들이 미국을 동경하는, 그 마음과 닮았을까? 알전구가 반짝이던 가라오케의 풍경은 그 옛날 어느 골목길을 돌다가 만났던 허름한, 그 룸살롱 분위기와 많이 닮았다.

허름한 골목을 끼고 돌면
그 초입 어디쯤 싸롱이 하나 숨어 산다
짙은 화장에 속눈썹 반쯤 떨어진
초로의 아주머니가 아양을 떨고 있는,
반쯤만 살아있는 네온싸인처럼
카운터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그곳에.
입 하나 덜겠다고 나섰던 길이
이제는 다 저물어 가고 있다고 애달아하는 그녀가 24시간 갇혀 산다

개떡이 싫어, 고향의 보리밭을 찾지 않는다는 그녀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며, 새새끼처럼 깃을 접고, 그 집에 한 번 들르고 싶다
L∙P판에 지직거리는 음 속으로 빗물이 섞여 흐르고, 아양 섞인 그녀의 젊은 날이 묻어나올 것 같은 구석 자리 어디쯤.
양철지붕 떨어지는 빗소리 들릴 것 같은 곳에 앉고 싶다

그녀의 초라했을 젊음과 이 밤 같이 마주 앉아,
한 번쯤 그의 인생 토닥거려주며, 술 한 잔 나누고 싶다

- ‘미로 싸롱’, 윤재훈

(갓빠에 있는 하롱베이 시장. 촬영=윤재훈)
(갓빠에 있는 하롱베이 시장. 촬영=윤재훈 기자)

하룡(下龍) 야시장(夜市場)이 엄청나게 크게 난장(亂場)을 펼치고 있다. 옛부터 머리 위에 거대하게 똬리를 틀고 앉아 상전의 나라로 모시던 중국 아래에 있다는 말인가, 아니면 바다 속에서 불쑥, 불쑥, 용처럼 솟아난 섬들이란 말인가?

길거리 시장에는 베트남의 특산물을 비롯해 한국 물건들이 많이 보여서 신기한데, 특히 신라면이 쌓여있다. 신라면 사발면은 32,000d(1920원)이고, 그냥 신라면은 23,500d(1440원) 정도 한다. 아마도 하롱베이는 다른 지역보다 한국인이 특별히 많이 와서 그런 모양이다. 양배추처럼 보이는 것을 잘게 썰어 마치 백김치처럼 보이는데, 베트남 김치인 (루에)라고 하고, 마늘은 <우떠이>라고 한다. 

갓빠섬에는 윤락도 공공연히 성행하는 것 같다. 길거리에서 외국인으로만 보이면 서슴없이 다가와 호객를 한다. short time 250,000d, long time 300,000d이라고 손가락을 모은다. 세움(오토바이) 기사들도 입만 열며 만연되어 있는 듯 “푹푹” 한다.

과거 미국이 우리나라에 와서 저질렀던 폭력들이 새삼 뉘엿뉘엿 떠오르는데, 우리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인다? 세계 각국에서 위안소(慰安所)의 문제를 여론에 환기시키고 있는 이 마당에, 꼭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가난한 식탁, 저녁 풍경. 촬영=윤재훈)
(가난한 식탁, 저녁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길거리에서는 굴 큰 것 6개를 한 접시에 모아놓고 5만 동(약 3천 원)을 정도 하는데, 먹지 못하고 온 게 못내 서운하다. 반지락 한 접시는 스무여 개가 올라와 있는데, 3만 동을 한다.

해안가를 따라서는 기념품 가게들이 쭉 늘어서 있다. 어디를 가나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오는데, 아주 시끄럽고 무례하다. 도대체 저들의 불손한 무례함은 어디에서 나올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히줄구레한 작업복에 4차선 도로를 꽉, 채우던 그 자전거와 오토바이들이 사라지고, 세계 최고의 고속철이 다니기 시작하니 그럴까? 길거리나 역 바닥에 엎어져 누워 구걸을 하거나, 소매치기가 만연하던 모습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물건을 사면 잔돈을 던지고 열차 안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바닥에 가래침을 밭던 그 완행열차에 대한 기억들은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다. 이제는 고속철 안도 완연 조용해지고 말이다.

(아오자이 선이 고운 여인. 촬영=윤재훈 기자)

한국인들도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막 신흥강대국으로 부상하여 간다고 가난한 자국민들을 얍잡아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예전처럼 뱀탕집이나 맛사지샵을 전전하는 개념 없는 여행이 되어서도 더 더욱 안될 것이다.

국경을 벗어나면 ‘내가 곧 대한민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의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Korea라는 나라의 표준을 잡을 것이다.’,
특히 오지 산마을이나 외딴 섬마을 가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은 세상에 태어나 한국 사람을 처음 본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있는 줄도 모른다.
BTS나 싸이는 어디, 미국 가수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더욱 옷깃이 여며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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