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㊵] 글쓰기교실 댓글놀이

윤창식 칼럼니스
  • 입력 2023.02.02 15:5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창식-수필가-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윤창식
-수필가
-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독고영(獨孤永)은 정년퇴직 후 G군청 문화관광과에서 마련한 '탐진강 글쓰기교실'에 푸른다슬기라는 아이디로 참여하게 되었다. 독고영은 초등시절 방학숙제로 일기 몇 번 써본 것 외에는 숫제 글쓰기라는 낱말도 생소할 지경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세상 주변의 모든 것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으며 진솔하게 서술하면 된다는 글쓰기 강사의 말에 용기를 얻었고 이러저러한 글을 써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기도 하였다.

홀아비 신세로 산 지 어언 3년이 되어가는 어느 날 독고씨는 파머스마켓 반찬코너에서 사온 멸치볶음을 아침 밥상에 올리는 순간 눈물이 핑돌았다. "옳지! 바로 요거다." 그이는 <꼴뚜기>라는 제목으로 단숨에 글을 써내려갔다.

아침 밥상 멸치볶음 속에

어린 꼴뚜기 한 마리 들어 있다

볼그스레한 몸통에 잉크 색깔 두 눈

제법 톡 튀어나온 모습 애처롭다

어찌 이민족 틈에 끼이게 되었나

그에게도 한때는 푸른 조국이 있었으리.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글쓰기교실 홈피에 첫 시를 올려놓고 반응(댓글)을 살폈으나 왠일인지 입질조차 없다. 이럴 수가! 독고영은 엄청난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비록 시는 잘 못쓰지만 날마다 동료들 글에 손가락 아프도록 수많은 댓글로 화답해 주지 않았느냐 말이여. (조)용필이의 '상처'라는 노래만 자꾸 입에서 맴돈다. '상처난 날개를 접어야 하나'. 그럴 순 없지. 독고영은 고심 끝에 고독한 결단을 내렸다. 도플갱어를 넘어 열 명의 가상 회원 아이디를 만들어 스스로 <꼴뚜기>에 댓글을 달기로 한 것이다.

- 패랭이꽃 : 와우, 푸른다슬기님의 첫시 쵝오쵝오! 엄지 척!

- 생강캐는남자 : 생강처럼 시가 알싸하군요! 눈물나요...

- 빗물한잔 : 꼴뚜기가 넘 애처로워요. 으흐윽.

- 나만밤나무 : 멸치는 죄가 없는 것으로 합시당~ㅋㅋ.

- 넝마낭만 : 이 시에서 말하는 '푸른 조국'은 파란 와이셔츠를 입은 '저기 그분'인가요?

- 자전거빛살 : '볼그스레한 몸통'과 '잉크색 눈깔'은 대비가 참 잘 된듯 합니다~.

- 푸른다슬기 : 빛살님, 눈깔이 아니고 눈알임당~^^.

- 날선낫자루 : 마지막 구절은 오마주 기법인가요?

- 푸른다슬기 : 넹 맞아요~. 시짓기 강사님이 가르쳐 주셨잖아요.

- 천칭자리 : 둘리만화에 '꼴뚜기별에 꼴뚜기'라는 대사가 나오는데요. 설마 그 꼴뚜기는 아니겠죠? ㅋ.

- 불꺼진창 : 시 작품이라기 보다는 뒷골목 인생의 넋두리로 들리는 디요잉~ㅎㅎ.

- 신사동독나방 : 노벨상이 보여요~. 다슬기님 파이팅팅팅!!!

다음 날 독고영은 표정관리를 하며 군청 글쓰기교실에 들어섰다. 동료 회원들은 하나같이 심드렁을 넘어 독고씨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상처는 늘 자신의 몫이런가, 자탄을 하며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수십 명의 회원들은 함성을 지르며 그이에게 이른바 선빵 세례를 퍼붓는다. 프로야구 1군 무대에서 생전 처음 안타를 치면 선후배 동료들이 짐짓 무반응이다가 그 선수가 실망감을 보이는 순간 헬멧을 두드리며 요란한 퍼포먼스를 해주듯 시창작실엔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그래 좋다! 오늘 저녁은 꼴뚜기 초무침 안주에 막걸리는 내가 쏜다!"

이것이 바로 시의 힘인가. '고독은 너의 고향으로나 하라'며 호기스럽게 프리드리히 니체의 독백을 뒤집은 독고영은 시 한 편으로 이제야 만년의 고독을 이겨난 것일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