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㊺] 반지를 찾아서

윤창식 칼럼니스트
  • 입력 2023.11.3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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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br>-수필가<br>-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br>​​​​​​​​​​​​​​​​​​​​​-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윤창식
-수필가
-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허운식은 새벽녘에 구들장을 등에 지고 누워 늘 하던 버릇대로 손가락 마디마디를 주무르다 흠칫 놀라고 말았다. 왼쪽 약지쪽이 허전했다. 27년째 끼고 있던 금반지가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워매! 요것이 뭔일이여?' 순간 운식은 머리맡에 놓인 스마트폰 후래시를 켜서 왼손을 살펴보니 정말로 반지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다. 운식은 반 미치갱이가 되었다. 날이 채 밝지 않은 방과 거실 화장실 등불이란 등불을 죄다 켜면서 새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얼릉 좀 일어나보랑께. 아직도 안 일어나고 자빠져 있는가!" 경기도 군포 변두리 반지하에서 첫살림을 차린 날부터 육십 평생 아내 앞에서는 끽소리도 못하던 운식은, 갱년기가 시작되어 밤마다 거의 잠을 못 자던 아내에게 냅다 소리를 질러댔다. 얼척없이 나대는 운식의 서슬에도 아랑곳 않고 황여사는 뒤늦게 찾아온 새벽잠에 깊이 빠져 있었다. 신혼 초부터 7년을 살았던 군포 반지하까지 반지를 찾으러 가봐야 하나, 라는 생각까지 들자 한 자락 서글픔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솟아오르던 감정의 맥박을 겨우 억누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잠시 숨을 고르자 허운식은 '시인우체부'라는 별명으로 고향사람들의 칭송을 들으며 시골길을 누비던 일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운식은 우연한 기회로 우정사업본부 사보인 <우정郵政> 소식지 독자란에 시를 써보내 다음 호에 운좋게 실리는 바람에 좁디좁은 시골에서는 시인우체부로 통하게 되었던 것이다.

운식은 아까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본다. 만장(萬丈)까지는 아니었으나 꽤 파란(波瀾)했던 인생의 동선을 차분하게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그러한 마음속 여정은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 나선 순례자 같기도 했다.

사실 운식은 어릴 적부터 커서 무엇이 되겠다는 웅혼한 꿈을 꾸어본 적은 없다. 생각을 좀 깊이 한다는 것 말고는 딱히 잘 못 하는 것도 잘 하는 것도 없었고 그저 시간의 궤적에 따라 순응하는 것이 그나마 그이가 가진 미덕이라면 미덕이었다. 그렇듯 타고난 운식의 평범한 성정 때문에 오히려 인생이 파란해졌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라는 말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도드라지지 않는 부분에는 뭔지 모르게 짠한 아쉬움이 내려앉아 있듯 허운식이라는 생물체의 운신에는 알 수 없는 고독감이 늘 따라다녔다. 하지만 운식에게 고독이란 소외감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는 듯했다.

허운식은 학창시절 교과서 외에 읽은 책이라고는 중1때 짝꿍이 빌려 준 <돌아온 래시>라는 동화책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고관 대작집에 팔려간 래시라는 콜리종 개가 끝내 옛 소년주인을 찾아가는 길 위의 마디마디는 수만 권의 책이 쏟아내는 별의별 이념과 교훈보다 훨씬 더 운식을 키운 힘이 되었다.

운식은 그동안 크게 찾은 것이 없었으니 적게 잃을 것도 없는 삶이었기에 시인우체부가 된 것에 늘 감개무량한 나날이 아니었던가. 남도땅 진강읍내 대서소를 나다니던, 운식의 누나 시아버지 소개로 운식이 깡시골 간이 우편취급소 집배원이 된 것은 쉰 살이 가까오던 때였다. 서울 가리봉동 만물대장간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하여 여러 달 지나던 무렵이었다.

묵묵히 쇠를 달구고 두드리며 별의별 철물 도구를 만들어내는 대장장이의 노동을 운식은 경이로운 눈으로 보라보곤 하였다. 대장장이 시다생활을 끝내고 너댓 달쯤 되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운식은 아내가 서랍장에 감추어 둔 어머니의 금비녀를 몰래 꺼내어 호주머니에 담고 대장간으로 향했다. 그 금비녀는 운식의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주고 떠나신 유물이었다. 환갑 때 칠남매 자식들이 돈을 모아 마련해드린 금비녀였던 것이다. 평생 소원이던 금비녀를 운식의 어머니는 왠일인지 머리에 한 번도 꽂은 적은 없었다.

그날은 대장간 주인 아들 결혼식이 있는 관계로 허운식 혼자 대장간 문을 지키며 자잘한 작업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철물의 판로는 많지 않았으나 간간히 손님이 찾아오고 운식의 대학생 조카가 만들어준 '쇳물의 정원'이라는 유튜브 구독자들이 인터넷 주문을 넣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운식은 잠시 뜸한 시간을 이용하여 풀무질용 참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스마트폰에 '반지'라는 검색어를 넣어보았다 :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가 헤라클레스의 도움으로 코카서스 바위산에서 풀려난 기념으로 반지를 끼었다...인간 세계에 있어 반지의 시초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사랑하는 남녀는 징표로서 삼베나 갈대를 땋아 만든 고리를 주고 받았다."

운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고리는 원의 형태이므로 변치 않은 영원한 사랑을 상징할 만하군. 그렇지만 운식은 신화 세계의 반지 이야기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운식은 호주머니에서 어머니의 금비녀를 꺼내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만물대장간은 없을 건 없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그 중 다른 대장간에선 볼 수 없는 특이한 쇠구조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뭉툭한 쇳덩이 위에 미세하고 정밀하게 홈을 파내어 만든 주형틀 모양의 반거푸집이었다. 그것은 대장간 주인 아들의 작품이었다.

가업을 이으라는 만물대장간 아버지의 성화에 아들은 마지못해 대장간이나 진배없는 직업전문학교 금세공학과에 들어갔다. 그 녀석은 가끔 어디서 구했는지 불순물이 많이 섞인 듯한 금은부치를 들고 대장간에 나타나 고온의 철제 주발에 녹여서 그럴싸한 반지 모양을 만들기도 했다. 손재주가 나름 좋았던 아들녀석이 그런 작업을 편하게 하기 위해 고철 덩이에 동그란 홈을 새기는 재주를 부려놓았던 것이다.

대장간 아들은 커플 반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자기 여친에게 끼우고 도망 간 후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운식은 아들놈이 도망갔다는 주인의 말이 떠올랐으나 나중에 아들이 정말로 그 여자친구와 결혼했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허운식은 대장간 아들이 하던 대로 어머니의 금비녀를 고온의 풍로불을 이용하여 쇳덩이를 최고조로 달구어서 반액체 황금쇳물을 강철 그릇에 옮겨담는다. 하지만 손재주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운식으로서는 신축 공사장 선쟁이 토수가 흙방바닥을 억지로 고르는 일처럼 고난한 작업이었다. 해는 뉘였거리고 아들 결혼식을 마친 주인장이 금방이라도 들이닥칠 것만 같아 운식은 조바심이 났다.

'에라 내친 걸음이다 작껏!' 운식은 호기를 부렸다. 언제 한 번이라도 무슨 완성된 삶을 살았더냔 말이여. 손가락에 잘 끼워지기만 한다면야 프로메테우스의 반지만도 못할소냐! 달구고 두드리고 줄과 쇠칼로 깎아내고 가느다란 샌드페퍼로 문지르고 악전고투 끝에 금가락지 두 쌍을 겨우 만들어냈다. 운식은 아내의 예쁜 손마디를 만져본 지가 아득했으나 까짓것 대충은 맞을 것 같았다. 투박하게나마 동그런 두 쌍의 금반지는 이제 막 도봉산을 넘으려는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반짝이는 것은 금일 가능성이 높다. 14K든 18K든 무슨 대수랴.

운식은 비녀를 녹여서 반지를 만들어내자 전에 없이 제법 으쓱해졌다. 하지만 그 답지 못한 자만심 때문이었을까, 대장간 일이 손에 익을만 하던 어느날 운식은 벌겋게 달아오른 쉿덩이를 잘 못 건들어 오른손에 큰 화상을 입고 더이상 정교한 철물작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누나가 동생의 딱한 사정을 시아버지께 하소연하여 겨우 시골 우편취급소 임시직 집배원으로 내려가게 된 것이다.

힘들게 손수 제작한 금반지를 잃어버렸으니 허운식의 상심은 매우 컸다. 운식은, 눈을 비비며 뒤늦게 일어난 아내의 손가락을 그윽한 눈길로 살핀다. 아내도 빈손이었다. 착하기만 하던 아내가 언젠가 쓰부 다이아라도 한 번 끼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투정을 한 후로 아내는 늘 빈 손가락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그래도 반지하 옆으로 비스듬히 펼쳐진 풀밭에서 세잎클로버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어 어린 아내에게 끼어주던 신혼 초의 기억만은 늘 운식의 마음을 촉촉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사랑 실은 우편 배달꾼 허운식은 늦가을 시골길을 달리며 거대도시 서울을 전전하던 날을 떠올리곤 한다. 그럴 때면 남자도 갱년기를 겪을까 싶게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푸슷 웃음이 나기도 하였다. 그날도 우편 배달을 마치고 우편취급소에 들러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무심코 운식은 간이소파에 놓인 지방신문 한 귀퉁이에서 광고성 기사를 보게 되었다.

전반협(전국반지협회) 창설

30주년 기념 문학작품 공모

(글의 소재는 반드시 '반지'로 할 것)

□시 부문/수필 부문

- 대상 각 100만원

- 우수상 각 50만원

□후원: 전통대장간 활성화 추진위원회

광고를 보는 순간 하운식은 큰딸아이의 반 돈짜리 돌반지를 4만 7천원에 팔아먹었던 날이 어젯일처럼 뼈아프게 다가왔다. 운식은 잽싸게 인터넷 검색어난에 '금 1돈에 얼마?'라는 글귀를 새겨넣었다. 검색 결과값이 뜰 때까지 시간이 참 멀게만 느껴졌다.

금 1돈(3.75g) 308,641.16원

순간 운식의 눈에 비친 숫자가 가물거린다. 금 한 돈이 삼만팔천이면 몇 십년 전보다 겁나 많이 내렸는디? 아닌가? 운식은 눈을 끔벅거리며 스마트폰에 찍힌 숫자를 다시 들여다본다. 삼백만팔천원이라고? 그러면 금 세 돈은 월마여?

운식은 숫자에 약한 탓만은 아니어서 돌아보니 수십 년 동안 금이라는 글자와 담을 쌓아온 터라 금값이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허운식은 자기도 모르게 멋적게 웃으며 반지 자국만 동그랗게 남은 왼쪽손 약지를 다시 만져보았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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