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㉑] 아시아 오지 기행 2_몽족의 새해풍속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10.08 11:01
  • 수정 2020.10.2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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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오지 기행, 고산족 순례

몽족의 새해풍속

 

성소는 어디에 있는가
지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그 마음의 성소를 찾아
순례하는 사람들
- 마음의 성소(聖所), 윤재훈

새해 제례를 치르기 위해 아침부터 마을 어른이 사시는 이집으로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다. 촬영=윤재훈
(새해 제례를 치르기 위해 아침부터 마을 어른이 사는 집으로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다. 촬영=윤재훈)

몽족의 새해풍경

고대로 올라갈수록 인간에게는 일거리가 많고 놀거리가 부족했을 것이다. 그런 고단한 삶 속에서 명절의 의미는 참으로 각별했다. 하물며 남의 나라 땅으로 넘어와 수십 호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 소수 민족에게는, 그 끈끈함이 형제마냥 더욱 진하게 다가오리라. 특히나 몽족은 중국에서 넘어온 소수민족이다 보니 춘절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어 대략 보름 정도 모여 논다.

그러나 바로 한 모롱이만 돌아가며 미얀마 국경을 넘어온 깔리양족 마을 사람들은 특별한 행사를 치르지 않는다. 평소와 다름없는 옷에 마당에 있는 커다란 깡통 안에 장작불을 피우고 삼삼오오 모여 허름한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봉초를 말아 피우고 있다. 어느 집 마당에서는 마을 사람이 머리를 깎아주고 있다

아마도 미얀마에서 내려온 그들에게는 특별한 새해 행사는 없는 모양이다. 하긴 타이력으로 그들의 새해는 4월 13일이며, 이날이 바로 세계적인 물축제 송크란과 같은 ‘더굴라 축제’가 미얀마에서 열광적으로 열린다.

올 설날 잔치는 스무엿새 날부터 가겟집 한 군데에서 시작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농사 밑천인 미니트럭을 새로 사도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마침 이 집은 새해를 맞을 요량이기라도 한지 도요다 미니 트럭까지 새로 사, 새해 행사와 함께 지낸다. 돼지를 잡고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 같이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하루를 보낸다. 순박한 산마을 사람들은 어느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이고, 멀리서 친척들까지 온다.

트럭은 소처럼 농사 밑천으로 깔람삐(양배추)를 하루 종일 수확하여 치앙마이 새벽시장에 실어 나르는 용이다. 하루 종일 수확해 밤이면 깔람삐가 휘어지도록 실고, 산모롱이를 굽이굽이 돌아 치앙마이 새벽시장에서 경매하고 돌아온다. 타일랜드는 일본을 롤모델 국가로 삼고 있어서 수많은 오토바이는 거의 전차종이 일본산 천지이며, 차들도 대부분 도요다가 많다.

(아버지와 마을 어른이 맨 처음 실에 콧김을 쐬고 기를 불어넣은 다음 돌린다. 촬영=윤재훈)
(아버지와 마을 어른이 맨 처음 실에 콧김을 쐬고 기를 불어넣은 다음 돌린다. 촬영=윤재훈)

먼저 집주인과 마을 어른 한 분이 실타래를 양 손에 들고 기를 넣듯 입김을 불어넣고 축원을 한 다음 옆으로 돌리면, 다음 사람이 받아 똑같은 동작을 한다. 이렇게 해서 실타래가 한 바퀴 빙 돌아오자 두 사람이 그것을 들고 밖에 세워둔 차로 간다. 마치 우리가 차를 사면 고사를 지내는 것과 비슷하다.

한 사람은 실타래를 들고 있고 한 사람이 야자수 잎사귀 같은 것을 들고 무사고 등 축원을 하며 차를 쓸듯이 하며 한 바퀴를 돈다. 그리고 나자 실 뭉치를 들고 있던 사람도 역시 축원을 하며 실을 들고 왔다 갔다 하다가, 무사고를 기원하며 핸들에 묶어준다.

후손들이 아무 사고 없이 농산물 많이 실고 나르며 돈 많이 벌게 해달라는 듯이. 차례를 지내는 그들의 표정을 정말 진지하다.

옛시골집 광이 생각나는 풍경. 촬영=윤재훈
(옛 시골집 광이 생각나는 풍경. 촬영=윤재훈)

그들의 행사 속으로

이제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될 모양이다. 누군가는 200여 년 전에 자신들의 선조들이 중국에서 내려왔다고 하고, 그 전통은 중국이나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 등 다른 몽족들과 비슷하다고 한다.

집 안 땅바닥에 포장이나 자리를 깔고 밥과 돼지고기국에 오늘은 야채까지 놓고 사람들이 빙 둘러 앉고, 술잔이 두 개씩 양쪽으로 도는데, 마치 ‘우리는 하나’라는 단합의 의미도 있는 듯하다.

술잔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한국의 전통과 닮은 것 같기도 하여, 정겨워 보이기까지 한다. 시계 방향으로 도는 두 잔은 왼쪽 잔부터 마시고, 반대 방향으로 도는 두 잔은 오른쪽 먼저 마신다.

16, 7세쯤 보이는 소년들이 주전자에 술을 담아 따르는데, 첫 잔은 받은 사람이 마시고 만약 양이 많으면 두 번째 잔은 옆 사람에게 주기도 한다. 술을 따르던 소년들도 넙죽넙죽 잘도 받아 마시는데, 이 나이쯤 되면 한창 연애를 시작할 때라고 사람들이 웃는다.

잠시 후 이번에는 버팔로잔이라고 하는 큰 잔과 우와(소)라고 하는 작은 잔이 돈다. 큰 잔부터 마셔야 하며, 역시 작은 잔은 옆 사람에게 주기도 한다. 다 마시고 나면 반드시 다음 사람에게 술잔을 기우려 안이 비어 있음을 알리고 난 다음 권한다.

새로 사람이 오면 서로 반가워 부르며 옆에 앉히는 것도 우리와 풍경이 비슷하다. 이 집은 특별하게 몽족 녹차까지 나와 고깃국을 먹고 난 뒤 후식으로 좋다. 왁자지껄한 이야기 속에 그들은 일 년 동안의 고된 농사일을 잊고 긴 설 명절에 한껏 들떠 있다. 그들의 등 뒤로는 올해 수확한 쌀들이 배부르게 쌓여있다.

술들이 얼큰하게 취해올 때쯤 자손들이 동네 어른들에게 돌아가면서 땅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올린다.

(큰아들의 손목에 실을 감아주고 더러는 돈도 준다. 촬영=윤재훈)
(큰아들의 손목에 실을 감아주고 더러는 돈도 준다. 촬영=윤재훈)

 

그리고 다시 실타래를 돌리더니 새끼 꼬듯 하얀 실을 꼬아 왓(사찰)에서 스님들이 신도들에게 하는 것처럼 이 집 큰 아들 손목에 묶어주고 축원을 한다. 일부는 20b(800원) 정도를 큰 아들 손에 쥐어주기도 한다. 그는 공을 모는 기술이 뛰어나 저녁마다 마을 학교에서 열리는 동네 축구에 나가며, 나도 가끔씩 그들과 어울렸던 기억이 아직 새록하다.

새해가 찾아오니 사람들 마음도 들뜨고, 노점도찾아오고. 촬영=윤재훈
(새해가 찾아오니 사람들 마음도 들뜨고, 노점도 찾아오고. 촬영=윤재훈)

집 밖으로 나오니 그새 삼거리에는 먼 도시에서 들어온 장사꾼 한 사람이 부인과 함께 포장을 치고, 몽족 옷을 비롯한 일상용품을 팔고 있다. 살라(정자)에는 술에 적당히 취한 마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적막한 산마을을 깬다. 몽족 친구인 ‘찡쯩리’의 집 앞에는 장작불이 피워져 있고 사람들이 떡을 굽고 있다.

(술을 내리는 솜차이 둘째 엄마, 이제 40세인데 이빨이 좋지 않는지 노인으로 보인다. 촬영=윤재훈)
(술을 내리는 솜차이 둘째 엄마, 이제 40세인데 이빨이 좋지 않는지 노인으로 보인다. 촬영=윤재훈)

건너편 가게는 25살의 ‘솜차이’ 집이다. 첫째인 그의 엄마는 60살이며 딸 다섯 명에 아들이 둘이며, 둘째 엄마는 40세로 딸 둘에 아들 세 명이니 도합 열두 명인 셈인데, 큰아들이 28살이다. 그런데 이빨이 별로 없어 벌써 합죽이 노인처럼 보인다. 이곳은 잘 생긴 청년들도 이빨이 빠지면 가난해서 그대로 산다. 그러니 웃을 때마다 엉구처럼 보여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다. 나란히 붙은 두 집에 살며 들일도 함께 다니며 사이가 아주 좋다.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다.

바로 윗집도 부인이 셋이다. 한 마당 안에 세 집으로 서로 따로 살면 세 번째 부인은 가장 안채와 떨어진 사립문 앞에 산다. 아침이면 역시 미니 트럭을 함께 타고 들에 나갔다 어스름이 찾아오면 돌아온다. 사람이 재산인 것 같다.  

밖에서는 두 엄마가 <몽 위스키> 내리고 있다. 오늘은 아침부터 장작불을 피우고 드럼통을 달궈 몽족 전통 술을 빚고 있는데, 약간 시간이 지나자 수증기가 된 술들이 똑똑, 떨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또르륵 흐른다. 증류수 방울이 술병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니 우리네 소주와 공법이 비슷해 보인다.

증기가 된 알코올이 향기롭게 똑, 똑, 떨어지며 허기와 함께 술시를 재촉하니 어떡할거나! 첫 술 4병은 120밧b(4800원 가량) 받고 그 이후부터는 100밧을 받고 팔기도 한다. 

(십대들이 닭을 잡는데, 거침이 없다. 촬영=윤재훈)
(십대들이 닭을 잡는데, 거침이 없다. 촬영=윤재훈)

부엌 한 쪽에는 17,8세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오리 머리를 잘라 피를 받더니, 뜨거운 물에 담궜다 빼내 털을 뽑는다. 어려서부터 칼과 총을 가지고 놀며 사냥도 즐기니 다루는데 거침이 없다.

(인근 소도시 쿤유암에 사는 사위 둘. 촬영=윤재훈)
(인근 소도시 쿤유암에 사는 사위 둘. 촬영=윤재훈)

연말을 맞아 두어 시간 거리 통부아똥꽃(작은 해바라기꽃small sunflower)이 흐드러지게 피는 쿤유암 마을에 사는 누나와 매형들이 찾아왔다.

어둠이 찾아오자 집안에서 큰아버지 주관으로 연말 의식이 진행된다. 먼저 큰아버지와 엄마 두사람이 식탁에 앉으면 두 잔씩 술을 따라놓는다. 이어 매형들이 부엌 땅바닥 위에서 신발을 벗고 큰절을 올리며, 어른들은 앞에 놓인 위스키들을 마시고 덕담을 한다. 이어 장손이라 그런지 25세의 솜차이가 앉고 나이가 더 많은 매형들이 다시 큰 절을 하는 모습이, 이국인에게는 참 생소하게 다가온다.

 

몽족의 산제(山祭)

(명절 때 고향에 내려온 마을처녀에게 청년은 맘에 있는 모양이다. 촬영=윤재훈)
(명절 때 고향에 내려온 마을처녀에게 청년은 맘에 있는 모양이다. 촬영=윤재훈)

마을사람들은 아침부터 남녀 구분 없이 거의 분홍색 바탕에 은색의 장식구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전통의상을 입었는데, 거의 무대복에 가깝게 보인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유일한 놀이터인 운동장으로 들어가니, 벌써 커다란 무대가 만들어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오늘 종일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놀 것이다.

남자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와 비슷한 팽이를 던지거나 치고, 한 쪽에서는 십대 남녀들이 모여 공받기 놀이를 하며 서로의 눈을 맞춘다. 총각보다는 처녀들이 더 도시로 많이 나간 듯하며 오래간만에 만난 청춘들 눈에서는, 불꽃이 이는 듯하다. 집안 경제를 위해 무작정 도시로 떠났던 옛 우리의 누이들의 얼굴도 오버랩 된다. 

일부는 몽족이 가장 많이 사는 라오스에서 축제를 크게 한다고 하여 그곳으로 떠났고, 일부는 또 마을에서 가장 높은 ‘도이(산) 매나이’에 오른다.

(화약총을 맨 18세 소년, 그 뒤로 붉은 크리스마스꽃이 피어있다. 촬영=윤재훈)
(화약총을 맨 18세 소년, 그 뒤로 붉은 크리스마스꽃이 피어있다. 촬영=윤재훈)

어느 정도까지는 차로 올라가고 그 다음부터는 걷는다. 그들은 화약총을 가지고 다니며 새를 잡는다. 올라가면서 산에 말라가는 나무를 하나 둘 줍더니 도착 하자마자 불을 피우고, 아까 잡아온 새와 닭을 굽는다.

우리는 밤새 그렇게 산능선이 모닥불가에서 추위에 떨며 술과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이국의 사내들 간의 깊은 정한을 나눴다. 밤이 이슥해지자 마을 일을 도맡아 하는 삼거리 가겟집 주인이 잊지 못하고 올라왔다. 그는 권총을 가지고 있었으며 얼마 전까지도 이 산에 호랑이가 있었다고 거짓말 같은 너스레를 떤다. 밤이 이슥해 지자 주위에 있을지도 모를  짐승을 쫒기 위해 폭죽과 총을 쏜다. 한겨울 산 속의 밤은 더욱 소롯이 깊어가고 어느 정도 이야기 거리도 바닥이 났을까, 심심풀이 포커를 시작한다.

성소는 어디에 있는가
지상의 가장 높은 곳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그 마음의 성소를 찾아
순례하는 사람들

올려다 본 하늘
별들만 까치밥으로 걸려
화흔처럼 박혔는데

어둠은 하나 둘 능선을 지우며
먹빛으로 짙어 가는 첩첩 산중
사람들은 달빛 아래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천 년 전의 밤은
오늘도 깊어간다
- 마음의 성소(聖所), 윤재훈

한두 사람은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변변한 깔거리도 덮을 거리도 없다. 일 년 내내 더운 나라라고 하지만 여기는 깊은 산 속, 더더구나 산정상이다. 그것도 한 겨울, 얇은 천 위에 몸을 누이니 냉기가 뼈 속으로 스민다. 그러나 옆 친구는 얇은 이불 한 장 덥고도 코까지 골며 잘도 잔다.

다음 날 새벽, 동도 트기 전에 일출도 보지 않고 서둘러 내려온다. 멀리 타일랜드에서 가장 높은 2,565미터의 ‘도이 인타논’이 점점 엷은 새벽빛으로 밝아온다.

넷째 날과 다섯째 날은 이 인근의 주도이며 미얀마에서 넘어온 샨족의 성지인 쫑캄 호수에 비치는 하얀 샨족 절이 아름다운 매홍손이나, 배낭 여행자들의 천국 빠이로 가서 인근에 사는 부족들이 모여 축제를 한다.

여섯째 날부터는 3일 동안은 본격적으로 타일랜드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 치앙마이 매림에서 몽족들이 다 모여 다시 축제를 연다.

그런 수많은 소수 민족들이 가난과 억압을 받으며 이 지구상에서 삶을 가열차게 유지하며 살고 있다.

그런 날이면 하늘을 숭상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흰옷을 좋아하며 커다란 소의 눈에 도는 흰구름처럼 살고 있는 동쪽의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나 사는 것이 축복처럼 느껴지는 그런 새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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