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의 드론으로 보는 세상] 역사의 보고(寶庫) 낙성대, 그리고 강감찬 장군

이종문 기자
  • 입력 2023.03.06 16:10
  • 수정 2023.03.1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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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이종문 기자] 서울특별시 관악구에는 낙성대라는 지하철역과 지명이 있다. 서기 948년 중국 송나라 시대 사신이 개경으로 가는 길에 ‘문곡성(밤하늘의 별자리 중 하나)’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간 자리가 지금의 낙성대이다. 이곳은 강감찬 장군의 생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낙성대(落星垈)는 한자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날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진 터(垈)'라는 의미다.

강감찬 장군은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 조선의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3대 영웅으로 회자되는 인물이다. 강감찬 장군(948년~1031년)은 고려 초기의 문과 출신 장군으로 거란족 2차 침입 3차 침입에서 고려를 구하고 대승을 거둔 업적을 지닌 영웅이다.

당시 남중국엔 송나라가, 북중국과 만주 일부엔 거란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거란은 스스로를 요나라로 칭하고 중국 대륙의 절대군주 역할을 자처하던 시대이었다. 그러나 거란(여)은 송나라와 친분이 두터운 고려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고 압박을 가했다. 그래서 거란은 3차에 걸쳐 고려를 침략했는데, 1차 침략은 993년(성종 12년), 2차 침략은 1010년(현종 원년), 3차 침략은 1018년(현종 10년, 양력 1019년 1월 18일)에 일어났다.

거란은 1차(서희의 단판으로 물러남), 2차 침입(개경까지 침범했지만 정복에 실패함)에 이어, 서기 1018년 12월에 총사령관 소배압이 최정예 기마병으로 무장된 10만 대군을 이끌고 세 번째 쳐들어 왔다. 하지만, 강감찬 장군의 지략과 전략에 의해 대패했다. 1019년 2월, 거란의 10만 대군 중 살아서 돌아간 사람은 겨우 2천여 명뿐이었다. 바로 이 전투가 귀주대첩이다.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강감찬 장군의 당시 나이는 71세였다.

강감찬 장군의 생가가 있던 서울시 관악구 낙성대에는 생가터와 안국사라는 사당을 지어 장군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안국사가 있는 낙성대공원을 찾아가면 맨 먼저 홍살문이 보인다. 홍살문은 신라시대부터 사당이나 신당 등에 상징적인 입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공원에는 안국사 외에 전시관, 광장, 시민체육센터, 야외 소극장, 도서관, 북카페 등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매년 10월에 3일간 낙성대를 중심으로 ‘강감찬 장군 축제’가 열리는데, 거리퍼레이드, 음악회, 각종 경연 대회와 축하공연 등이 시민들의 흥을 돋운다. 특히 지난 2019년에는 귀주대첩 전승 1천 주년을 맞아 축제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오는 3월엔 사극에서 영웅 역할을 단골로 연기했던 최수종씨가 주연을 맡은 강감찬 장군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가 KBS에서 방영된다고 한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3월엔 봄 향기 따라 낙성대공원을 방문하면 좋겠다. 역사를 향유하면서 단란한 봄의 오후를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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