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시(漢詩)’에 담긴 서울명소 이야기

이지훈 기자
  • 입력 2023.05.12 16:18
  • 수정 2023.05.12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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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이지훈 기자] 오늘날 블로그나 유튜브, 또는 SNS를 통해 나들이 명소를 찾는 것처럼 조선시대에는 ‘한시(漢詩)’를 통해 명소가 만들어졌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쓰고 읊었던 ‘한시’에는 산, 계곡, 나루, 정자, 궁궐 등 서울 도성 안팎의 장소들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한시가 구전을 통해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져 자연스레 명소가 만들어졌다.

이처럼 한시에 나타난 한양도성의 명소들을 주제별로 나누어 문학적 감상과 역사적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 출간됐다. 서울역사편찬원이 발간한 서울문화마당 제22권 <서울의 한시> 속에 기록된 서울의 섬, 절, 산, 궁궐, 정자 등을 당대에 그려진 그림과 오늘날의 사진들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옛 문인들이 바라본 한강은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그 시절에는 백사장과 함께 햇살을 마주할 수 있는 자연풍광이 돋보이는 곳이었다. 물새들의 유유자적한 모습,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 주변의 아름다운 강과 들녘 등, 아름답고 서정적인 풍경이 문인들의 시 속에 그려졌다.

인왕산에 있었던 세심대에서 정조가 쓴 시문 / 사진=서울시 제공
인왕산에 있었던 세심대에서 정조가 쓴 시문 / 사진=서울시 제공

당시에는 도성 밖에 있었지만, 오늘날 발걸음이 잦은 강남의 봉은사와 서대문의 봉원사도 많은 문인들이 즐겨 찾은 곳이다. 이들의 시 속에는 사찰의 아름다운 풍경과 불공을 드리는 스님들의 모습, 그리고 젊은 시절 이곳에서 함께 글을 읽었던 지인과 스님들에 대한 회상이 담겼다.

산은 옛 문인들의 주요 소재였다. 산세를 따라 풍경을 바라보면서 지은 시들은 산의 경치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으며, 산을 통해 마주하는 사계의 변화무쌍함과 그 속에서 얻어지는 철학을 시를 통해 은유적으로 전달했다.

궁궐의 풍경과 일상도 시의 주제가 되었다. <서울의 한시> 내용에 따르면 임진왜란으로 불타 잡초만 무성했던 경복궁은 한때 사람들의 나들이 장소였다. 조선 후기 문인들은 옛 경복궁의 사라진 위엄을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봄을 맞아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시로 읊었다. 이후 고종 때 경복궁이 다시 중건되면서 이들의 시 속에는 기쁨이 담겼다.

정선이 그린 '압구정도' / 사진=서울시 제공
정선이 그린 '압구정도' / 사진=서울시 제공

문인들의 휴식공간이었던 정자 역시 한시에 많이 나타난다. 인조반정 거사 후 칼을 씻었다고 해서 유래한 ‘세검정’, 한명회가 지은 ‘압구정’과 같은 정자들에서 문인들은 시절에 대한 자신들의 사상을 시를 통해 녹여냈다.

대과 급제를 위해 공부하던 성균관 유생들의 일상, 도성 안 최고의 명소라고 불리었던 삼청동, 물이 잘 흐르도록 하는 준천 공사로 분주했던 청계천, 관왕묘를 찾아가 관우 장군의 영험한 기운으로 과거시험 합격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도 한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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