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22] 햄버거 매장에서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09.23 10:21
  • 수정 2019.09.2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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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현업에서 은퇴한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매주 점심 때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이 있다. 윤호씨는 많은 모임 중에서 그 모임이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라 취향이 비슷해서 그런지 역시 마음이 제일 편했다. 등산, 여행 등의 취미생활을 주로 같이 하는 편인데 그날은 강남의 한 쇼핑몰에서 영화를 보고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햄버거는 왠지 젊은이들이 먹는 음식인 것 같고 간편하기도 해서 가끔 별식으로 먹었다. 은퇴자들이 젊은 세대에게 해줄 수 있는 작은 배려 중에 한 가지로 그들이 빠듯한 시간 안에 점심을 먹는 12시부터 1시 사이에는 식당에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윤호씨와 친구 3명은 1시가 조금 넘어서 햄버거 매장에 자리를 잡았고, 윤호씨가 대표로 주문을 하러 나섰다. 윤호씨는 카운터로 가기 전에 있는 무인자동 주문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햄버거 매장에서 무인자동 주문기를 사용하는 건 처음이지만, 스마트폰도 제일 먼저 사고 수많은 앱을 이용하는 나름 ‘얼리어답터’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터라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매장에서 먹을 건지 테이크아웃을 할 건지를 결정하는 초기화면은 무사히 넘어갔는데 메인 햄버거 선택화면부터 몇 번을 해도 진행이 되지 않았다. 저쪽에 앉아 있던 친구 경준씨가 웃으면서 무인자동 주문기 앞으로 다가왔다.

“각기 다른 햄버거 4가지를 선택하고 취합하는 여기부터가 어렵지?

“너, 할 줄 알아?”

윤호씨는 버벅대다가 실패한 터라 주문자의 위치를 포기하고 옆에서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경준씨가 톡톡 화면을 누르자 화면이 척척 넘어가고 친구들이 주문한 햄버거들과 음료, 감자튀김까지 일목요연하게 뜨더니 합계금액이 찍혔다. 경준씨는 카드로 결제하며 대기번호가 찍힌 긴 주문표를 출력했다. 윤호씨는 도무지 자신이 어느 단계에서 잘못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너 어떻게 한 거야?”

경준씨는 빙그레 웃으며 답을 하지 않고 전광판에 대기번호가 뜨자 햄버거와 음료수를 가득 들고 친구들이 있는 자리로 왔다. 친구들은 저렇게 기계로 주문을 하니 편하고 세련된 거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일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게 아니냐고 우려를 했다.

“그렇다고 대세를 거스를 수도 없고, 꼭 그런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니 우리 세대가 적응하자.”

“아무튼 나이는 달라도 동시대를 살고 있으니, 인터넷 시대에 너무 뒤쳐지지는 말자. 자꾸 격차가 벌어지거나 멀어지게 되니 좀 노력해서 따라가 보자.”

그렇게 말하는 경준씨의 비밀스런 적응분투기가 이어졌다.

“내가 오늘 햄버거 주문 무사히 했지. 나 실은 저번에 시내의 다른 매장에서 혼자서 햄버거 무인주문을 하다가 실패를 한 터라 집에 가서 햄버거 무인자동 주문기 사용법이란 글을 자세히 읽고 나서 어디 다른 매장에서 한가한 시간에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천천히 한 번 주문해 봤어.”

친구들은 세심한 용기와 실천력에 작은 박수를 보냈다.

“인터넷시대에 늦게 합류한 우리 인터넷 이민세대가 젊은 인터넷 원주민들이 설계하는 시스템에 적응하는 방법이 뭐겠어?”

“실수를 하더라도 새로운 땅에서 열심히 살아가자.”

윤호씨와 경준씨 친구 4인은 자신들이 세상의 주역이었던 젊은 시절에 즐겨 먹었던 햄버거를 그때의 감각으로 살아가려는 다짐처럼 베어 물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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