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25] 희숙씨, 사진작가 되다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10.0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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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희숙씨는 올해 62세가 되었다. 하나뿐인 딸이 작년에 결혼을 하자 소위 ‘빈둥지증후군’이란 게 찾아왔다. 온통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감정에 집에 있어도 안정이 되질 않고 허무하고 몸도 아파왔다. 그동안 꽃길만 걸어온 삶은 아니었지만 험한 일은 하지 않고 교사 부인으로, 그 범위 내에서 나름 취미생활이며 운동도 하고 지내왔는데 왠일인지 몰랐다. 동갑이라 아직도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하고 있는 남편은 주말계획도 촘촘하게 짜서 친구들과 지내느라 바빴다. 희숙씨는 무너져가는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평소에 헬스클럽에서 하던 요가에 더 열심히 매달려보았건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계속 되었다.

그러다가 헬스클럽 근처 구청 문화센타에서 [아마추어 사진교실]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을 보고 홀린 듯 등록을 하고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희숙씨는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디지털 카메라의 매력에 점점 빠져 들어갔다. 구도, 프레임, 노출, 클로즈업… 이런 단어들의 의미를 알아가는 시간이 좋았다. 매일 대하는 세상을 나의 느낌대로, 의도대로 재해석하고 렌즈에 담는 게 너무 신선했고 삶의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사진강사를 따라 아줌마 5명이 소위 야외 출사를 가던 첫날은 어찌나 설렜던지 밤을 훌러덩 새면서 전문가들이 찍은 꽃사진을 들여다보며 예습을 했다.

가장 기초인 꽃 접사촬영을 배울 땐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희귀한 꽃을 찍고 나면, 그래서는 절대 안 되지만 자신만이 그 꽃사진의 유일한 작가가 되려고 그 꽃을 뽑아버리는 사람도 있대요.”

사진 욕심이 지나치면 안 된다는 교훈으로 들려준 말이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음 과정이 희숙씨가 가장 흥미 있어 하는 인물 사진이었다. 인물 사진을 배우면서 모든 인간은 안팎으로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는 진리를 가장 먼저 깨달았다. 희숙씨는 60살이 넘은 나이지만 진정 읽기 어려운 인간내면의 풍경을 한 순간에 포착하려는 진지함과 짜릿함에 인물사진이 점점 좋아졌다. 주변인물들을 보는 시선도 달라져갔고 우선은 얼굴 표정 너머에 있는 그 인간의 참얼굴을 유추해보면서 그것이 드러나게 사진작업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런 희숙씨에게 하루는 남편이 엉뚱한 제안을 해왔다.

“당신 아마추어와 프로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뭔지 알아?”

“사진도 작가 소리 들으려면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협회에 등록하고 그래야 한다는데?”

“그런거 말고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받고 작업을 해주면 다 프로인거야. 그래서 내가 당신을 프로로 대우해주려고 하는데…”

그러더니 남편은 부모님의 사진을 가지고 나와서 거실 바닥에 늘어놓았다. 희숙씨의 시부모님은 모두 80대로 고향에서 살고 계셨다.

“당신 이 사진들 중에서 어머니, 아버지 사진 따로 인물만 클로즈업으로 다시 찍어서 크게 한 장씩 뽑아봐. 작품만 제대로 나오면 내가 보수는 두둑히 줄게.”

희숙씨는 금방 알아차렸다. 부모님 영정사진 타령을 하던 남편이 너무 늙은 현재의 모습보다는 70대에 찍은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하고 싶은 것이다. 희숙씨가 바야흐로 생애 최초로 사진작가로 인정을 받으려면 스냅 사진에서 영정사진을 뽑아내는 기술을 보여주어야 하는 셈이다. 희숙씨는 흔쾌히 “오케이!”를 하면서 사진기를 집어 들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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