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⑪] 도토리 수습사건

운창식 칼럼니스트
  • 입력 2019.10.1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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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 수필가-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윤창식
- 수필가
-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피고는 자연 생태 도토리를 채취하는 것이 불법인지 몰랐습니까?"

"알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알았다/몰랐다로 짧게 말하세요!"

"몰랐습니다."

"도토리를 왜 채취했습니까?"

"채취하지 않았습니다. 떨어진 것을 몇 개 주웠을 뿐입니다. "

"그 말이 그 말 아니예욧? "

"아니지요! 채취라 하면 도토리나무에 달린 열매에 물리력을 가하여 잡아 딴것을 말하고요, 저는 그럴 힘은 없습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도토리를 무엇에 쓰려고 주웠습니까? 혹 그것으로 도토리묵을 만들어 불법으로 납품할 의도 아니었나요?"

"존경하는 판사님! 도토리 서너 개로 어떻게 묵사발을 만들 수 있답니까요?"

(요놈 봐라 '묵사발'이라니? 재판관은 묵사발이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피고, 피고 내 눈을 바라보세요!(허 모씨 말투처럼?) 누군가가 고의든 실수든 땅에 흘린 것을 수습하여 소유하는 행위는 불법입니다."

"결코 소유하려고 주운 게 아니고요, 그저 어린시절 구슬치기 대용(代用)으로 도토리를 갖고 놀았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도토리에게 손이 갔을 뿐입니다."

"피고, 여기 법정에서는 '불현듯'이라는 감성적 표현은 양형(量刑)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자제하세요."

"......?" (그러면 '불현듯'을 '갑자기'나 '별안간'으로 바꿔야 하나? 푸훗 )

"피고는 7년 전 빛고을 남구에 위치한 입암건널목 적색신호 시 차량 무단통과로 5만원 벌금을 부과 받은 것 외에는 범죄사실이 없고, 나이가 비교적 연로한 것에 비추어 도토리를 수습하는 행위가 도토리를 주식(主食)으로 하는 다람쥐나 청솔모의 생존권을 심대하게 훼손할 목적의 행위로는 보이지 않으나, 여타의 행인에게 피고와 유사한 행위에 대한 법적 제재 효과를 떨어뜨릴 위험성을 내포하므로 사회적 공동선(共同善)을 해치는 행위라고 치부(置部)하지 아니할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아니하므로 내일 다시 심리하기로 하고 이만 휴정합니다."

땅땅땅!

("이게 대체 뭔 말이여?" 유죄라는 거여, 무죄라는 거여? 내일 또 오라고? 내일은 밤 주우러 가야 하는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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