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66] 솔올 미술관에서 만난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 · ‘IN DIALOG: 곽인식’展

천건희 기자
  • 입력 2024.03.22 13:46
  • 수정 2024.03.2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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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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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강릉시 교동에 있는 솔올 미술관(관장 김석모)을 다녀왔다. ‘솔올’은 교동의 옛이름으로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솔올 미술관은 백색 건축의 거장 리처드 마이어(90)가 이끄는 마이어 파트너스 설계로 지난 2월 14일 개관한 강릉시 공공미술관이다. 개관전으로 평면에 공간을 끌어들인 ‘공간주의’ 작가로 유명한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1899~1968)의 <공간·기다림>과 곽인식(1919~1988)의 <In Dialog>가 전시 중이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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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한 언덕을 올라 미술관에 이르니 강릉 시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흰색 콘크리트와 유리, 직선으로 대표되는 리처드 마이어의 건축 특징이 느껴지고, 수수하고 절제되어 평안함을 주는 건물이다. 연못이 있는 중앙 안뜰을 세 개의 공간이 감싼 구조로, 1층에 전시실1, 2층에 전시실2, 전시실3이 있다. 백색을 이용한 미술관은 햇빛의 각도나 시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큰 통창을 통해 보이는 외부 풍경은 액자화되어 주변 경관이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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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층이 연결되어 탁 트인 개방감이 느껴지는 로비에 들어서니 천장에 있는 추상적인 형태의 커다란 네온등이 시선을 끈다. 우아한 부정형의 곡선은 바라보는 위치마다 공간과 어울려 색다른 이미지를 준다. 미술관 자체 조명인 듯 건축물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데, 폰타나의 ‘1951년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를 위한 네온 구조’ 작품이다. 계속 있으면 좋겠는데, 전시가 끝나면 철수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 아쉽다.

'공간 개념, 기다림', ⓒ루치오 폰타나 作/출처=솔올 미술관 홈페이지
'공간 개념, 기다림', ⓒ루치오 폰타나 作/출처=솔올 미술관 홈페이지

전시실1 에는 폰타나의 ‘공간 개념’ 작품 21점이 전시되어 있다. 화폭에 구멍을 뚫거나 날카로운 칼로 쓱 벤 1940년대 말~1960년대 초의 작품들이다. 2차원 평면의 캔버스에 ‘뚫기(Buchi)’와 베기(Tagli)’를 통해 캔버스를 3차원의 공간으로 인식하게 하고, 행위(gesture)가 이루어진 시간을 더해 4차원의 새로운 미술 형식을 제안한 폰타나의 선구자적인 작품들을 직접 관람할 수 있어 좋다.

'검은 빛의 공간 환경', ⓒ루치오 폰타나 作/출처=솔올 미술관 홈페이지
'검은 빛의 공간 환경', ⓒ루치오 폰타나 作/출처=솔올 미술관 홈페이지
'네온이 있는 공간 환경', ⓒ루치오 폰타나 作/출처=솔올 미술관 홈페이지
'네온이 있는 공간 환경', ⓒ루치오 폰타나 作/출처=솔올 미술관 홈페이지

전시실2 에서 만난 아시아 미술관 최초 전시라는 폰타나의 ‘공간 환경’ 작품들은 놀랍다. 각 작품의 원본이 전시되었던 1940년~1960년대 당시 공간과 네온 설치를 그대로 재현하였다고 한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서 몰입감을 경험하게 하는 첫 작품 <검은 빛의 공간 환경>부터 핑크 빛의 <네온이 있는 공간 환경>, 한쪽 벽면을 칼로 쓱 베어 한 줄의 길쭉한 틈새가 있는 흰색의 <제4회 카셀 도큐먼트를 위한 공간 환경> 등 작품마다 감동이다. 깜장과 빨강, 핑크, 하얀색 등 강렬한 조명에 휩싸인 채 미로 같은 방을 헤매면서도, 작품이 주는 설렘에 즐겁다. 1940년대부터 이런 공간 개념의 경험이 만들어졌음에 감탄과 존경의 마음이 우러난다.

'무제 1976'(왼쪽), '작품 63-G', ⓒ곽인식 作 / 출처=솔올 미술관 홈페이지
'무제 1976'(왼쪽), '작품 63-G', ⓒ곽인식 作 / 출처=솔올 미술관 홈페이지

전시실3 에는 세계미술과 한국미술의 연결이라는 솔올 미술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개관 프로젝트로 제일동포 화가 곽인식의 사물의 물성(物性)을 탐구한 작품 20점이 전시되어 있다. 철 구슬로 유리판을 깨뜨리거나, 동판을 찢고 다시 봉합한 작품들은 “사물에 말을 걸어 보고 듣는다”는 곽인식 작가의 표현 의도가 담겨 있어 더 집중해서 관람했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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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시실이 사진 촬영이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오히려 작품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미술관 내에는 곳곳에 조망 공간이 있어 미술관 밖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건물 외부의 경사로를 따라 이동하면 미술관 뒤쪽 언덕으로 산책로가 이어져 산책하기 좋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개관전인 루치오 폰타나 전의 제목이 ‘기다림’이다. 솔올 미술관이 계속 좋은 기획전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주는 곳이자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문화의 산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루치오 폰타나와 곽인식 전시는 4월 14일까지 이어진다. 5월부터 열리는 다음 전시는 미국 추상 표현주의 여성작가 애그니스 마틴(1912~2004)과 단색화 거장 정상화(93) 개인전으로 기대가 된다.

지난 3년간 개관을 준비해온 솔올 미술관 김석모 관장의 열정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명품 미술관 하나가 한 도시뿐만 아니라, 
국가의 자존심을 세운다는 생각으로 개관을 준비했다”

강릉에 자주 갈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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