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채운의 스카이가든 3] 흘러간 노래

권채운 작가
  • 입력 2019.12.0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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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채운<br>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 당선 <br>​​​​​​​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권채운
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 당선
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엄마! 내 가슴까지 찢을 듯이 애절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나는 찬송가를 부르다가 멈칫했다. 우리 일행은 좁다란 복도에 옹색하게 서서 영결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80세를 넘긴 고인에 대한 애도는 형식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고인과는 영정사진이 첫 대면이었다.

단출한 유가족의 뒤를 따라서 장의차에 오를 때만 해도 그리 울적한 마음이 아니었다. 내 장례식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찬송가의 몇 장을 꼭 불러달라는 둥 해가면서 여유까지 부렸던 것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니 하루 온종일, 엄마를 부르던 애끓는 목소리가 내 가슴을 잡아 뜯었다.

나 역시 어느새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나이에 이르렀지만, 일주일만 얼굴을 디밀지 않으면 대뜸 전화를 걸어서 휴대폰이 뜨끈뜨끈해질 때까지 호통을 치는 90세를 갓 넘긴 어머니가 있었던 것이다. 화요일마다 어머니를 보러 가기로 약속해 놓고서도 이 핑계 저 핑계로 어머니를 보러가지 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쩌면 머잖아 다가올 내 모습을 미리 보는 것 같아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보자는 건지도 몰랐다. 요즘 들어 어머니는 지나온 한 평생을 쥘부채처럼 활짝 폈다가 오므렸다가 하는 바람에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나름대로 효도한답시고 했던 지난번의 해프닝이 생각나서 더욱 마음이 저렸다.

“얘, 너 선창이라는 노래 아니?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네 아버지가 흥이 나면 부르던 노랜데 듣고 싶구나. 한번 불러다오."

나는 가까스로 그 노래를 기억해내서 가사가 맞는지 곡조가 틀리는지도 모르는 노래를 어머니와 함께 불렀다. 노년의 나날이라는 게 본래 그런 건지 어머니는 지난날을 반추하는 것도 널뛰기를 하듯 십년 이십년은 보통으로 왔다 갔다 해서 얼을 빼놓곤 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푹 젖어 있던 어머니가 얘, 명수는 지금 어디 살고 있냐? 하고 묻는 데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명수가 누군데요?”

“명수를 모른단 말이냐? 우리 동네 살던 총각인데? 나를 좋아했잖아. 엄마가 그 집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퇴짜를 놓았더랬지.”

“엄마 처녀적 일을 제가 어떻게 알아요?”

“몰라? 그래도 알아봐 다우. 요새 세상에 그거 하나 못 알아낸다는 건 말이 안 되지.”

바쁘다고 툴툴대는 막내딸의 차를 얻어 타고 어머니의 고향동네를 찾았다. 집성촌이라서 노인들이 모여 노는 마을회관에 들러 사정을 설명하니까 명수라는 사람의 근황은 금세 알 수 있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하나 고민 끝에 툭 던지듯이 그 총각은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됐다던 걸, 했더니 어머니는 천연덕스럽게 그럼 동욱이는 어디 사는지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동욱이는 또 누구유?”

“응, 내가 좋아했던 총각이지.”

“아주 한꺼번에 다 털어 놓으시구려. 찾는 김에 모조리 찾아다 대령할 테니까.”

“얘가 누구를 바람둥이로 아나. 동욱이나 찾아봐라. 죽기 전에 꼭 한번 만나봐야겠다.”

사는 낙이라고는 없어. 먹고 싶은 것도 없고, 입고 싶은 것도 없고, 재미나는 것도 없고…. 동욱이가 보고 싶다던 어머니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시르죽은 소리를 하며 스르르 팔을 베고 누워버렸다. 벽을 보고 모로 누워 있던 어머니는 금세 코를 골았다.

찾아 봤냐? 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어서 채근했다. 알아보기는 했지만 그 사람 역시 세상을 뜬지 오래라서 선뜻 어머니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 우려와는 달리 어머니는 그리던 사람의 부재에 의외로 담담했다.

“그 사람, 아들은 없다더냐? 아들이라도 찾아봐라.”

그렇게 깔끔하던 어머니의 엉뚱한 모습에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나는 내친김인데, 하며 동욱 씨의 아들에게 전화를 넣었다. 그 역시 내 연배는 됐을 거였다. 저간의 사정을 들은 그 사람이 어머니를 찾아뵙겠노라고 했을 때 나는 내 속에서 이는 묘한 심사를 어쩌지 못해서 괜한 짓거리를 했구나 하고 후회했다.

그 사람이 어머니를 찾아뵙기로 한 날, 나는 막내딸과 함께 어머니 집으로 갔다. 초인종이 울리고 현관문을 열자 말쑥한 청년이 서 있었다.

“어떻게 오셨는지…?”

“아, 네. 저는 김동욱 씨의 손자 김승일이라고 합니다. 제가 할아버지를 꼭 빼닮았다고 아버지께서 극구 저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제야 뒤에 섰던 노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슴이 철렁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이었다. 아침부터 몸단장을 하고 소파에 꼿꼿이 앉아 있던 어머니가 벌떡 일어섰다.

“세상에, 어쩜 그대로네. 동욱 씨….”

“할머니,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김동욱 씨의 손자 김승일이라고 합니다.”

청년의 절을 받고도 어머니는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발그레해진 얼굴을 외로 꼬며 수줍어하는 어머니는 영락없는 18세 소녀였다. 나는 넋 놓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엄마, 앉으세요.”

막내딸이 내 팔을 잡아 흔들어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엄마, 엄마까지 왜 그래. 소곤거리면서 막내딸도 슬금슬금 청년을 훔쳐보고 있었다. 삼대가 홀딱 반한 청년과 노신사는 차 한 잔 마시고나서 일어섰다.

“또 놀러 와요.”

불편한 몸으로 청년을 현관까지 배웅하는 어머니는 오랜만에 행복해 보였다.

“엄마, 저 사람… 필이 확 당기는데? 한번 사귀어볼까?”

“그래? 이 무슨 반가운 소리냐? 제발 부탁이니 시집 좀 가라.”

“뭐가 어쩌구 어째? 니들이 지금 내 흘러간 노래에 재를 뿌리겠다는 거냐? 이 불효막심한 것들 같으니라구.”

어머니의 느닷없는 역정에 우리 모녀는 서로 얼굴만 멀뚱히 바라보았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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