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㉘] 고궁 속 미술관 ‘덕수궁 프로젝트 2021: 상상의 정원’

천건희 기자
  • 입력 2021.10.05 13:16
  • 수정 2021.10.0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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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 28일까지 덕수궁 야외 뜰에서 전시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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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가을 고궁은 완연한 가을을 만끽할 수 있어 좋다. 조선시대 고종의 거처로 이용되었던 덕수궁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이 있어 고궁 속에서 미술 전시도 만날 수 있어 더 좋다. 9월의 마지막 날 저녁, <덕수궁 프로젝트21: 상상의 정원> 야외 전시를 관람했다.

덕수궁 프로젝트는 궁궐 안에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것으로 2012년, 2017년, 2019년에 이어 네 번째로 기획됐다. 프로젝트 제목 <상상의 정원>은 조선의 문인들이 글과 그림을 통해 경제적 제약 없이 ‘상상 속 정원’을 마음껏 향유했던 ‘의원(意園)’문화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는 9팀의 작가들이 덕수궁의 정원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영상, 조각, 설치, 전통공예, 식물 세밀화 등의 작품이 궁궐 곳곳에 전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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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은 월대 재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대한문을 지나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니 시간의 문을 지나 다른 시간대로 이동한 것 같았다. 밖의 소음과 혼잡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고궁을 산책하며 다양한 작가들의 정원에 대한 색다른 시각과 새로운 상상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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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전 우측 행각에 설치된 오디오 비디오 작품인 권혜원 <나무를 상상하는 법>은 덕수궁 터에서 정원을 가꾼 5인의 가상의 정원사 이야기를 전한다. 행각에 설치된 커다란 화면에는 나무, 숲, 새소리가 가득 찼다. 고궁의 실제 풍경과 상상의 정원 영상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김명범 <원(One)>은 예부터 정원에서 영원불멸의 상징으로 간주 되었던 기괴하게 생긴 돌인 괴석 옆에 십장생의 하나인 나무뿔을 단 사슴을 설치하여 새로운 정원을 연출했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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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궐에서는 생명을 존중하고 장수와 영원불멸을 꿈꾸던 조선왕조의 염원으로 생화를 꺾어 실내를 장식하는 것을 금했다. 채화(綵花)는 궁궐을 장식하고 궁중 의례와 향연에 사용했던 조화다. 무형문화재 황수로의 채화(綵花) <홍도화>는 명주, 모시, 송화가루, 아교 등 천연재료를 사용해 만들었는데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벌과 나비가 날아들 것 같았다. 화려한 <홍도화>는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단청하지 않은 석어당에 설치되었는데, 뿌리채 뽑혀 말라가는 잔뿌리도 함께 제작되어 강렬하게 마음에 남는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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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목을 재생시킨 윤석남 <눈물이 비처럼, 빛처럼: 1930년대 어느 봄날>은 극히 소수만 들어올 수 있었던 덕수궁이 개방된 공공장소인 공원으로 변화한 것을 중요한 사건으로 보았다. 이름 없는 조선 여성들을 밝은 색으로 그려 석조전 정원에 배치하여 새로운 시대를 마주한 그들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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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인들이 글과 그림을 통해 상상의 정원을 만들었다면 미디어 아티스트 이예승은 최첨단 기술로 가상의 정원을 만들었다. 덕수궁 곳곳에 설치된 오브제의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태그하면 AR로 구현된 상상의 정원이 펼쳐진다. 덕홍전에 설치된 <그림자 정원:흐리게 중첩된 경물>은 가상공간에서 봤던 이미지를 3D프린터로 만든 오브제와 모니터, 거울로 보여주었다. 영상과 거울로 만들어지는 이미지들은 무질서하게 배치되어 만화경을 보는 것 같았다. 정원을 경험하고 즐기는 방식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임이 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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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은 근대적인 황제국을 꿈꿨으나 그 꿈은 외세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는 1907년 강제로 퇴위한 후 침전인 함녕전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종이 꿈꾸었으나 직접 만들지 못한 이상적인 정원을 이용배와 성종상은 애니메이션 <몽유원림(夢遊園林)>으로 만들었다.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는 함녕전에 앉아 영상을 보니 고립된 삶을 살았던 고종의 마음이 생각되어 덕수궁의 전각과 정원이 다르게 보였다. 나비가 날아다니는 상상 속 정원에서 고종은 미소를 짓는다.

“정원은 지나간 시간을 돌이키는 곳이다....

그 시간이 개인적이든, 역사적이든, 지리학적이든 간에 말이다.

과거의 모든 차원은 신체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여기

한 뼘의 땅에 모이기 때문이다.”

로버트 포크 해리슨 『정원을 말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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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전체가 아름다운 정원 미술관으로 변신하여 산책하는 동안 힐링을 준 <상상의 정원> 전시는 오는 11월 28일까지 진행된다. <상상의 정원> 전시는 야외 전시라 사전 예약 필요 없이 덕수궁 입장료(1000원)만 구입하면 되고 밤 9시까지 관람이 가능하다. 10월 10일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시도 함께 볼 수 있다. 덕수궁은 언제와도 좋지만, 전시가 끝나기 전 단풍나무가 붉은빛으로 물들어갈 때 ‘꼭 다시 와야지’하는 마음이 든다. 덕수궁 돌담길 산책은 이번 전시회를 찾아 얻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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