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㊽] 쌍계사4...조선 후기, 한국 불화를 꽃피우다. 쌍계사의 ’삼세불도(三世佛圖)‘ 

윤재훈 기자
  • 입력 2024.03.08 16:06
  • 수정 2024.03.2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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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국 불화를 꽃피우다. 쌍계사의 삼세불도(三世佛圖)‘ 

산자락 적시며 휩쓸리는
바람소리
공허한 궤적마다
소리, 소리들이 흐르고 있다

만물로 통하는 깨달음
송화에 뒤덮여
빛살처럼 흩날리는데
그 누구도 섬세한 선율에
접근할 수조차 없어라

석가
솔바람에 입술 적시고도
안타까운 듯
연꽃을 드니
군도들 속에서
물결처럼 흘러드는 미소

- ‘염화시중’, 손정모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도’.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공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도’.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공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대항해 시대에 문을 연 유럽 열강들이 한창 아시아의 땅을 노리며 호시탐탐 진출할 때, 이 땅은 세계의 정세에 캄캄했다. 기껏 중국을 오가며 선진문물을 배우던 18세기 말, 조선의 후기로 치닫고 있을 때,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완전한 형태의 ‘대형삼세불화”로 알려진 ’삼세불도(三世佛圖)‘가 그려진다.

하동 쌍계사 대웅전의 후불탱화로 봉안되어 있던 보물 제1364호인 ‘삼세불탱(三世佛幀)’이다. 200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쌍계사의 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1781년이라는 조성연대와 작가, 시주자들의 명단까지 꼼꼼하게 밝혀진, 조선 후기 한국 불화의 대표적인 작품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세 분의 부처는 과거-현재-미래의 시간 개념보다는 공간 개념으로 보아야 하는데,

‘석가여래는 현세를, 약사여래는 동방정토(東方淨土)를  아미타여래는 서방정토(西方淨土)를 뜻한다.’

본존으로 표현된 석가불. 사진=한구향토문화 전자대전 제공
본존으로 표현된 석가불. 사진=한구향토문화 전자대전 제공

석가불과 아미타불, 약사불을 3폭으로 나누어 그렸는데, 가운데 본불에 해당하는 석가불도(474×316.5cm)는 승윤(勝允), 만휘(萬輝), 홍원(泓源), 지순(智淳) 등이 그렸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아미타불도(495×314.5cm)는 평삼(平三), 함식(咸湜), 왕인(旺仁), 찰삼(察三), 극찬(極贊) 등이 그렸으며, 오른쪽에 있는 약사불도(496×320.5cm.)는 함식, 왕인, 극찬, 계탁(戒卓) 등이 제작하였다.

정교한 필치와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색채감을 보여주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수작으로 모두 스님들의 작품이어서 더욱 이채롭다. 석가불도의 상단 우측이 약간 찢어진 것을 제외하고 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1901년 용담선사가 화주가 되어 개채(改彩)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기보다는 마치 최근에 한 듯 그 색체가 선명하다.

석가여래의 신체는 그림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세 분 중에 가장 크게 그려져 있는데, 아마도 ‘초월적 존재’를 더욱 도드라지게 표현하기 위해 압도적 크기로 주존불를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색과 녹색을 주색으로 비단 바탕에 채색되어 보색대비를 이루고 절제된 색채미를 보여주고 있으며, 색상은 상당히 원색적이며 선명하다.

주목되는 점은 사천왕의 갑옷이나 보살의 구슬 장식 등에서 부분적으로 보이는 표현기법인데, 자세히 보면 장식효과를 주기 위해 농도가 짙은 호분을 올려 두툼하게 하고, 그 위에 금으로 채색한 돋음 기법을 쓰고 있다.

석가불도 화기란(시주질). ‘가선대부’, ‘통정대부’라는 관직을 가진 스님들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 눈길을 끈다.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공
석가불도 화기란(시주질). ‘가선대부’, ‘통정대부’라는 관직을 가진 스님들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 눈길을 끈다.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공

석가불도는 중앙의 석가불을 중심으로 8보살과 화불(化佛), 2천왕, 10대 제자, 팔부중 등이 둘러싸고 있는 이른바 군도형식(群圖形式)을 보여준다. 장대한 신체에 이중의 키형 광배를 하고 높은 사각의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으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결하였다. ​

석가여래 아래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 있다. 그 주변으로 보살과 10대 제자, 연등불, 미륵불, 범천, 제석천, 사천왕, 용왕, 용녀, 신장상 등 총 32명의 존상이 좌우대칭으로 석가여래를 에워싸고 있다. 세 폭의 불화 모두 수미대좌에 앉은 본존을 화면 중앙에 꽉 차게 배치해서 주존불을 더욱 부각시켰다.

석가불은 약간 올라간 어깨에 이마 부분을 일자로 그려져 있으며 초승달을 닮은 눈썹은 약간 희미하게 나타난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약간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아마도 힘든 노동 속에 살아가는 사바의 백성들을 바라보고 그러시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발(螺髮)의 머리에는 높고 뾰족한 육계, 중간계주와 정상계주가 장식되어있는데, 여래는 신성한 초월적 존재감을 보여준다.

신체는 건장한 편으로 넓은 어깨는 위로 약간 치켜 올라가면서 직각을 이루어 당당하면서도 경직된 모습이며, 하체는 폭이 넓어 전체적으로 안정된 신체비례를 보여준다. 석가모니불을 둘러싼 팔부중과 십 대 제자들은 다양한 자세와 표정, 여러 방향으로 향한 시선 등으로 화면에 생기를 더해주고 있다.

과거불인 아미타불. 사진=한국향토문화 전자대전 제공
과거불인 아미타불. 사진=한국향토문화 전자대전 제공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아미타불도’는 좌측에 있다. 아미타불과 약사불은 주존인 석가불보다 약간 작게 그려져 있는데, 중앙에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아래에 협시보살인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서 있다. 그 주위로 8보살과 2천왕, 성문중, 팔부중, 분신불에 둘러싸고 있다.

여기에 석가모니불은 키형 두광을 두르고 있는데 반하여, 아미타불과 약사불은 이중의 원형광배를 두르고 있어 석가불이 본존이 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중심의 구도를 보여준다.

약사불. 비단바탕에 채색. 1781년작.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약사불. 비단바탕에 채색. 1781년작.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우측에 있는 ‘약사불도’는 약사여래가 왼손에 약합을 들고 있다. 여래를 중심으로 아래에 일광보살·월광보살이 시립해 있고, 약사불도 역시 좌우로 6보살과 2천왕 및 약사 12신장상이 본존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다. 약사여래 역시 화면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그려 주존(主尊)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각형에 가까운 넓은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라든가 뾰족한 육계 위에 원형의 정상계주가 강조된 점, 어깨가 넓고 장대한 신체적 특징 등이 석가모니불과 동일한데, 아미타불은 구품인(九品印), 약사불은 약기인(藥器印)을 각각 결하였다.

채색은 두터운 적색과 녹색을 주조로 하여 약간 탁하고 짙은 황갈색과 녹갈색의 채우는 등 18세기 후반기의 특징을 잘 표현하였으며, 필선은 철선묘의 능숙하면서도 활달한 필치를 보여준다.

석가불화에 일부 손상을 빼고는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그 당시에 유행한 삼불회도의 전형적인 형식과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정교한 필치와 화려하면서도 은은한 색채감은 당대 불화 중에 대표적인 수작으로 꼽힌다. 여기에 세 개의 불화 모두 스님들이 그렸다는 것이 이채롭고, 그 시대 불화장인 계보를 파악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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