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년 전 '조선제일 미녀' 화협옹주가 K-뷰티 원조?

허희재 기자
  • 입력 2020.07.15 15:48
  • 수정 2020.07.1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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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1 특집다큐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16일 방송
‘매분구’는 조선시대 화장품 방문판매원

(화협옹주묘지로 확인된 남양주시 삼패동에서 발견된 유물 청화백자함, 분채, 청동거울, 지석 등. 영조의 딸이자 사도세자의 친누나인 화협옹주의 유품은 사대부가와 혼인한 왕녀의 상장례를 알 수 있고, 영조가 직접 쓴 묘지와 화장품 안료, 용기 등을 수습할 수 있어 학술자료로서도 매우 큰 성과로 평가된다. 사진=뉴시스)
(화협옹주묘지로 확인된 남양주시 삼패동에서 발견된 유물 청화백자함, 분채, 청동거울, 지석 등. 영조의 딸이자 사도세자의 친누나인 화협옹주의 유품은 사대부가와 혼인한 왕녀의 상장례를 알 수 있고, 영조가 직접 쓴 묘지와 화장품 안료, 용기 등을 수습할 수 있어 학술자료로서도 매우 큰 성과로 평가된다. 사진=뉴시스)

[이모작뉴스 허희재 기자] 경기도 남양주군에서 영조의 7번째 딸 화협옹주의 유품이 발견되었다. 조선 제일의 미녀로 추앙받았으나, 요절한 비운의 왕녀 화협옹주의 묘 안에서 발견된 청화백자 용기들 안에는 270년이나 지난 화장품 내용물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기초 화장품인 면약에서 립스틱용 연지와 개미 수 천마리가 들어간 불가사의한 용액까지, 내용물은 놀라웠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이 쓰던 화장품은 어땠을까?

EBS1 특집다큐에서 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어떤 화장품을 썼는지, 당시 미인의 기준인 무엇이었는지, 한중일 동북아 삼국의 화장법과 미 의식은 어떻게 다른지를 다룬다.

국내의 화장품회사에서 화협옹주의 화장품들을 재현하는데 도전했다. 후손들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화협옹주의 화장품은 과연 어떤 모습이며 그 효과는 어느 정도일까. 현대의 K-뷰티로 이어지고 있는 우리 화장품의 뿌리를 찾아본다.

희고 깨끗한 피부를 최고의 미, 아름다움으로 여겼던 조선시대. 여염집 여인들의 화장은 한 듯 안 한 듯 담백한 담장(淡粧)이 주류였고 화려하고 짙은 화장은 궁중여인이나 기생들의 몫이었다.

얼굴화장이 담백했던 대신 오히려 더욱 화려해진 것은 머리단장. 점점 커지는 여인들의 올림머리 덕에 국가에서 가체금지령을 내릴 정도였다. 혼례를 앞둔 끝분이의 화장 통해, 조선시대 여인들의 화장문화를 보여준다.

다큐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사진=EBS화면 캡처)
다큐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 (사진=EBS화면 캡처)

더불어 한·중·일 동북아시아 3국의 화장법을 통해 가깝고도 먼, 3국의 역사와 문화의 차이를 확인해 본다.

미녀의 대명사 양귀비의 화장법을 통해 중국 역사상 최고의 번영과 부를 누렸던 당나라 시대 문화를 들여다본다.

백색 분으로 뒤덮인 얼굴과 검은 눈썹 그리고 붉은 입술로 대표되는 일본 화장법. 새하얀 얼굴 속에 개인의 개성을 철저히 감추는 화장은 사무라이들이 타인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던 수상한 시절을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은 아니었을까.

특집다큐 '화협옹주의 마지막 단장'는 7월 16일 오후 8시에 방송된다.

▶ 화협옹주는 영조의 7번째 딸이자 사도 세자의 친누나다.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고모로 11세에 옹주로 봉작됐다. 영의정 신만의 아들 영성위 신광수와 혼인했다. 옹주는 어머니를 닮아 미색이 뛰어났다고 하며, 후사 없이 20세에 홍역으로 사망했다. 현 화협옹주의 묘는 남편과 합장되어 남양주 평구마을에 있다. 2016년 12월에 남양주 삼패동에서 발견된 화협옹주의 묘는 남편과 합장이전의 묘이다. 이 묘에서 다수의 청화백자합 10점, 분채 1점, 목제합 3점, 청동거울과 거울집, 목제 빗과 직물류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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