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㊶] 코카서스 3국을 가다 7_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조지아’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2.27 14:20
  • 수정 2022.01.06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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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조지아’

잡초라 함부로 부르지 마라
잡초가 무엇 인줄 아느냐
네 눈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그런 풀로만 보이느냐

우주에 물과 빛으로 자라
이렇게 버들강아지까지
피우고 있는 내가
네 눈에는 잡초로만 보이느냐

잡초라 함부로 부르지 마라
우주의 기운으로 근육을 돋우고
가열차게 자란 풀에게만
잡초란 이름을 준다

- ‘잡초(雜草)중에, 윤 재 훈

 

(도시 전채가 세계문화유산인 ‘나리칼라 요새.’ 촬영=윤재훈)
(도시 전채가 세계문화유산인 ‘나리칼라 요새’.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조지아는 ‘농사짓기 알맞은 땅’이라는 의미이며, 페르시아어로 ‘바람 부는 작은 길’이라는 뜻이다. 수도인 트빌리시는 ‘따뜻하다’는 의미를 간직하고 있으며, 겨울에도 1도 정도를 유지하며 여름에는 보통 25도 정도로 쾌적한 날씨를 이룬다. 풍경과 볼거리도 많고 사람들도 친절해서, 여행하기 편리한 나라다.

도시 전체가 암벽 위에 세워진, 인구 400만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도시’이며,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무려 360일이나 무비자를 준다. 차량들의 운전이 약간 거칠며, 조금 무질서해 보이기까지 한다.

기원전에는 그리스 영토였으며 그 후 로마제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가 페르시아 지배, 동로마 지배, 셀주크 투르크. 몽골제국 아래에 있었다.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다 벗어났으며, 이란의 사파비 왕조와 경쟁 관계에 있었다.

(조명이 아름다운 정교회 성당. 촬영=윤재훈)
(조명이 아름다운 정교회 성당. 촬영=윤재훈)

지정학적으로 모든 제국들의 사통팔달의 길목에서 항상 역사의 전장판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들만의 고유 문자가 있어 그만큼 역사와 삶의 형태가 다양하다. 그 와중에서도 사람들은 굉장히 낙관적이며 외국인에게 친절하다.

정교회의 나라답게 많은 성당과 탑들이 있으며, 비잔틴 문화의 형태가 섞여 있다. 5000미터 고봉이 3개나 있는데, 그중에 가장 유명한 카즈베기산은 조지아와 러시아 국경을 지나가고 있다. 청정한 자연 속에서 목축이 성행하며 와인과 치즈의 나라로도 유명하다.

(올드 시티. 촬영=윤재훈)
(올드 시티. 촬영=윤재훈)

국제열차가 트빌리시역에 도착하자 여행자들은 서둘러 내리더니 맨 먼저 달러를 바꾸기 위해, ATM 앞에 길게 줄을 선다. 1달러가 조지아 화폐로 2,5라리(GEL) 정도이니, 5라리가 2200원 정도된다. 아제르바이잔 화폐는 1마낫 700원 정도 했는데, 조지아는 1라리를 440원 정도로 계산하면 편하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화폐가 바뀌니 적응을 빨리 해야 한다.

교통카드는 2라리이며, 다행히 우리처럼 지하철과 버스가 연계되는 충전식 카드는 1라리부터 충전이 가능하다. 지하철 한 번 타는데 0,5라리이며 버스비는 0,8라리이다. 케이블카 1라리면 탈 수 있으니 버스비가 가장 비싼 셈이다. 여하튼 물가는 저렴하다.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니 역 안에서 와이파이가 잡힌다고 한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출구 쪽으로 가니 진짜 약하게 와이파이가 잡힌다. 인프라가 좋아서 인가, 아제르바이잔에서는 공항에서 심카드를 사도 연결을 끝내 못시키더니. 역에서 인터넷이 잡히는 나라는 세계여행 중, 처음인 것 같다.

(사람들이 한가하게 전통놀이를 즐긴다. 촬영=윤재훈)
(사람들이 한가하게 전통놀이를 즐긴다. 촬영=윤재훈)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그러고 보니 늦은 아점도 아직 못 먹었다. 마침 출구 앞에 케밥을 팔고 있어 하나 사고, 내친 김에 막 봉지를 건네주는 아가씨에게 야넥스 택시를 불러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아가씨는 혼쾌하게 택시를 불러주는데, 그 와중에도 역사 바로 앞이라 끝임 없이 손님이 밀려온다. 서울역 앞이나 종로 어디쯤 서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혼잡하다. 어디선가 주인이라도 보고 있으면 어쩌나 하고, 괜시리 조바심이 들었다.

택시가 왔다고 해 밖으로 나왔는데, 도저히 못 찾겠다. 그런데 어느샌가 그녀가 그 바쁜 와중에 나와 멀리 있는 택시를 향해 손짓을 한다. 홀로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눈물겨운 모습들을 가끔씩 만난다. 내가 헤메고 있을 것을 예상했는지, 아니면 아무리 봐도 미덥지가 못했는지, 차를 잡아주고 돌아간다. 고마운 그녀, 조지아의 첫 인상이 참 좋다.

한국인이여, 혹시 외국인들이 국내에서 길을 헤매고 있으면 친절하게 안내해주세요.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햄버거 한 개나 따뜻한 식사 한 끼라도 대접해, 이국의 운우(雲雨)를 나누어 보세요.

(‘호피를 두른 용사.’ 촬영=윤재훈)
(‘호피를 두른 용사.’)

조지아를 생각하면 페르시아의 대표 시인으로 이 나라 문학의 모태가 된 민족 서사시 ‘호피를 두른 용사(베프키스트카오사니, 표범 가죽을 두른 기사)’의, ‘쇼타 루스타밸리(Shota Rustaveli)’가 생각이 난다. 조지아 세속 문학의 대표주자로 총 1,600 시구(詩句)로 구성된 작품을 남겼다.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 중에 한 사람인 그는, 흔히 조지아의 황금기로 불리는 12세기 최초의 여왕인 ‘타마르’ 여왕 시대에 활동했다.

신 플라톤적인 사상 발단의 정점을 보여주며, 인간 본성과 우정, 사랑, 평등에 대한 찬가로, 자유을 위한 투쟁을 보여준다.

작품을 통하여 이미 정해진 운명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삶의 추구를 칭송한다. 또한 이 필사본은 독특한 필체로 쓰여있으며 장식 및 세밀화 등이 담겨 있어, 미적인 가치 또한 높다. 총 96권으로 현재 트빌리시 국립고문서센터에 94권, 영국 보들리안 도서관에 2권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 규모가 방대하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루스타벨리의 프레스코화를 소장하고 있는데, 얼굴 부분이 긁혀져 있어, 이스라엘 정부에게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예루살렘에서 소장 하고있는 루스타벨리의 프레스코화. 촬영=윤재훈)
(예루살렘에서 소장 하고있는 루스타벨리의 프레스코화)

조지아에서 그의 위상은 매우 높다.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주는 가장 가치가 높은 상은 쇼타 루스타벨리 국가 상이며, 수도인 트빌리시의 주요 도로의 이름도 ‘루스타벨리 에비뉴’이다. 또한 루스타벨리 문화회관, 조지아 과학 아카데미 내의 조지아 쇼타 루스타벨리 문학회가 있으며, 극장과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코카서스 산맥의 산봉우리에까지, 그의 이름이 붙어있다. 100라리짜리 지폐에도 그가 나온다.

2001년 이스라엘과 함께 ‘이트자크 그라노트’가 디자인한 쇼타 루스타벨리 우표를 발행했으며, 그 배경에 히브리어로 작가의 이름을 넣었다.

‘미할리 지치’는 19세기 헝가리의 화가로, 루스타벨리의 시들을 주제로 한 고전주의 작품을 많이 그려, 조지아의 "국가 화백"의 지위까지 올랐다. 트빌리시에 있는 조각품과 도로 등에도 그의 작품이 많다.

(노점의 풍경. 촬영=윤재훈)
(노점의 풍경. 촬영=윤재훈)

트빌리시 중심가에도 <루스타 벨리역>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의 사람들의 품성이라도 나타내려는지, 개 한 마리가 역 입구 한가운데에 길게 늘어져 낮잠을 자고 있다. 거리는 옛 러시아 풍의 목조건물들이 양 옆에 퇴색된 모습으로 길게 늘어서 있어, 소련 연방 시대의 명암이 짙게 깔려있다.

숙소의 이름은 ‘니하오 호스텔’이다. 친절한 그 녀가 잡아준 택시 미터기에는 2. 40라리(1000원 가량)가 찍혀있다. 여행서에는 보통 5라리 이상 나온다고 적혀있다. 이제 고국의 택시비도 가물가물하다. 워낙 대중교통을 즐겨 타기도 하지만.

막연하게 중국인이 운영하나, 그렇지 않으면 중국인들이 많이 오나 생각했는데, 정말 중국인 청년이 운영한다. 중국인이 몇 명 보이지만 각 나라 여행자들이 섞여 있다.

너무 불친절하고 환경이 허름해 그냥 나가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부킹닷컴에서 7라리를 보고 예약했는데, 그 방은 골방으로 창문도 없고 너무 캄캄하다. 거기다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통로다. 창문이 있고 환한 방은 9라리다. 그 방으로 옮기고 혹시 몰라 하루 더 예약했는데, 바로 후회가 몰려온다

(소련의 그림자가 어리는 듯하다. 촬영=윤재훈)
(소련의 그림자가 어리는 듯하다. 촬영=윤재훈)

일본인 청년인가 했는데, 놀랍게도 멸치 같이 야윈 한국인 청년이 한 명 있다. 내가 반가워 인사를 하자 그는 전혀 표정이 없는 얼굴이다. 오랜 여행을 한 것 같은데, 일본의 ‘히키 꼬모리’가 연상된다.

밤에 자지도 않고 휴대폰만 들여다보다, 한밤중에 패스트푸드에 콜라만 마신다. 아침까지도 여전히 자지 않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아무리 청년이지만 너무 무절제한 것 같는데, 나의 기우이길 바란다. 한낮의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리는데 에어컨은커녕, 그 흔한 선풍기 한 대도 없다.

숙소 빼고 모든 것이 아제르바이잔 보다 비싸다. 동유럽으로 넘어가서 여기보다 비싸면 안될 텐데, 은근히 걱정이 된다. 부엌만 있으면 걱정을 덜겠다.

(한가하게 옛책을 보면, 헌책을 판다. 촬영=윤재훈)
(한가하게 옛책을 보면, 헌책을 판다. 촬영=윤재훈)

옛 소련 시절에는 러시아어로 <그루지야>라고 불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금단의 땅, 영어로는 <조지아>이다. 조지아어로 ‘조지아인들이 사는 땅’이라는 뜻이다. 1991년 소련연방에서 독립된 후로 조지아 정부가 그렇게 불러주기를 원해서 서방세계들이 그렇게 부른다. 자국민들은 옛 이름인 <사카르토 벨로Sakartvelo>라고 불러주기를 원한다. 옛시절 상전인 러시아에서 벗어나 미국과 가까워지며, 지금 러시아의 그늘을 지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코카서스 3국은 (캅카스 지역)에 속하며, 이 지역 출신인 (이오세부 주가슈빌리)는 러시아식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그는 바로 ‘철의 남자’ 라는 뜻의 <이오시프 스탈린>이다.

(이 나라에도 목백일홍이 아름답다. 촬영=윤재훈)
(이 나라에도 목백일홍이 아름답다. 촬영=윤재훈)

세계를 공포 속에 몰아넣었던 그는, 특히나 사할린이나 두만강 북쪽에서 농사를 짓던 우리 고려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었다.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이 일본에 협조할 줄 모른다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것도 그의 작품이다. 하루 아침에 기차에 강제로 태워, 시베리아의 겨울날 짐승들을 실은 칸에 몰아넣고 몇 날을 달리다, 허허벌판에 그대로 버렸다. 오다가 많은 사람이 얼어 죽자, 그대로 기차 밖으로 버렸다. 요행히 살아남은 사람들만 그 황무지에 그대로 버려 버려졌는데, 두더지처럼 땅을 파고 들어가 죽을듯한 추위를 견디며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한다.

소수민족으로 잡초처럼 질기게 살아남아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중류층 정도의 가정들을 유지하며 지금도 타민족으로 힘들게 살고 있다. 그 후 이곳 코카서스 3국을 비롯하여, 발트해 라트비아 3국, 중앙아시아 등 14개국이 독립을 하면서, 고려인들에게 다시, 고난의 시절이 다가왔다. 일하고 있던 직장이나 관공서 등에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다 쫓아내고, 오랫동안 같이 살던 사람들도 마을에서도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며 억압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 평지풍파를 견디며 대부분 견뎌오고 있지만, 자식들은 돈을 벌러 외지로 떠나고 어른들만 남아,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고개를 떨군다. 노인들만 모여앉아 술잔을 기우리며 잊혀져가는 조국을 노래를 목매이게 불러댄다. 오래 전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안타깝다.

우리 풍습을 잊지않고 아직도 우리 글을 띄엄띄엄 읽으며 동포를 반가워하는 그들에게, 조국은 정말 큰 빛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뭔가 그들에게 정말 실질적인 도움이 되게, 조국이 응답해주기를 깊이 소망한다.

잡초라 함부로 부르지 마라
잡초가 무엇 인줄 아느냐
네 눈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그런 풀로만 보이느냐

우주에 물과 빛으로 자라
이렇게 버들강아지까지
피우고 있는 내가
네 눈에는 잡초로만 보이느냐

잡초라 함부로 부르지 마라
우주의 기운으로 근육을 돋우고
가열차게 자란 풀에게만
잡초란 이름을 준다

온상 속에서 자라난
너희들이 아니다
오직 너희 앞가림만 걱정을 하는
그런 풀이 아니다

- 잡초(雜草), 윤 재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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