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55] 천년 붓다왕국 미얀마8_인류에게 젖을 먹이는 바간 왕국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6.14 16:08
  • 수정 2021.06.22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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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젖을 먹이는 바간 왕국

턱을 괴고 동구 밖을 내다보다
누렁개와 놀다
소나무 위에 올라가
장에 간 어머니가 돌아오시는지
손차양을 하고, 실눈을 뜨다가
아이의 한낮은 빨랫줄 위의
잠자리 날개처럼 가볍다...,
- 마른버짐, 윤재훈

 

(황토빛으로 풍화된 탑들이, 평원에 가득하다. 촬영 윤재훈)
(황토빛으로 풍화된 탑들이, 평원에 가득하다. 촬영=윤재훈 기자)

해 어스름 녘
아스라한 대평원 위로
탑들이 솟아있는데,

퇴락한 황톳빛 탑 아래
서성이는 사내

바간 왕국의 천 개의 탑들이
세상의 유두(流頭)가 되어
인류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 불타(佛陀)의 나라, 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붉은빛으로 퇴락한 탑이 몇 기 서 있고, 그 옆에 오막살이 집 한 채가 수채화 속 풍경처럼 누워있다. 그중에서 제일 큰 탑으로 막 들어가려는데 소녀가 다가와 말을 건다. 14살이라고 하며, <쏭쏭>이라는 소녀, 무척 영리해 보인다.

이 탑은 <바간묘>라고 한다. 소녀가 내 이름을 묻고 나이까지 묻더니 젊다고 하는 폼이, 어린아이 같아 보이지 않는다. 가난에 찌들어서일까, 장사에 이물이 나서일까? 소녀가 측은해 보이기까지 한다.

바간 왕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살고 있던 사람들을 전부 인근의 ‘뉴 바간’으로 이주 시켰다. 그런데 소수의 사람은 가지 않고 남아있다. 부모와 함께 7명의 자녀가 산다고 한다, 이 단칸방에서.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남국의 꽃들이 피어, 세상은 그림 같다. 촬영 윤재훈)
(남국의 꽃들이 피어, 세상은 그림 같다.. 촬영=윤재훈 기자)

머리에는 기계충이 돋고
얼굴에는 영양부족으로
하얗게 마른버짐이 내려앉던
6, 70년대 한국의 아이들

누런 코가 턱 아래까지 내려오다
훅, 하는 소리에
다시 급하게 따라 올라가던,
소매에는 하얀 코가
두껍게 눌어붙어 있어도
그냥 그렇게 살아가던 시절,

비포장 신작로를 따라
어쩌다 낡은 버스가 지나가고
아카시아 꽃이 눈부시게 날리던 고향

턱을 괴고 동구 밖을 내다보다
누렁개와 놀다
소나무 위에 올라가
장에 간 어머니가 돌아오시는지
손차양을 하고, 실눈을 뜨다가
아이의 한낮은 빨랫줄 위의
잠자리 날개처럼 가볍다

산모롱이 먼지가 날리며
버스가 돌아오고
아이는 급하게 내려가
신작로에 서던
그러다 운전수 아저씨 몰래
버스 뒤에 올라타기도 하던
6, 70년대 한국

엄마는 언제 오실까
아이는 해종일 기다리고 있다

- 마른버짐, 윤재훈

22세, 19세, 14세, 12세, 8세, 4세, 2세, 우리네 시골도 그러했었다. 아버님도 4남 5녀의 다섯째였다. 소녀의 아빠는 호텔에서 일한다고 한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쓰러질듯한 오막살이, 작은 방 하나에 쪽마루와 부엌, 세간살이도 단출하다. 소나 돼지도 심지어 닭도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가져갈 것도 버릴 것도 별로 없는 듯하다.

아이는 언니가 옷을 파는데 사려는지 물어보는 것 같다. 그러더니 이내 언니에게 전화를 한다. 잠시 후 오토바이를 타고 22세 언니가 12세 동생을 태우고 왔다. 옷과 엽서를 사려는지 물어보는데, 별 관심이 가지 않는다. 아마 두 자매는 이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이것들을 파는가 보다. 내가 살 의향이 없는 듯하자, 허탈해하는 얼굴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어렵지만 순박하기만 한 그들의 삶, 자연스럽게 주는 데로 욕심내지 않고 살아가지만, 더 잘산다는 문명의 나라에서 온 나는 미안하기만 하다.

60년대 대한민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일 때, 이 나라는 잘 살았던 나라 중의 하나였다, 석유와 지하자원이 풍부했다, 그러나 60년대부터 등장한 군부에 의해 국민들의 삶은 절대적으로 피폐해지고, 돈벌이가 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군인들이 가지고 있다. 아예 군인들이 특권계층이 되어 자기들끼리만 결혼하고, 우리의 미군부대들처럼 울타리를 쳐놓고 자신들만 모여 사는 상층 계급이 되었다. 그 안에 학교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에게는 버마의 아웅산 테러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나라. 지금 그 나라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민족 지도자 아웅산 수치는 구금되고, 몇 달째 수백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테러당하고 있다. 세계의 강대국들은 자기의 이권에 따라, 눈과 귀를 닫고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으니, 청년들은 아예 소수민족의 진영으로 가 군사훈련을 받고 그들과 전쟁을 하고 있다.

(자매는 또 어디론가 바삐 떠나고, 세상 모르는 여섯째의 웃음은 티 없다. 촬영 윤재훈)
(자매는 또 어디론가 바삐 떠나고, 세상 모르는 여섯째의 웃음은 티 없다. 촬영=윤재훈 기자)

언니도 가난에 찌들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서둘러 오토바이를 타고 동생과 어디론가 떠난다. 물건을 팔러 다니는 소녀들의 뒷모습에서, 일제 식민지 치하 아래 한민족과 피어린 전쟁의 상흔이, 뙈약볕 아래 올라오는 열기처럼 불온하다.

(틸로민로 파토 정문. 촬영 윤재훈)
(틸로민로 파토 정문. 꼭대기가 꼭 첨성대 같다. 촬영=윤재훈 기자)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비포장길을 따라 가장 유명한 사원 중의 하나인, <틸로민로 파토(Htilominlo Pahto)>를 찾아간다. 공사 중인 꼭대기가 꼭 첨성대 같다. 1218년 건립되었으며, <아난다 사원(Ananda Temple)>과 함께 가장 보존이 잘 되어있고,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는 사원이다. '우산이 선택한 자' ‘우산의 뜻대로’라는 뜻의 불교 사원인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틸로민로의 문양인가?. 촬영=윤재훈 기자)

바간 왕국의 일곱 번째 왕인 ‘나라파티시투(Narapatisithu)’에게는 다섯 명의 아들이 있었다. 왕은 호전적이었던지 여러 종족과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면서 큰 부상을 입었는데, 여러 후궁들 중에서 가장 비천한 출신인 다섯 번째 후궁 ‘소먀트 칸(Saw Myat Kan)’이 극진히 간호하여 병이 나았다. 그래서 왕이 소원을 물었는데, 그녀가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삼고 싶다’고 했다. 왕은 난감했다. 가장 비천한 막내를 후사로 삼을 경우, 위에 네 형제들이 자신의 말을 따라줄지 걱정이었다.

고민하던 왕은 다섯 왕자을 불러 ‘일산(日傘Hti 권위의 상징)을 던져 가리키는 방향에 앉은 사람을 왕자로 뽑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신의 결정으로 알고 누구도 반기를 들면 안 된다고 다짐을 받았다. 그리고 우산을 던졌는데, 왕의 의도대로 막내 왕자 ’나도웅마‘을 가리켰다.

그리하여 막내 왕자에게는 ’티(Hti일산), 로(Lo선택), 민(Min왕)‘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1175년에 태어나 그는 36살 때인 1211년에 왕이 되었으며, 1235년까지 재위하였다. 그의 진짜 이름은 ’제야 테인카 우자나(Zeya Thinkha Uzana) 왕‘이지만 사람들은 틸로민로 왕이라고 불렀다. 막내 왕자는 우산을 던진 자리에 아버지가 만든 술라마니 파토을 본 떠, 틸로민로를 건설했다. 그리고 현재 그 자리에 사원이 서 있다. 일각에서는 와전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어떠랴, 그런 스토리텔링이 있어, 후세의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영감을 주고, 수많은 관광객의 뇌리에 각인되고 있으니 말이다.

나도웅마 왕은 매우 현명했던 것 같다. 그는 국무회의와 같은 협의체를 만들어 네 형과 국사를 의논하여 처리하였고, 불탑 건립에 많은 열의를 쏟아부었다. 이런 것들이 형들의 불만을 없애고, 불교를 근본으로 한 온화한 정치를 펼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나친 사찰 건축은 백성들의 노고와 왕실재정의 악화를 가져왔을 것이다.

(문의 문양도 우산 모양 같다. 촬영=윤재훈 기자)

틸로밀로는 정사각형의 형태로 한쪽의 길이가 43m이며, 높이가 46m의 큰 사원이다. 상부에는 화려한 단청과 탑을 올리고 황금으로 덧칠하여 완성하였다. 각 방향에 돌출된 현관보다 입구 홀이 마련된 동쪽의 현관이 현저하게 나와 있어, 옆에서 보면 직사각형의 건물로 보인다.

흙벽돌로 지어 외벽을 회반죽으로 마무리했는데, 스투코 장식은 많은 손상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 현란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으며, 절제되고 우아한 미를 느끼게 한다. 하단은 나뭇잎으로 장식한 삼각형 모양으로 띠를 둘렀고, 상단은 목걸이 형태의 장식이 있다. 모서리 붙임 기둥에 보이는 스투코 장식은 벽면의 장식을 이으면서, 모서리 부분을 강조함으로서, 밋밋한 벽 전체에 변화를 주었다. 붙임 기둥 머리의 변화와 장식이 수준이 높아 보인다.

(퇴색된 붓다 벽화. 촬영=윤재훈 기자)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이 붐비고 사방에 커다란 4기의 부처가 차렷, 자세로 서 있다. 그 앞에는 여러 개의 보시함이 있는데, 저마다 가득 차 있어 미얀마인들의 순수한 불심을 보여주는 듯하다.

회랑을 따라 내부를 한 바퀴 돌 수 있으며, 28불 정도가 모셔져 있다. 다른 사원들과 달리 불상은 철책이 있어 만지지 못하게 했다. 따라서 금박들을 붙이지 않아 깔끔하다. 사원 내부에 있는 벽화들은 세월의 무게에 어쩌지 못하고 낡아가고 있다. 부처님도 사바의 그 많은 중생을 지켜보느라, 많이 퇴색되었다.

내부 마감재는 대부분 당시의 것들이나 벽화는 후대에 그려진 것들로, 15~18세기 것으로 추정한다. 천정에서 벽으로 이어지는 부분에는 외부처럼 거꾸로 매달린 나뭇잎 장식들이 띠를 둘렀으며, 벽돌에 회칠을 하고 원 안에 다섯 개의 작은 원들이 법륜처럼 십자 모양으로 반복적으로 들어가 있다. 벽에는 부처상들이 그려져 있으며, 벽화는 시대를 달리해서 지속적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벽화는 많이 지워졌으며 낙서들도 있다. 자세한 형태보다는 절제미가 돋보이며, 일부는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탑은 위로 갈수록 줄어드는 사각형 모양인데, 사원의 이름과 연관이 있는지, 어찌보면 접은 우산을 닮기도 했다. 입구에서는 현지인들이 부처님에게 봉헌할 꽃들을 판다.

(동쪽의 구륜손 불 옆에 우산대 모양이 보인다. 촬영=윤재훈 기자)

미얀마의 불상들은 외형적인 모습에서는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사원 내의 위치와 순서에 따라 구분이 된다. 사방에 불상이 있는 경우, 동쪽은 ‘구류손불’, 서쪽은 ‘가섭불’, 남쪽은 ‘구나함모니불’ 북쪽은 ‘석가모니불’이라고 한다. 틸로민로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져 있다. 부처님 양쪽에는 우산대 모양을 세워 두었으며, 왼쪽에 티비 모니터가 있다. 이중 광배를 배경으로 항마촉지인 수인을 하고 있다.

사원 내부에는 1, 2층에 4개씩의 불상이 있다. 좌우측 벽면에는 희미하게 예불을 드리는 아라한 상도 있다. 왕이 지은 파고다로 바간의 아름답고 웅장한 사원 중 하나로 꼽히며,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간다.

EBS가 만든 미얀마 문명사를 다룬 2015년 다큐멘터리 ‘천불천탑의 신비, 미얀마’가 미얀마 전국 50개 CGV에서 개봉돼 호응을 얻었다. 많은 상을 받았으며 세계 주요 채널 등에 판매도 되었다. 작품을 연출한 정재응 PD는,

 

“정복과 약탈 위에 세워진 다른 문명들과 달리,

‘공덕 나누기’라는 종교와 평화의 배경 위에 만들어진 미얀마 문명이 특별하게 다가왔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사유와 울림을 전달해주고 있다고 했다. ”

(사원 뜨락 전경. 촬영 윤재훈)
(사원 뜨락 전경. 촬영=윤재훈 기자)

진입로는 사방으로 나 있으며 동쪽이 정문으로 설계되어 있지만, 오늘날에는 도로에서 접근성이 편한 북쪽 문을 사용한다. 입구부터 탑을 빙 둘러서 가게들이 엄청 난데, 주로 다양한 기념품과 액세서리 등을 판매한다. 특히 다양한 붓다상의 사진과 그림들이 많으며, 소수민족들의 열악한 생활상을 그린 작품들도 있다.

(절 입구에서 야채와 국수를 비벼주는 여인. 촬영=윤재훈 기자)

막 사원 입구를 나오자 새댁처럼 보이는 아주머니가 상보를 곱게 덮어놓고, 국수를 판다. 한 그릇 시켰는데 콩가루를 넣었는지 고소하여 한 그릇을 더 먹었다. 지나가는 미얀마인들에게 1000짯에 국수 먹고 가라고, 마치 주인처럼 호객을 하자, 다들 순박한 표정으로 웃고 간다.

(물질처럼 덧없는 것이 있을까? 촬영 윤재훈)
(물질처럼 덧없는 것이 있을까?. 촬영=윤재훈 기자)

엽서나 조잡한 기념품을 파는 어린 소녀들이 돌아다니고, 멀정하게 생긴 아주머니 세 사람이 오더니 보이는 사람마다 손을 내밀며 구걸을 한다.

오토바이 옆에 조그만 아이스크림 통을 매달고 파는 23살의 청년은, 장사는 잊었는지 망연히 그 풍경만 바라보고 있다. 그 옆에는 붉은 승복을 입은 3명의 멍크들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청년은 하루에 4만원 정도나 벌면 23000정도 나가고 17, 000원 정도 번다고 한다.

넉넉하게(?) 보이는 멍크에게 아주머니들이 다가가자 멍크는 일일이 손에 돈을 쥐어준다. 그의 얼굴에 가난한 조국에 대한 비애와, 불국토의 자비심이 어린다.

(평범한 사람들이, 관광객이 오면 구걸을 하는 모양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막 탑 내부를 구경하고 나온 중학생쯤으로나 보이는 아이들이, 단체로 중국산 고급버스로 올라간다. 현지 아이들은 세상살이에 내몰려 학교는 뒷전인데, 서로 달라 보인다. 아마도 군인들의 자녀인 모양이다. 한 나라 안에서 저토록 극명하게 차이가 나다니.

아주머니들이 버스 아래에서 손을 내밀자 아이들이 돈을 주고, 일부는 자기 또래들에게 기념품을 사기도 한다.

군부 독재 아래 허덕이고 있는 미얀마인들의 미래를 보는 듯하다. 캄캄하게 저물어 가는 대평원에서 하루빨리 ‘미얀마의 봄’이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옴 마니 밧메홈,”

”샬롬(Shal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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