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11] 남자의 눈물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06.1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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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퇴근 후에 집에서 저녁밥상 앞에 앉은 박부장은 오늘도 콩으로 만든 반찬이 없어서 밥맛이 다 떨어질 지경이다. 평소에 박부장이 좋아하는 반찬은 콩을 주재료로 만든 게 많았다. 어릴 때부터 밥 위에 듬뿍 얹어먹던 구수한 청국장이며, 순두부찌개, 두부조림, 짭쪼롬한 콩자반, 두부새우젓국 찌개 등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음식이 콩요리 아니던가? 당신이 콩으로 만든 음식을 좋아해서 고기를 위주로 먹는 집보다 식비가 적게 든다고 말한 사람은 바로 아내가 아니던가?

그런 아내가 요즘 근 한 달째 콩으로 만든 반찬을 상에 올리지 않고 있었다. 박부장은 남자가 쪼잔하게 반찬타령 한다고 핀잔을 받을까 봐 참고참다가 오늘 저녁에는 드디어 유감을 표시했다.

“요즘 왜 두부조림이나 청국장이 통 밥상에 안 올라오는거야? 콩 값이 산지에서 폭등을 했나, 아니면 누가 매점매석을 해서 씨가 말랐나?”

서운해서 말을 하다 보니 어설픈 경제논리가 나온 꼴이라 다소 머쓱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내의 대답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내용이었다.

“그게... 수진이가 당신이 텔레비전 드라마 보면서 우는 걸 여러 번 봤나 봐요.”

수진이는 박부장의 고등학생 딸이다.

“근데, 내가 드라마 보면서 감정이 격해서 좀 울었기로서니 콩하고 무슨 관계야.”

“수진이 얘기로는 콩요리에는 여성호르몬이 많아서 아빠가 너무 일찍 여성화되어 가는 것 같다고 좀 끊어보라고 하더라구요. 남자들이 갱년기가 되면 여성호르몬이 나와서 괜히 감정이 예민해지고 턱없이 우울해진대요. 당신도 가만 보면 젊었을 때는 집안일은 일절 나 몰라라 하던 사람이 요즘은 시시콜콜 참견하는 경향이 생겼더라구요.”

“언제는 콩에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하다고 많이 먹으라며? 그런 비과학적인 건강정보를 맹신해서 콩으로 만든 반찬을 싹 빼버린 거라구?”

박부장은 딸하고 주말연속극을 보다가 중년의 남자 주인공이 가족들에게 비장한 음색으로 “나, 암에 걸렸어”하고 밝히는 장면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리긴 했었다. 곁에 딸이 있다는 이성적 판단을 할 새도 없이 자동반사적으로 눈물이 흘렀다.

박부장은 지난 시간 속에 수많은 괴로움과 어려움을 이겨냈기에 오히려 그것이 극복의 대상이란 뿌듯함이 있었다. 그래서 시골 출신으로 대기업 부장이란 지위까지 왔는데, 요즘은 그 자부심과는 별도로 당시에 느꼈던 괴로움이 슬픔으로 변해서 수시로 찾아왔다. 운전을 하고 가면서 라디오에서 유재하나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오면 거의 꺼이꺼이 울기까지 했었다. 한참을 서럽게 울다가 민망해서 참, 동석자가 있었나 하고 옆자리 뒷자리를 쳐다보기도 했었다.

박부장은 유재하나 김광석이 부르는 인생과 지나간 청춘에 관한 회오의 노랫말들이 어찌나 가슴속에 파고드는지 그 어떤 시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앞으로 여성 호르몬이 조금 분비되어서 정서적으로 좀 더 풍부하게 살아간대도 나쁠 것은 또 무엇인가? 콩으로 만든 반찬도 마음껏 먹고 감성도 회복하면 좋은 현상 아닌가? 그리고, 아내와 딸도 이왕이면 이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나약한 갱년기 타령을 하기보다는 완숙한 삶의 시기를 맞아 비로소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능력이 커졌다고 말해주면 안 되는가?

박부장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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