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용의 以目視目] 힘들이지 않고 두마리 호랑이를 잡는 법

정해용 기자
  • 입력 2023.04.19 13:39
  • 수정 2023.04.1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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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정해용 기자] 국제 정세는 늘 변한다. 한동안은 마치 영구히 변함이 없는 것처럼 한가롭기만 하다가도, 한번 변화가 시작되면 내일 일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격변하기도 한다. 이것은 한여름이나 한겨울같이 지루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급격히 변하는 환절기의 날씨에 비할 만하다.

중국 춘추시대는 수백 년 동안이나 정세변화가 없다가 전국시대로 들어서면서 급격한 이합집산이 벌어졌다. 1백년 넘게 하루도 전쟁 없는 날이 없더니, 이윽고 진(秦)나라 정왕(政王) 때 전국이 통일된다. 그가 바로 진시황이다. 격렬한 환절기를 지나 ‘물의 나라’로 통일되었다.

전국 7웅이 한창 힘을 겨룰 때다. 진나라는 혜왕이 천하의 인재들을 불러들여 국력이 날로 강성해지고 있었다. 합종연횡의 ‘연횡계’를 구사한 장의(張儀)가 진나라에 등용된 것도 바로 혜왕 때다. 격변기에는 인재도 많이 나타나고 그들 사이에서 정책경쟁도 격렬하다. 그 사이에서 왕이 누구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리게 된다. 아무리 인재가 많아도 결국 국운은 지혜로운 말을 골라 듣는 국왕의 능력에 달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진진(陳軫)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장의와 경쟁이 되므로 매번 견제당해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진진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한번은 혜왕이 진진에게 물었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싸움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승부가 나질 않고 있소. 두 나라가 번갈아 사신을 보내 도움을 청하는데, 대신들의 의견은 분분하오. 내가 군대를 보내는 게 좋은지, 보낸다면 어느 쪽을 구원하는 게 좋을지.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러자 진진이 비유를 들어 대답했다.
“일찍이 변장자라는 사람이 장안에 호랑이 두 마리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호랑이를 잡으러 가려고 했답니다. 그때 객관의 시동이 말했지요.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소를 막 잡아먹으려고 합니다. 호랑이들은 잡은 소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울 것이 뻔합니다. 그러면 약한 놈은 죽임을 당하겠지요. 하지만 강한 놈도 상처를 입고 힘이 많이 빠질 겁니다. 선생은 그때 가서 상처 입은 놈을 찔러 죽이면 강한 놈도 잡고 약한 놈도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따라서 변장자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한꺼번에 두 마리 호랑이를 잡는 공을 세웠습니다. 한나라와 위나라는 일 년 넘게 싸웠으니 곧 어느 한 쪽은 무너질 겁니다. 왕께서 그때 군대를 일으켜 이긴 나라를 정벌하시면 손쉽게 두 나라를 다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나라가 싸울 때 섣불리 끼어들지 않고 기다렸다가 최후의 이익을 취하는 전략을 ‘이호경식(二虎競食)지계’라 부른다. 단지 다른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경우만이 아니라 두 나라가 다투는 와중에 제삼자가 중간에서 이익을 취하는 전략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솝의 우화 중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사자가 새끼염소 한 마리를 잡아 막 식사를 즐기려는 참에 곰 한 마리가 나타나 그것을 빼앗으려 하였다. 사자는 힘들여 잡은 염소를 나누어줄 생각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두 맹수는 싸우기 시작했는데, 염소고기라는 이익뿐 아니라 맹수로서의 체면까지 걸린 일이라 싸움은 치열했다. 서로 사력을 다해 싸운 결과 사자와 곰은 둘 다 탈진해 쓰러졌다. 그때, 언제부터였는지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여우가 나타나 새끼염소를 물고 달아나 버렸다.

80년대까지 팽팽했던 좌우 냉전시대 이후 40여년 만에 러시아와 미국은 다시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잔뜩 갈기를 곤두세우고 있다. 관점을 조금 비틀어서 보면, 애당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이 중국과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빈틈이 생긴 동유럽에서 다시 주도권을 회복하려 했던 측면이 있다. 전쟁 초기에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당시 서방국가들의 권유를 따라 즉시 해외 도주라도 했더라면 러시아의 의도는 충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변수’가 예상을 빗나가면서 상황은 앞을 알 수 없는 국면으로 흘러왔다. 이제 미국이 주력할 상대가 러시아인지 중국인지도 불확실하다. 오랫동안 공들여 온 ‘중국 포위전략’을 포기하기도 아깝지만, 사력을 다해 자위에 나선 우크라이나를 외면하자니 명분을 잃는 손해가 작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끄는 사이 중국과 러시아가 손까지 맞잡아 미국은 더욱 곤혹스러워졌다.

중요한 것은 국제정세가 오랜 평화 시기를 지나 격변의 환절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이다. 힘이 있는 나라들은 체면과 이익을 걸고 대결을 불사할 것이다. 이때, 강대국의 싸움에 휘말려 ‘새우 등 터지는’ 약소국이 되느냐? 저 사막의 여우처럼 사자와 곰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실속을 취하느냐, 힘이 약한 대다수 제삼국의 피할 수 없이 기로에 놓이게 된다. 미국과 소련-중국이 군비확장에 치중하던 20세기 후반 냉전기에 우화 속의 여우처럼 반사이익을 취하며 경제 강국으로 자라났던 일본이 지금은 새삼스럽게 ‘전쟁 가능한 국가’로 변신하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1백 년 전 열강국가의 지위를 되찾고 싶다는 욕심이 아니라면 단순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라에 더 이상 지혜는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 와중에 대한민국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명분도 잃지 않고 이익도 잃지 않는 지혜로운 계책은 무엇일까. 명분에만 매달려도 안 되고 이익계산에만 몰두해도 안 될 터이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이 와중에 오히려 자존감을 높이면서 국제정세에 주도권을 쥐는 묘책은 혹시 없을까. 차분하고도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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