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60]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 전시를 통해 소환

천건희 기자
  • 입력 2023.10.04 11:24
  • 수정 2023.10.04 12: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 내년 4월 30일까지 전시

종로서적 전시 / 촬영=천건희 기자
종로서적 전시 / 촬영=천건희 기자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책의 백화점이자 거리의 도서관이었던 추억의 장소, 종로서적을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 전시로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안에서 만났다. ‘종로서적’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애정이 모여 완성된 전시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으로 종각역 근처 지상 26층 센트로폴리스 빌딩 지하 1층에 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발굴된 유적을 전면적으로 보존한, 3817㎡ 규모의 도시유적전시관이다. 2015년 공평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부터 근대 경성까지 이르는 서울의 건물 터와 골목길이 발굴되어 도시유적을 보전하고자 2018년 개관했다. 도심정비사업에서 발굴되는 매장문화재를 최대한 원위치 전면 보존한다는 ‘공평동 룰’을 적용한 지속가능한 개발의 첫 사례이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 촬영-천건희 기자
공평도시유적전시관 / 촬영-천건희 기자

전시관 안은 유물이 보이게 바닥이 투명한 유리 데크로 되어 있고, 관람객들은 16~17세기 도시유적지를 직접 걸어볼 수 있다. 조선 시대 견평방(堅平坊)을 중심으로 한양의 시전(市廛/조선시대 종로를 중심으로 설치한 상설 시장), 궁가, 관청 등의 시설과 사람들의 생활상이 전시되어 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 촬영-천건희 기자
공평도시유적전시관 / 촬영-천건희 기자

초석과 온돌, 불탄 우물마루 유적 위에, 1/10의 모형과 실제 크기의 한옥이 복원되어 있다. ‘기와는 어떻게 이어 올릴까?’ 등 체험할 수 있는 공간들도 있고, 한복과 갓이 준비되어 있어 기념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또한 AR도슨트 서비스를 이용하여 16~17세기 건물 모습을 실감 나게 체험할 수 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세월이 잠시 멈춘 듯한 공간에서 여유있게, 무료로 유적을 감상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종로서적 전시 / 촬영=천건희 기자
종로서적 전시 / 촬영=천건희 기자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 전시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의 한쪽 작은 공간에 전시되어 있지만, 발길을 멈추고 오래 머무르게 하는 전시이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서울 종로는 1897년에 세워진 회동서관을 시작으로 예수교서회(1907), 영창서관(1916), 박문서관(1925) 등의 서점이 생기면서 종로를 ‘책전(冊廛)거리’라 했다. 그중에서 예수교서회로 시작한 종로서적은 종로의 ‘책전 거리’에서 가장 크고 한국 출판계의 중심에 있던 서점 기업이었다. 1948년에 장하구 · 장하린 형제가 ‘종로서관’으로, 1963년에는 현대식 대형서점으로 재개관하여 우리나라의 독서 열풍을 주도했다. 그러나 주변의 대형서점과 다양한 매스미디어 매체의 확산으로 월드컵이 있었던 2002년 부도로 폐점했다. 한 시대를 함께한 사회문화적 랜드마크 하나가 사라져 안타까웠다.

종로서적 전시 / 촬영=천건희 기자
종로서적 전시 / 촬영=천건희 기자

‘토요일 저녁의 종로서적 입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그들은 어디선가 자신의 이름이 들려오기를, 혹은 자신도 누군가의 이름을 외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인파로 가득한 종로 거리를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 소설가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그려진 1990년대 초 종로서적 모습.

종로서적 전시 / 촬영=천건희 기자
종로서적 전시 / 촬영=천건희 기자

오랜만에 종로서적 로고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개점 안내방송까지 들으니 종로서적으로 들어가며 책 숲에 뿌듯함을 느꼈던 마음이 떠오른다. 전시는 <서울의 오래된 서점, 종로서적>,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꿈을 키워준 나의 일터>, <사람과 사랑이 만나는 곳>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 한 권이 소중했던 시절, 책을 구입한 고객을 위해 종로서적 직원이 새 책의 겉표지를 정성스레 싸주었다. 김홍도의 풍속화 <서당도>와 보신각이 그려진 짙은 갈색의 종로서적 포장지와 쇼핑백을 보니 반갑다.

종로서적 전시 / 촬영=천건희 기자
종로서적 전시 / 촬영=천건희 기자

종로서적에 대한 추억은 단순히 유명한 약속 장소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종로서적은 1973년 황금찬의 시집 출간부터 철학, 신학 분야에서 중요한 단행본을 많이 출판했고, 사보 겸 서평지였던 계간 ‘종로서적’(1997년부터 월간)을 발행했다. 당대 지식인, 대학생들의 서평이 이 무가(無價)지에 실려 독자들과 열린 소통 공간 역할을 했다. 또한, 서점 최초로 ‘작가와의 대화’를 마련해 박완서 작가의 첫 독자 대담도 종로서적에서 했다. 1996년에 ‘작가와의 대화’에 초대됐던 은희경 작가가 종로서적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 영상과 책 「새의 선물」이 전시되어 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외국 서적은 종로서적을 통해서 구매했고, 1980년대에는 판매금지 서적 목록도 있었다. 1984년 8월에 작성된 판매 부적합 도서 목록에 종로서적에서 발간한 <민중과 사회>(한완상 저), <러시아 사상사> 등도 있어 놀랍다. 종로서적 옥상에서 촬영한 민주화 시위를 하는 젊은 학생들 모습, 관철동 젊음의 거리 축제 모습 등은 시선을 붙잡는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서점은 책을 사는 공간으로 책 읽기 중의 일부이고, 책을 뒤적이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종로서적은 ‘책을 통하여 나라의 교육과 문화에 이바지함을 기뻐하며 감사한다’는 사훈으로 우리의 독서문화, 출판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었음이 다시금 가슴에 와 닿는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장소’로서 의미를 지닌 공간인 서점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 전시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 내년 4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