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61] 박노해 사진展 ‘올리브나무 아래’…분쟁 속 끈질기게 버텨내는 평화를 일깨우다

천건희 기자
  • 입력 2023.11.06 17:54
  • 수정 2023.11.0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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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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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올리브 나무는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신이 주신 선물’이라 불린다. UN 상징 로고도 올리브 나무로 평화를 상징한다. 올리브나무가 많은 중동 지역에서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가슴 아픈 10월,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올리브나무 아래(BENEATH THE OLIVE TREE)>展이 열리는 ‘라 카페 갤러리’를 다녀왔다. 경복궁역 인근 통의동에 위치한 ‘라 카페 갤러리’는 2012년부터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을 상설 전시하고 있는데, <올리브나무 아래>展은 22번째 전시이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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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1957~ /본명 박기평)시인은 1984년 27살 때 쓴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이 당시 금서였지만 100만부를 발간했다.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勞)의 해방(解)’ 이란 문구에서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 군사정권 시절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7년 6개월 복역하다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이후 20년이 넘게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운동을 펼치며 글과 사진으로 현장의 진실을 기록하고 있다.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너의 하늘을 보아』와 사진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 『다른 길』, 『걷는 독서』 등 삶에 따뜻한 시선과 격려를 담은 책들을 많이 출판했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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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카페 갤러리’에 들어서니 초록 숲에 들어온 듯 아늑하다. 1층은 카페와 책방 공간으로 박노해 시인의 책과 사진엽서를 구입할 수 있고, 2층이 갤러리이다. 『올리브나무 아래』는 박노해 시인의 여섯 번째 사진에세이로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 등에서 만난 올리브나무에 대한 경외와 애정을 담았다. 푸른 열매와 기름을 주는 올리브 나무는 대대로 그 땅의 사람들을 지켜주는 나무이다. <올리브나무 아래>展은 동명의 책 출판 기념으로 37점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갤러리 입구, 주홍빛 토분에서 자라는 키 작은 올리브 나무가 반긴다. 전시장 안에 잔잔하게 들리는 북미 인디언의 기도를 담은 나직한 읊조림 음악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박노해 시인은 줌렌즈를 사용하지 않는다. 35mm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대형으로 아날로그 인화한 사진들은 감동이다. 흑과 백, 본질만 남아 담백하다. 흑백 필름 사진 사이 붉은 광야의 푸른 올리브나무와 풍광을 전해주는 컬러 사진들은 강렬하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이곳 전시장은 오감(五感)과 내적(內的) 체험의 장소이다. 작품마다 박노해 시인이 직접 쓴, 시와 같은 사진 캡션이 있다. 사유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품 제목과 짧은 글들은 사진의 의미를 더 크게 만든다. 문체는 간결하나 전하는 메시지는 마음에 담긴다.

「이 벽은 무너지리라」 -박노해 / 촬영=천건희 기자
「이 벽은 무너지리라」 -박노해 / 촬영=천건희 기자

거대한 분리장벽 앞에 홀로 우뚝 서서
온몸으로 시위하는 것만 같은 올리브나무.
“이 벽은 끝내 무너지고 말리라”
‘광양의 목소리’로 외치는 예언의 올리브나무 

「어린 양을 품에 안고」-박노해 /&nbsp;촬영=천건희 기자
「어린 양을 품에 안고」-박노해 / 촬영=천건희 기자

양을 품에 안은 소년이 푸른 하늘 아래 올리브나무가 일몰 빛에 실루엣으로 검어진 「어린 양을 품에 안고」는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올리브나무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푸른빛을 잃지 않지만, 천년을 살아도 키가 크지 않는다고 한다.

「천년의 사랑」-박노해 / 촬영=천건희 기자
「천년의 사랑」-박노해 / 촬영=천건희 기자

박노해 시인은 그 이유를 ‘하루하루 온몸을 비틀며 자신을 짜 올려, 사랑으로 피고 맺은 좋은 것들을 다 아낌없이 내어주고 바쳐왔기 때문이다’라며 「천년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진 한 장, 한 장이 주는 의미가 크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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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나무 아래』(느린걸음) 책은 올리브그린 컬러의 패브릭 양장본에 먹박으로 제목과 올리브나무를 새겨 촉감이 좋다. 분쟁의 폭음이 끊이지 않는 중동 한복판에서 올리브나무는 삶의 끈질김을 보여준다. 작품의 느낌이 잘 전해지는 아트프린팅과 시대정신이 담긴 경구들은 박노해 시인이 우리에게 함께 용기를 내자고 북돋는 마음을 잘 전한다.

「천년의 시작은 이렇게 」-박노해 / 촬영=천건희 기자<br>
「천년의 시작은 이렇게 」-박노해 / 촬영=천건희 기자

'라 카페 갤러리’는 박노해 시인이 2000년에 설립한 비영리단체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문화공간이다. <나눔문화>는 ‘적은 소유로 기품있게’ 살아가는 글로벌 평화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2006년에는 팔레스타인 난민촌 ‘아인 알 할웨’에 ‘자이투나(올리브라는 뜻)’라는 이름의 학교를 세워 난민촌의 희망을 계속 키워가고 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손해 보더라도 착하게
친절하게 살자
상처받더라고 정직하게
마음을 열고 살자
더디 가더라도 서로 돕고
함께 나누며 살자 / 박노해 詩, ‘참사람이 사는 법’ 中

「영혼을 위한 자리」-박노해 / 촬영=천건희 기자<br>
「영혼을 위한 자리」-박노해 / 촬영=천건희 기자

세계의 분쟁 현장과 빈곤 지역에서 그들의 절망과 희망을 사진과 글로 끊임없이 전해주는 박노해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고 응원하는 마음이다. 삶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 <올리브나무 아래>展은 ‘라 카페 갤러리’에서 2024년 8월 25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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