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⑬] CCTV와 Y씨의 가상격투기

윤창식 칼럼니스트
  • 입력 2019.11.27 10:15
  • 수정 2019.11.2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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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 수필가-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윤창식
- 수필가
-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K시 N구 H아파트 114동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주민들을 내려다보는 놈이 하나 있었다. 이름 하여 ‘슈퍼울투라 바이얼렛 감마나노 감지 CCTV’.

"요놈 봐라, 내가 뭔 잘못을 했길래 독수리눈으로 째려보는 거여?"

Y씨(당 63세)는 장난삼아 주먹을 바투 쥐고 CCTV 안구 쪽을 꼬누며 쉐도우모션으로 몇 번 주먹질을 하였다. 그러자 ‘그놈’은 너 잘 만났다는 투로 혀를 날름거리며 Y씨의 온몸을 투명카메라로 찍어대는 것이었다. 필시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컷의 동영상이 촤르르 찍혔을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H아파트에는 CCTV와 권투시합을 하는 중늙은이가 산다는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고, CCTV 앞에 주차된 고급차량의 뒷바퀴 쪽에 흠집을 내고 도망친 놈을 찾는다고 아파트 벽마다 범인 수배전단이 붙었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수차례 자수 권유 방송을 해대기 시작했다.

“아아, 킁킁, 에~, 관리실에서 알려드리겄습니다. 11월 17일 15시 33분경 114동 입구 쪽에 주차해있던 URANUS 123A 차량에 손상을 입히고 ‘쌩까고’ 있는 사람은 CCTV를 까보기 전에 자수하세요!”

Y씨는, 살벌한 문구로 써내려간 차량 손상 범인 수배전단지와 자수권유 방송에 공연히 뜨끔뜨끔했지만, 뭔 특별히 잘못이 없는 마당에 기죽어 할 필요가 없다고 다짐하였으나, 아뿔싸! 그날 저녁 7시경 Y씨 집 초인종이 울리고 문을 열고 나가보니 동네파출소 순경이 모나미 볼펜이 매달린 까만 서류철을 들고 서있었다.

“오만상(吳萬相)씨 맞습니까?”

“예, 그렇소만?”

“몇 가지 묻겠습니다. 직업이 뭐죠? 혹시 복싱선수인가요?”

“복싱선수라고요? 소싯적에는 권투경기를 꽤 좋아했소만은 지금은 아니요.”

순경은 새삼스럽게 Y씨의 주먹을 훑어보며 되물었다.

“아니라고요? 그럼 뭣 때문에 폐쇄회로TV한테 주먹질을 한 건가요?”

“아니, 권투선수만 주먹질 하라는 법이 있남요?”

“아니, 이 양반 지금 나하고 농담 따먹기 하자는 거요?”

“말인 즉 맞지 않습니까. CCTV인가, 중국공산당 관영방송인가 하는 놈이 별나게 빨간 눈깔로 나를 째려보는 것 같아서 그냥 재미로 한 번 그래본 것이고요, 그것이 뭔 죄가 될랍디여?”

“죄가 될 수 있죠! 공공시설에 대하여 미필적 고의로 행하여진 위협적 행위는 민사소송법의 쟁송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아, 그래요잉~. 몰랐습니다. 하도 심심하기도 하고, 뭐 좀 재밌는 일이 없을까 싶어 아파트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가 그놈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나온 것 같구만요.”

“그건 그렇고요. 최고급차량 손괴 사건에 오만상씨가 연루되었을 개연성이 더 큰 문제죠.”

“뭐가 어쨌다고라고라? 연루는 뭣이고 개연성은 또 뭐다요?”

“아직은 범죄관계가 명확하진 않는 관계로 그런 법률적 표현을 쓰는 거란 말이욧.”

“그래요잉~. 그렇지만, 명확하지도 않은 것을 갖고 괜한 사람 의심부터 해야 쓰겄소?”

“괜한 사람이라고요? 묵묵히 공무를 수행중인 CCTV에게 위협을 가한 행위 말고도 충분히 의심을 살만한 동영상이 더 있는데두요!”

“의심을 살만하다고요? 자동차 기쓰난 것은 전혀 모르는 일이당께요.”

“CCTV 화면을 보면 알겠지만, 11월 17일 15시 27분부터 32분까지 찍힌 동영상에 오만상씨가 URANUS 123A 차량 우측 후방 휠카바 부분을 들여다보는 화면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하하 그거요. 그 시간에 그쪽을 들여다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차바퀴를 본 것이 아닙니다.”

“그럼 뭘 봤다는 거요?”

“오랑캐꽃을 살펴보는 중이었단 말이요.”

“허허 이 사람! 점점 가관이네. 무슨 헛소리 들으려고 여기 온 줄 아시오? 파출소까지 임의동행해 줘야 겠습니다!”

“내가요? 뭣 땜시? 오랑캐꽃을 보는 것도 죄가 되나요?”

“허참, 오랑캔가 흉노족인가 하는 것은, 나는 모르겠고, 자 갑시다. 좋은 말 할 때!”

순경은 씨도 안 먹히는 소리는 하지 말라는 투로 역정을 냈다.

“가는 거야 두렵지 않소만은, 내 말 쪼깐 들어보고 가더라도 갑시다.”

“피의자 신분 주제에 되게 말이 많네. 대체 차 뒷바퀴 쪽에 무슨 꽃이 있었다는 말이요?”

“금방 말하지 않았는가요? 오랑캐꽃이라고요.”

“어디 한 번 들어나 봅시다. 오랑캐꽃이 어떻게 생긴 꽃인지...”

“제비꽃이라고도 부릅니다. 어릴 적부터 제비꽃, 아니 오랑캐꽃을 좋아했지요...”

“제비꽃이라면 나도 몇 번 본 것 같습니다만...”

“오랑캐꽃의 꽃말은 ‘겸양, 순진한 사랑’이랍니다.”

“제비나 오랑캐 하고는 안 어울리는 꽃말이군요.”

“글쎄요... 그런가요? 아무튼 그 앙증맞은 진한 보라색 꽃이 11월 중순에 주차장 시멘트 바닥 사이에 피어있더란 말이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은밀하게 그 꽃 주변을 맴돌곤 했지요. 그렇지만 차들이 하필 그곳에 주차를 할 때면 차바퀴에 꽃이 으깨질까 봐 조마조마했고요.”

“그러다가 URANUS 123A 차량이 미워졌을 테고, 그래서 자동차 휠 덮개를 발로 찬 건가요?”

순경은 제비꽃말을 이야기할 때는 사뭇 누그러진 태도를 보이다가 금세 Y씨를 유도 심문하듯 슬쩍 넘겨짚는 뽄세가 보통은 넘는 것 같았다.

“녹화 화면에 내가 발로 차는 장면이 나오던가요?”

“그것은...”

순경은 짐짓 말을 얼버무렸다.

“다행이 그 차량 바퀴가 오랑캐꽃 이파리만 살짝 건드리고 있기에 안도를 하던 순간, CCTV인가 하는 놈이 꼭 살아있는 것 같은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기에 장난끼가 발동하여 왕년의 복싱챔피언 흉내를 좀 내본 것 뿐입니다.”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차량 손괴가 발생하였고 CCTV에 의심이 갈만한 장면이 찍혀있으므로 추가조사가 불가피합니다."

그때 Y씨 집 거실에 켜져 있던 TV에서 동종의 URANUS 123A 모델차량이 우측 후방 휠카바 페인트 벗겨짐 결함으로 리콜대상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전 세계의 URANUS 123A 차량 소유주들이 제작사인 (주)안드로메다에 집단소송을 제기했지만 차량 결함의 원인은 오리무중이다는 것이었다.

그 뉴스를 훔쳐보던 경찰관은 머쓱해져 말도 없이 사라지고 오만상씨는 꿈속 같은 꿈을 꾸었다.

전 세계의 자동차 관련 석학들과 생태학 연구자들이 K시 N구 H아파트 114동 전체를 전세 내어 불철주야 연구한 끝에 드디어 차량 결함의 원인을 밝혀내는 데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즉, 오랑캐꽃 떨기에서 피어오르는 미세한 생태물질이 고도의 기술로 제작된 URANUS 123A 차량의 휠카바에 닿으면 페인트칠이 벗겨진다는 사실을...

(Y씨는 오늘도 여전히 쉐도우모션을 취하며 오랑캐꽃을 찾아다니는 꿈을 꾸곤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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