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39] 두루마리 휴지 생각

오은주 기자
  • 입력 2020.04.01 10:55
  • 수정 2020.04.0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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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왜 하필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두루마리 휴지일까? 민자씨는 텔레비전으로 코로나 관련뉴스를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소위 선진국들에서 이번 코로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일반 국민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화장실용 두루마리 휴지 사재기 광풍이라며 각국 마트의 텅 빈 휴지 매대를 연신 보여주었다.

이 현상에 대한 이론은 분분했다. 일단은 심리적인 이유로, 불안정한 시절에 집에만 있으려니 집안에 썩지도 않으면서 부피가 큰 휴지더미를 쌓아놓으면 무언가 준비를 해놓았다는 안정감을 준다는 설, 현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기 위한 물품이 바로 두루마리 휴지라는 설, 마스크와 동일한 펄프가 재료라서 생산차질로 구입이 어려워질까 봐 그런다는 설 등 해석이 분분했다. 정답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 모든 해석의 종합일 것 같앗다.

민자씨는 지방 도시에서 성장했지만, 어린 시절에 시골 외가나 친가에 갔을 때 화장실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기억과 화장실이 뿜어내는 냄새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져서 유쾌한 추억은 아니었다. 뒷간이라고 안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혼자 가기도 무서웠고, 불안정한 널빤지 위에 발을 걸치고 겨우 변을 보고 나면 또 까끌까끌한 신문지 쪼가리를 접었다폈다 몇 번을 해서 좀 부드럽게 만든 뒤에 써야 했다.

지금의 우리나라 60대 이상은 대부분 이런 기억 하나쯤 가지고 있어서 한풀이라도 하듯 자신의 집안은 물론, 전국의 도로휴게소와 공원에 깨끗한 화장실과 하얀 두루마리 휴지를 구비하기에 이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만 휴지 사재기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거기에 관해서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었다. 집 근처에 슈퍼가 많아서 차를 타고 계획적으로 구입하러 가지 않아도 언제든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달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다 등의 이유가 유력했다.

민자씨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친구와 전화를 하다가 우리나라는 왜 휴지 사재기가 없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너 그거 모르니? 우리나라는 이사하면서 받은 휴지랑 세제를 보통 다음에 이사할 때까지 쓰잖아~ 집집마다 두루마리 휴지랑 세제는 엄청 많지 않나?”

정답이 그거였나? 정답은 아닌듯한데 적어도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답이라 파안대소하며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하긴 민자씨네 집만 해도 앞으로 3-4개월은 쓸 만큼의 세제와 휴지가 쌓여있긴 했다. 미국이 난리라고 해서 미국에 이민을 간지 40년이 된 큰언니에게도 전화를 했다. 언니는 뉴욕 근교의 주택단지에 사는데 단지 입구에 차단시설을 해놓았다고 한다. 더구나 뉴스에서 본 것처럼 웃지 못 할 현실을 겪고 있었다.

“대형마트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이 밀려서 생필품을 사지 못할까 봐 아예 시니어 입장 시간을 저녁 6시로 정해놓고, 입구에서 기본적으로 화장실용 휴지와 부엌용 휴지 한 박스씩 던져준단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언니는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고 정말 빨리 무섭고도 종잡을 수 없는 이 상황이 종식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어떤 지인이 전쟁의 반대말이 평화인줄 알았는데 ‘일상’이더라고 말했다. 그랬다. 민자씨도 두루마리 휴지가 그냥 언제든지 살 수 있는 생필품일 뿐이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기만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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