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41] 경로우대 받아들이기

오은주 기자
  • 입력 2020.05.0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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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5년생인 윤자씨는 생일이 3월이라 얼마 전에 만으로 65세가 되었는데, 65세 생일 며칠 전에 주민센터에서 우편물이 왔다. 주민센터의 옛명칭이 동회라 아직 주민센터가 입에 붙질 않은 윤자씨는 “동회에서 나한테 올게 없는데 뭐가 왔지?”하며 봉투를 뜯었다. 수도권 전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어르신 교통우대카드를 발급받으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법정 만65세 생일 바로 다음날부터 사용이 가능하다는 내용과 더불어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기차표, 고궁, 영화관 등의 안내가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윤자씨는 “내가 살아온 날이 이렇게도 길었나? 나는 이제부터 경로우대를 받아야 하는 불편하고 약한 나이인가?”하는 서운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3년 전에 먼저 경로우대 나이가 된 남편과 친정 언니도 이런 복잡한 마음이었을 텐데 별나게 내색을 하지 않았던 걸 보면 그들이 더 성숙하고 자신만 아직 늙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싶기도 했다. 지난 시간에 대한 회한이 쌓여 가는데 ‘경로’라는 단어는 앞으로의 시간을 온통 회색으로 덧칠하는 것 같은 고약한 기분을 주었다.

그러나 거울을 들여다보니 아직 얼굴에는 주름이 많지 않았고, 허리에 손을 얹어보니 여기가 허리요, 하고 허리선이 탄력은 없지만 남아 있었다. 남들은 절대 자신을 65세로 보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일주일 후 윤자씨는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을 타고 친구들 모임에 가기로 했다. 지하철 역사에서 왠지 주변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서 이용객이 제일 적은 맨 끝줄에 서서 통과하는데 ‘삐빅’하는 두음절의 소리가 났다. 지금까지는 ‘삑’하는 단음절이었는데 경로우대무임승차는 ‘삐빅’하는 두음절의 소리가 나는 게 꼭 ‘이제부턴 인생 2막입니다’하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지하철 역무원이 저렇게 젊은 아주머니가 경로우대를? 하는 의심의 눈길도 주지 않는 게 자못 서운했다. 그래서 지하철이야 지급받은 우대교통카드로 접촉을 하고 타니까 나이를 속일 수가 없다지만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나이를 아는 영화관이나 공원에서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윤자씨는 잔뜩 궁금했다.

마침 남편과 함께 경기도의 한 자연휴양림을 가게 되었는데 벌써 경로우대 3년차에 접어든 남편은 당연한 듯 매표소를 그냥 지나쳐갔다. 그런 남편을 따라서 매표소를 지나 몇 걸음을 가던 윤자씨는 되돌아왔다.

“저 주민등록증 보자는 소리 안 해요?”

매표소 여직원이 웃으며 물어왔다.

“아, 네. 올해 새로 경로우대 나이가 되셨나 봐요?”

윤자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경로우대 나이가 안됐는데 입장료 몇 천원 아끼자고 속이는 분들도 없고요, 워낙 나이보다 젊어들 보이셔서 옛날 기준으로 보면 저분은 65세 안됐을 것 같은데 생각하고 주민등록증 보면 다들 65세가 넘었더라구요. 그래서 이젠 젊어 보이는 분들도 굳이 보자고 안 합니다. 그냥 본인이 경로우대요 하면 통과시킵니다. 왜요? 어르신도 내가 이렇게 젊어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65세 이상으로 보이나 싶어서 서운하신가봐요?”

윤자씨는 뭔가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몹시 겸연쩍었다.

“어르신이 기부하시는 셈 치고 입장료 받을까요?”하고 매표소 여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윤자씨는 아니라고 역시 웃으며 손사레를 치고 나서 저 멀리 앞서 걸어가는 남편을 뒤 쫒았다. 윤자씨는 경로우대 초보의 시간을 이렇게 보내면서 서서히 순응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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