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44] 졸혼을 꿈꾸다가

오은주 기자
  • 입력 2020.07.0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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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정말이었다. 명자씨는 남편이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은퇴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남편 성수씨는 60살이 되면서 늘 입버릇처럼 자신은 교사정년인 만 62세에 은퇴하고 나면 고향인 전라도 목포 외곽의 주택에 홀로 살고 계신 아버지를 돌보러 내려갈 터이니 명자씨에게 지금의 서울집에서 편히 살라고 말해왔다. 명자씨는 졸혼이랄지 선택적 별거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아무튼 하나뿐인 딸이 결혼을 한 뒤의 한가로운 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명자씨는 좋아하는 영화도 실컷 보고 저녁에 모이는 독서클럽에도 가입해서 사색과 토론도 하고, 밥할 때를 따라 움직이는 시간표가 아니라 자신의 몸이 시키는 대로 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꿈꾸었다. 학창시절처럼 밤새 책을 읽다가 잠이 들어서 점심때쯤 태평하게, 아무런 의무가 없는 상태로 일어나보고도 싶었다. 남편이 가 있는 시댁에는 가끔 가서 반찬을 해놓고 오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지난 3년간은 소용돌이치는 변화의 시간이었다. 우선 예기치 않게 시아버님이 심장마비로 쓰러지더니 황망하게 돌아가셨다. 남편은 아쉽게 시골집을 정리하고 꿈을 수정했다. 이번엔 은퇴 후에 서울 근교에 집을 얻어서 텃밭을 가꾸면서 산다는 것이다.

“텃밭농사는 내가 다 알아서 지으면서 살아갈 테니 일정이 없을 때만 가끔 와서 말동무 해주고 푸성귀 가져가고 그러면 될 거야.”

명자씨에겐 나쁠 것 없는 두 번째 계획이었다. 남편은 양평으로 퇴촌으로 텃밭이 딸린 전셋집을 보러 다녔다. 지난 2월에 드디어 기나긴 교직생활을 정년하고 당당히 ‘연금남’으로 은퇴한 성수씨는 이제 꿈대로 살아볼 요량이었다. 양평역 근처에 마음에 드는 조그만 단독주택을 얻자 바로 봄이라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 명자씨도 꿈꾸던 새로운 생활을 조금씩 구체화시키고 있었다. 주말에 가보면 남편 성수씨는 언제 서울사람이었나 싶게 자연에 순응하는 농부처럼 표정도 느긋해졌다. 명자씨는 진정한 졸혼이란 이런 맛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딸네집에 일이 생겼다. 딸은 직장에 다니는 터라 시댁 근처에 살았다. 시어머니가 아침저녁으로 4살난 손녀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시켜주고 딸애의 퇴근시간까지 돌봐주었는데, 그만 덜컥 이른 나이에 몸 한쪽에 중풍이 오는 바람에 이젠 손녀를 돌볼 수가 없게 되었다. 자연히 딸은 명자씨에게 SOS를 쳤고, 어쩔 수가 없이 명자씨는 손녀를 돌보기 위해 딸네집에 월요일 아침부터 금요일 저녁까지 살게 되었다. 남쪽 신도시에서 명자씨가 사는 강북까지 매일 다니는 건 불가능해서 아예 주중 입주를 해버린 것이다.

금요일 밤에 집에 돌아오면 몸이 피곤해서 독서는커녕 바로 잠들기 일쑤였다. 토요일에 남편이 있는 양평집으로 가보면 언제부터인가 남편의 표정에서 여유보다는 독거노인의 그림자가 얼핏 비치는 것 같아 마음이 마냥 한갓지지는 않았다. 딸네집 살림을 하다보니까 남편에게 밑반찬이라도 만들어다 줄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왠지 축이 나고 팔자주름이 깊어진 것 같은 남편의 얼굴을 보면서 명자씨는 생각에 빠져 들었다.

‘부부는 같이 살아야 하나? 멋진 졸혼은 역시 이룩하기 어려운 이상일 뿐인가?’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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