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46] 튀긴 통닭

오은주 기자
  • 입력 2020.08.10 17:39
  • 수정 2020.09.04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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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br>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br>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br>​​​​​​​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br>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br>2019년 조연문학상 수상<br>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br>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여고생 영지는 어디선가 풍겨오는 튀긴 통닭 냄새를 맡았다. 아빠가 오늘 저녁에도 또 통닭과 곰보빵을 사가지고 집에 들어온게 아닌가. 도대체 술에 취하거나 공연히 기분이 좋은 날 아빠가 통닭을 사온 세월이 몇 년간이던가? 영지가 기억하기론 자신이 초등학교 4,5학년 정도였을 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처음엔 영지도 저녁 늦게까지 졸린 눈을 비비면서 아빠가 사가지고 올 통닭을 기다린 적도 있었는데 이젠 솔직히 친구들이랑 먹는 양념치킨이 더 입맛에 맞았다. 어떤 날은 따뜻한 통닭이 든 봉지를 아빠가 기분이 좋다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박자에 맞춰 휙휙 돌리는 바람에 닭이 다 해체되고 곤죽이 돼버린 적도 많았다. 도대체 아빠는 왜 질리지도 않고 튀긴 통닭을 사온단 말인가! 매번 맛있게 먹는 엄마는 또 왜 그런가?

“영지야, 아빠는 이 세상에서 통닭이 제일 맛있더라. 기름에 통째로 튀긴거나 전기구이면 더 좋고 말이야.”

“아빠, 요샌 다들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양념치킨을 배달로 시켜먹지 아빠처럼 일부러 시장에 가서 기름에 통째로 튀긴 닭이나 전기구이 통닭을 사먹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아빠도 알아. 아빠 식성이 진짜 아재식성이지? 우리 영지도 아빠가 어렸을 때 무척 가난하게 살았단 얘기는 여러 번 들었지? 지금 할머니가 살고 계신 그 시골 집도 네가 보기엔 초라할텐데, 아빠 어렸을 땐 그냥 초가를 겨우 면한 슬레이트 지붕집이었어. 아빠랑 삼촌이랑 서울에서 취직하고 결혼해서 집을 장만하고 나서 7, 8년 전에 개축해 드린거야. 아빠 나이 45살 쯤이었지…”

영지 아빠가 약간 목이 메려고 하는 순간 옆에 있던 엄마가 보조발언을 시작했다.

“아빠가 서울에 집 장만하고, 할머니네 집 개축해드리고 나서부터 통닭을 사오기 시작했지~. 그때부터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생긴거고 아빠는 평소에 품어왔던 소위 로망을 실현시켜보고 싶었던거지.”

영지는 웃음이 나왔다.

“닭튀김에 무슨 로망씩이나 결부해.”

“아빠는 지금 할머니가 사는 집을 떠나 삼촌이랑 같이 읍내로 가서 중학교를 다녔거든. 친척집 방 한 칸이라 자취는 면했지만 늘 배가 고팠어. 중학교 2학년 땐가. 학년초에 학급반장에 당선된 친구의 엄마가 반장턱을 낸다며 우리반에 기름에 튀긴 통닭 3마리를 가져왔어. 노란 종이봉투에 담겨 있다가 책상 위에 펼쳐진 통닭에서 나던 그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라니! 아빠는 그때까지 국물이 더 많은 닭백숙이나 닭죽은 먹어봤어도, 기름에 튀긴 닭은 처음이었어. 반원이 30명이니까 10명이 닭 한 마리를 나누어 먹은 셈이라 두세 쪽밖에 못 먹었지만 그 강렬한 맛은 늘 아빠의 가슴 속에 갈증으로 남아 있었어. 내가 돈을 벌면 날마다 저 튀긴 통닭을 사먹겠다는… 그래서 아직도 술을 마시면 그 충동이 일어서 시장 안에 있는 튀김 닭집으로 저절로 발길이 향하는가봐. 우리 영지가 지겹다니 이제 그만 사올까보다… ”

영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빠, 미안, 그냥 계속 튀긴 통닭 사오세요. 더 맛있게 먹을게요.”

“그래? 근데 내가 이 통닭 너한테 얼마나 더 사줄 수 있을지 몰라. 아빠 회사 나오면 뭐해 먹고 살지? 너는 그땐 대학생일텐데 등록금 걱정 안하고 공부만 할 수 있게 뒷바라지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면 행복하다는데, 아빠는 행복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통닭을 좋아하니까 요즘 퇴직자들이 몰린다는 프랜차이즈 치킨가게를 차려볼까? 그게 어울릴까? “

영지는 자신이 아빠에게 답을 줄 수 없다는 막막함에 빠졌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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