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의 앙코르 라이프⑱] 초대 손님

김경 기자
  • 입력 2020.09.04 11:57
  • 수정 2021.01.18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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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1997년 [신세대문학] 이문구 선생 추천.2000년 [월간문학] 신인상 수상.2012년 제37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2017년 제13회 만우박영준문학상 수상.단편소설집 [얼음벌레][다시 그 자리] (세종우수도서)중편소설집 [게임, 그림자 사랑]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장편소설 [페르소나의 유혹]
1997년 [신세대문학] 이문구 선생 추천
2000년 [월간문학] 신인상 수상
2012년 제37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2017년 제13회 만우박영준문학상 수상
단편소설집 [얼음벌레]
[다시 그 자리](세종우수도서)
중편소설집 [게임, 그림자 사랑]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장편소설 [페르소나의 유혹]

무대에는 현악 4중주단이 자리를 잡고, 객석에는 초록 식물들이 빼곡하다. 이 낯선 풍경은 무엇이지? 나는 신문에 실린 정체불명의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사진 설명을 읽고서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바르셀로나 리세우 대극장에서 열린 우세르 현악 4중주단의 리허설이다. 곡명은 푸치니의 현악 4중주 <국화>인데, 화분들이 관중으로 참석했다. 식물을 초대한 연주회라니, 기발한 착상이다. 초록식물의 대잔치다. 모처럼 식물들이 귀한 초대를 받았다. 코로나 시대의 진풍경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화음이 울려 퍼진다. 생기 있는 이파리가 선율에 따라 하늘거리기도 하고 서로 몸을 비비대며 박수를 치기도 한다. 식물도 우리 인간처럼 음악을 즐긴다. 음악에 취해 안온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운 공존이다. 우울한 코로나 시대에 사진 속의 화분들이 더없이 상큼하게 다가온다. 몇 달 동안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사태로 지구촌은 오늘도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다.

온갖 동물들의 집합지인 중국 우한의 한 시장에서 공포의 바이러스가 출현했다. 코로나19바이러스라는 명칭 아래 급속도로 지구촌을 뒤흔들어댄다. 사망자수는 상상을 초월하고,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어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더욱 더 전파력이 강한 변종까지 내보인다. 사스, 메르스를 거치면서 대비를 했건만, 아니 사실 대비라고 할 것도 없다. 전혀 준비가 없었다. 무방비 상태가 준비라면 준비였다. 코로나19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의 민낯이 노출되었다.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이 가장 최악의 사태로 치달았다. 이제 과학자들의 조심스런 우려까지 나왔다. 코로나가 독감처럼 일상일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두렵기 짝이 없다. 모두가 다 인간이 스스로 일으킨 재앙이다.

바이러스는 홀로 독립해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니다. 살아 있는 세포에 기생해야만 그 증식이 가능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중간숙주가 천산갑으로 판명되었다. 인간이 천산갑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동물은 동물의 삶이 있고 인간은 인간의 삶이 있다. 예로부터 서로 다른 종은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런던이나 파리에 야생동물 레스토랑이 있다. 코뿔소, 원숭이, 박쥐 등이 아프리카에서 공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일찍이 생태학자나 환경운동가들이 그토록 경고장을 날렸는데도 모두가 모르쇠로 무시했다. 문명에 홀린 인간이 오직 문명의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물이 코로나바이러스다.

지구가 앓고 있다. 자연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인간은 너나할 것 없이 앞 다투어 자연을 파괴해왔다. 동물의 공간을 인간이 함부로 빼앗은 형국이다. 지구 생태계의 마지막 보고인 아마존의 산림마저 얼마나 많이 훼손되었는가. 인간과 자연은 별개의 독립체가 아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면서 또한 자연 그 자체다.

최재천의 《호모 심비우스》의 대목들이 생각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생물들의 생존방식이 나온다. 생물들은 끊임없이 경쟁하면서 진화하고 살아남는데, 거기에는 네 부류가 있다. 포식, 기생, 공생, 경쟁이다. 지구 생태계에서 가장 막강한 두 생물 집단인 식물과 곤충을 예로 든다. 그들은 서로 물고 뜯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 손을 잡음으로써 지금까지 생존해왔다. 자연계에서의 강력한 생존의 힘은 경쟁보다는 공생이다. 작가는 마침내 지구의 모든 생명체와 함께 살아갈 줄 아는 새로운 인간, ‘호모 심비우스’를 제안한다. 21세기의 인간은 현명한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공생하는 인간인 ‘호모 심비우스’라고. ‘호모 심비우스’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호모사피엔스’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다시 신문의 사진을 본다. 2,292개의 객석을 가득 채운 2,292개의 식물 관객은 여전히 흐르는 음악에 호흡을 맞춘다. 이 공연은 온라인으로 생중계되었다.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은 음악과의 만남에서 식물들과의 만남으로, 참으로 의미 깊은 장을 열었다. 어쩌면 이 낯선 풍경이 앞으로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가는 또 다른 익숙한 모습으로 진화하지 싶다. 자연과 인간이 한 공동체로서 함께 숨 쉴 때, 지구는 시나브로 치유되어갈 것이다. 자연을 보존하는 일이 인간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는 길임에 틀림없다.

토요일 오전의 여백을 채워준 공연에 감사한다. 오후에 동네 공원산책을 하려 했는데, 취소해야겠다. 대신 베란다에 있는 화분들을 모두 거실로 초대하면 어떨까. 식물들 틈에서 그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이다. 아레카야자, 관음죽, 군자란, 백양금, 게발선인장, 산세베리아, 제라늄, 동양란…. 나는 커피 한 잔을, 화분들은 시원한 냉수 한 잔씩을 홀짝이며 소소한 얘기라도 나눠야지. 관음죽의 이파리를 하나하나 손으로 쓸어본다.

이 더위에 초록을 유지하느라고 애쓰는구나. 제라늄은 어찌 그리 부지런하게 꽃을 피우니? 매일 환기에 물에, 사랑까지 듬뿍 주잖아요?

오늘따라 이파리 한 장 꽃잎 한 장이 더없이 사랑스럽다. 그들과의 작은 인연이 오늘따라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문득 내가 객관적으로 보이듯, 신문의 사진 한 장에서 새삼스레 식물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자연과의 친밀한 유대관계를 꿈꾼다. 자연이 우리에게 최고의 초대 손님인 것처럼, 우리도 자연의 최고 손님이 될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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