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㉒] 피싱당한 M자 손금

윤창식 칼럼니스트
  • 입력 2020.10.16 14:52
  • 수정 2021.01.1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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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수필가-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윤창식
-수필가
-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Y씨(67세)는 어릴 적에 바닷가에서 살아서인지 어떤 반찬보다도 파래김은 빼놓지 않고 밥상에 올린다.

그날도 노인일자리 창출의 역군으로서 가로수길 잡풀 제거 작업 끝에 받은 돈으로 'GH고향파래김' 36방짜리로다가 두 세트나 사서 둘러매고 집으로 돌아왔다.

"해우(*)는 역시 고향파래김이 최고라니께! 음~"

Y씨는 파래김을 참기름에 살짝 찍어먹으며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워디서 온 전화여? 모르는 번혼디?"

전화를 받을까 하다가 근로봉사대를 함께하며 알게 된, 옆 마을 에쓰누나 삼순씨가 신신당부한 말이 떠올랐다.

"어이 동상, 몰르는 전화가 오먼 절때로 받지말어잉. 내 전화나 잘 받고~. 요세 보이시 핏씽인가가 마누라 전화도 헷갈리게 한다더만..."

Y씨는 엊그제 삼거리에서 삼순이 누나에게 6천원짜리 짱뚱어탕 한 그릇 사준 효험이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는 득의의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밥상을 물리고 잠시 숨을 고르는 중에 Y씨의 뇌리에는 방금 전에 걸려온 전화가 문득 아깝다는 미련이 미련스럽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까 전화 맨 앞 숫자가 뭐더라? 010은 아니었고?... 응~! 070 맞어 맞어!"

Y씨는 GH파래김 포장지 겉면에 적힌 제조회사 전화번호를 확인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파래김 포장지에도 아까 걸려온 전화와 똑같은 번호가 적혀있는 게 아닌가! Y씨는 뭔가에 계속 말려들고 있었다.

"그 동안 내가 말이여, GH고향김을 월마나 많이 팔어줬는디, 사람이라면 거그서도 나한테 사례 정도는 하겄지~. 안 그려? 흐흐."

Y씨는 혼잣말을 하며 야수룩한 맘을 먹고는 전화를 건다.

Y : 거그 고향파래김 회사 맞지라잉?

GH : 네. 그렇습니다만, 고객님 무슨 일이시지요?

Y : 아, 맞구만요. 거그서 걸려온 전화를 못 받었는디요잉.(안 받어놓고는)

GH : 저희쪽에서 고객님께 전화 드린 적이 없는데요?

Y : 전화 안했다고요? 분명히 거그 번호가 찍혀 있는디요?

GH : 아, 어르신. 요즘 전화 사기도 많구요. 스미싱주의보 못 들어보셨어요?

Y : 시미씽? 고것이 뭐다요?

GH : 스미싱은요... 아, 저희가 좀 바빠서 죄송하지만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Y씨는 전화기를 들고 있던 손바닥을 망연히 내려다본다. 손바닥에는 빨간 볼펜으로 동그랗게 표시된 'M자 손금'이 Y씨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젠장맞을! 맞는 게 하나도 없네."

Y씨는 지난 번 면사무소 문화센터에서 가르쳐준 손금 보는 유튜브 동영상에 재물운이 있다는 M자 손금을 자랑스럽게 표시하고 다녔으나 이제 보니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허허. 유튜분가 물놀이 튜분가 몰라도 괜한 손금은 봐가지고 상처나 받고 말이여. 늘그막에 무슨 요행수나 바라다니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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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우 : 해의(海衣)의 남도 방언. '해의'는 김(해태海苔)을 말하며, '바다의 옷'이라는 매우 시적인 어휘임. 이에 대응되는 지의(地衣), 즉 '바위옷'과 같은 미세식물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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