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㉙] 코카서스 3국을 가다3_올드시티 바쿠, '처녀의 성'과 '시르바샤 궁전'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12.10 12:00
  • 수정 2020.12.3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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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시티 바쿠, '처녀의 성'과 '시르바샤 궁전'

옛날에 이곳을 다스리는 왕이 살았는데,

그만 공주인 메이든을 너무 사랑했다고 한다.


이에 견디다 못한 공주는 아버지에게 탑을 세워달라고 하고,

탑이 완성되자 꼭대기에서 투신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광적(狂的)인 사랑이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고성 풍경. 촬영=윤재훈)
(고성 풍경.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BaKu>는, 놀랍게도 수면보다 28m나 낮다. 투발로우 같은 섬나라들은 지금 바닷물에 잠겨가고 있는데,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바쿠라는 지명은 페르시아어의 ‘바트쿠베’ 즉 ‘산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이라는 뜻이다.

공용어는 아제르바이잔어이지만 소련에서 독립한지 얼마 안되어서인지 러시아어도 통용된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터키인과 비슷한 아제르바이잔인이다.

도시 중심부에 자리잡은 올드 시티는 이체르 셰헤르Icheri Sheher라 부르며 12세기에 러시아를 막기 위해 성을 쌓았으며, 거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성 안에는 골목들이 서로 미로처럼 얽혀있고 아름다운 옛 건축물들이 여행자의 발길을 잡는다.

(메이든 타워. 촬영=윤재훈)
(메이든 타워. 촬영=윤재훈)

11세기에 건립된 시그니갈라 미나레트(첨탑)와 성벽이 여행자의 발길을 막는다. 중국의 거대하고 웅장한 성에 비하면 소박함 마저 들지만, 보존이 잘 되어있다. 그중에서도 12세기에 지어진 <메이든 탑>과 15세기의 <시르반샤 궁전>이 대표적이다.

처녀의 성이라고도 알려진 메이든 타워는 27미터로 지금은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높은 빌딩이 없는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카스피해와 시가지를 시원하게 전망할 수 있다. 현지인은 2마낫인데, 관광객은 5배인 10마낫이다. 우즈베키스탄은 22배까지 더 받은 관광지도 있었다.

메이든 탑 주변에는 당시의 실크로드 교역터를 형상화해 놓은 조형물도 있다. 원통형 모양의 독특한 탑인 메이든 탑은 성곽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 탑은 페르시아, 아랍, 터키, 러시아 등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가 반영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바쿠가 실크로드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역사적인 유적에는 전설이 깃들기 마련인데, 이곳 메이든 탑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을까 궁금했다. 가장 유력한 전설로는,

옛날에 이곳을 다스리는 왕이 살았는데, 그만 공주인 메이든을 너무 사랑했다고 한다.
이에 견디다 못한 공주는 아버지에게 탑을 세워달라고 하고
탑이 완성되자 꼭대기에서 투신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광적(狂的)인 사랑이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하는데, 서양의 어느 이야기책에서나 본 듯, 구조가 비슷하다.
또는 한 번도 공략당하지 않아 그런 이름이 붙어 졌다는 속설도 있다.”

두 시대에 걸쳐 축조된 이 탑은, 지름 16, 5m에 높이 29, 5m로 8층까지 올라가는 놀라운 원통형 구조로 되어있다. 아래쪽 벽은 5m이며 상층에 벽의 두께는 3, 2~4m로, 각 층은 중간에 작은 구멍이 있고 낮고 둥근 천장으로 덮여있다.

아래 3층은 기원전 6, 7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천체 관측소나 조로아스터교의 예배 장소로 추정된다. 그 증거로 2, 3층에 움푹 들어간 부분에서 수직 통로가 아래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 통로로 꺼지지 않은 불꽃을 피우기 위한 연료(천연가스)가 공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층부에는 12세기 건축물을 기념하기 위한 ‘쿠베이 메수드 인 다우드’라는 고대 아라비아 명문이 있다.

(하맘. 촬영-윤재훈)
(하맘. 촬영=윤재훈)

지붕에 여러 개의 작은 돔들이 있는 <하맘>이다. 이란의 카산을 지나면서도 특히 많이 본 듯한데, 옛 시절 목욕탕이다. 이들의 목욕법은 우리와 다르게 상당히 독특하며, 생활 속에서 중요한 한 의식인 듯하다. 미로 같은 통로를 따라 돌 위에서 누워 쉴 수 있는 공간들이 많다.

(시르반샤 궁전. 촬영=윤재훈)
(시르반샤 궁전. 촬영=윤재훈)

15세기에 지어진 <시르반샤 궁전>은 당시 수도였던 셰마키에서 지진이 나자 바쿠로 옮겨와서 다시 지은 것이다. 왕의 집무실과 접견실, 연회장과 거주공간, 사원과 첨탑 등이 조밀하게 들어서 있다. 궁전 건물 벽에는 총탄의 흔적이 선명하다.

구시가지에서 최초로 알려진 마드라사Madrasah는 12세기에 문을 열었으며. ‘배우기’와 ‘어떤 장소’를 뜻하는 셈어가 결합된 것이다. 즉 ‘배우거나 연구하는 장소’로 ‘모든 종류의 학교’를 뜻한다.

16세기에는 ‘세이이드 야야 바쿠비’라는 저명한 학자가 시르반샤 궁전에 현대 대학의 원형, 예술 과학원이라는 ‘다룰푸눈’을 세웠다. 그러나 시르반샤의 주가 몰락하면서 바쿠의 교육기관은 점차 줄어들고, 1806년까지 구시가지에 모스크에 의해 유지되는 12개의 초등 및 중등학교인 ‘몰라카나’만이 남아 있었다. 그 후 3개의 학교만이 20세기까지 살아남았다가 모두 문을 닫고, 현대식 유치원과 주립 세속학교가 세워졌다.

현재까지 불교가 국교이며 대다수의 국민들이 붓다를 믿은 동남아권의 타일란드나 미얀마 등에 가면 사찰에서 그런 역할을 해오고 있다. 골목마다 절들이 있어 지금도 마을에 대소사를 주관하고 있으며, 특히나 옛 시절에는 교육기관은 물론 마을에 기근이 들며 식량를 나누어 주고 심지어 병자까지 치료했다. 그야말로 마을의 사랑방이였던 셈이다.

지금도 그 역할은 비슷한 것 같다. 남자들은 일생에 한 번 이상은 출가를 하는데, 그때 마을과 사찰에서 축제가 열리며, 결혼이나 상(喪)이 나도 사찰에서 주관하여 열린다. 마을 사람들은 아침마다 가장 정갈한 음식과 각종 제수를 준비해서 스님들께 탁발하며, 수시로 머물다가 온다. 마당을 가로질러 볼 일을 보러 가기도 하고, 밤이면 청소년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기도 한다.

(옛 페르시아인들의 생활 모습이 잘 드러난다. 촬영=윤재훈)
(옛 페르시아인들의 생활 모습이 잘 드러난다. 촬영=윤재훈)

올드시티는 아제르바이잔 북부에서 6세기부터 16세기까지 번영했던 시르반샤 왕조 시대의 유적이다. 왕조는 1191년 수도 샤카키가 지진에 의해 처참한 피해를 입자 바투로 수도를 옮기고 도시 둘레에 성벽을 쌓았다. 그리고 ‘시르반샤 세이크 이브라힘 1세(1382~1417)’ 때 동양식 2층 건물로 지어졌으며,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시르반샤 궁전은 아제르바이잔 건축양식의 진주라 불려진다. 시르반 샤호프칸 일족에 의해 지어진 이 궁전은 14~15세기에 걸쳐 지어졌으며, 모스크, 회의장, 영묘 등이 잘 어우러져 지어졌다. 18세기에 러시아 해군의 포격으로 상층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18~20세기에 걸쳐 복구하였다. 궁전의 보물들은 처음에는 타브리즈에 이전되었고, 이후 이스탄불의 토카프 궁전에 전리품으로 이전되었다.

코카서스 3국 중 유일하게 이슬람 국가이며, 그래서 이슬람인 터키와 친하고, 기독교 국가인 아르메니아와는 오랫동안 숙연 깊은 견원지간이다.

(페르시아 세계적인 시인, ‘니자미간자비.’ 촬영=윤재훈)
(페르시아 세계적인 시인, ‘니자미간자비.’ 촬영=윤재훈)

아제르바이잔은 중세 페르시아가 낳았다는 세계적인 시인 <니자미 간자비Nezami Ganjavi>의 고향이다. 12세기에 활동한 문학가로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었으며, 그의 대표 5부작 장편 서사시인 ‘함세Khamseh’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 호스로우와 펠하드가 서로 사랑한 여인 쉬린을 향한 이야기이며, 아직도 이슬람권에서 사랑받는 설화 중 하나다.

(니자미 간자비의 대표작 ‘함세’에 나오는 ‘쉬린의 목욕’)
(니자미 간자비의 대표작 ‘함세’에 나오는 ‘쉬린의 목욕’)

이 비극적인 사랑이야기 속은 여주인공 쉬린은 세밀화에서 호스로우와 함께, 때로는 펠하드와 함께 등장한다. 특히 ‘쉬린의 목욕’은 문학 필사본의 삽화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세밀화 주제 중 하나이다

마치 노출을 허용하지 않는 이슬람 회화의 보수적인 면과 화가의 상상력 사이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보여주고 있는 듯한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묘한 긴장감까지 선사한다. 마치 조선 시대 풍속화의 대가 신윤복의 그림까지 떠오르려 한다.

1921년 소비에트연방에 점령당한 이후에는 많은 작가들이 처형되고 문학 작품들이 판매금지 되었다가, 1980년대 후반 개방정책 이후 민족 문학으로 부활하였다. 전통무용 중에서는 중세시대부터 내려오는 북부 산악지대 다게스탄(Dagestan)인들의 춤인 ‘레스긴카(Lesginka)’가 가장 인기를 끌고 있다.

음악으로는 ‘머그엠(Mugam)’이라는 독특한 형식이 있는데, 종종 재즈에 비유되기도 한다. 가수, 카만차 연주자와 타르 연주자로 구성된 트리오가 가장 인기 있다.

(“내 아이스크림 어디 갔어, 어 아저씨 손에 있다. 촬영=윤재훈)
(“내 아이스크림 어디 갔어, 어 아저씨 손에 있다. 촬영=윤재훈)

청년이 아이스크림 하나를 팔아도 자신만의 장기가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그냥 보내지 않는다. 한참 아이스크림으로 눈을 현혹시키며 놀리다가 준다. 그의 유쾌함에 손님이 끓이지 않지만, 모두들 그의 장난과 함께 논다. 아제르바이잔의 밤공기를 가르며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끓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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