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65] 신화가 살아 숨 쉬는 땅, 조지아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8.18 18:02
  • 수정 2021.08.1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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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살아 숨 쉬는 땅, 조지아

“처처불상(處處佛像)이고, 사사불공(事事佛供)이며,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다.”

(1,500년를 견딘 메테히 교회.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신화가 살아 숨 쉬는 땅, 조지아의 옛 수도는 지금도 그 흔적이 짙게 배어있는 ‘므츠헤타’였다. ‘트빌리시’로 수도를 옮긴 것은 5세기 <바흐탕 골르가살리 1세(King Vakhtang 1 Gorgasali)> 때였다,

왕은 어느 날 매를 들고 꿩사냥을 하다가 꿩을 잡은 매가 뜨거운 연못에 빠져 죽은 것을 보고 온천이 있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수도를 옮겨 그곳을 <따뜻한 물이 나오는 땅>이라는 의미로 트빌리시라고 이름 지었다. 그 후 이 도시는 유황온천으로 유명해졌으며 지금도 ‘터키식 온천탕’이 경험하기 위해 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오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나리칼라 요새 아래에도 오래된 온천탕이 있다.

(어머니! 다시는 이 나라에 외세의 침략이 없게 해 주소서. 촬영=윤재훈)
(어머니! 다시는 이 나라에 외세의 침략이 없게 해 주소서. 촬영=윤재훈 기자)

요새에서 바라보니 쿠라강 깎아지른 절벽 위로 1500(or 5세기경)년간의 풍파를 간직하고 있는 퇴락한 교회가 하나 보이는데, 어딘가 모르게 기품있어 보인다. 바로 트빌리시 창건신화를 간직하며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조지아 정교회 ‘메테히 교회(Metekhi Church)’이다. 5세기 이베리아 왕국(Iberia Kingdom)의 수도로 트빌리시를 세운, 32번째 왕 ‘바흐탕 골르가살리 1세’가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 지었다. 메테히는 12세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궁궐 주변 지역’이라는 뜻이다.

마당에는 고개를 깊이 숙인 말을 탄 왕이, 손을 들어 선서라도 하는 듯 건너편 나리칼라 요새를 보고 서 있는 동상이 있는데, 1961년 조각가 ‘엘구자 아마슈켈리’가 만들었다. 마치 굴곡진 역사를 교훈 삼아 다시는 외세를 받지 말자고, 나리칼라 요새 위에 우뚝 솟아있는 ‘조지아 어머니상’에 맹세라도 하는 것 같다. 동병상련의 우리 역사가 아프게 다가온다. 그 아래로는 마치 백제의 슬픈 역사가 서린 낙화암처럼 절벽이 이어지고, 쿠라강의 푸른 물결이 묵묵히 안으로 삭히며 흘러간다.

(메테히 교회와 바흐탕 골르가살리 1세. 촬영=윤재훈)
(메테히 교회와 바흐탕 골르가살리 1세. 촬영=윤재훈 기자)

현재의 모습은 13세기경 조지아의 왕 ‘드미트리오스 2세’의 명으로, 1278년부터 약 6년간에 걸쳐 건립되었으며, ‘메테히 승천교회’라고 불리기도 한다. 건물 한 쪽 부분을 수리하고 있다.

무려 37번이나 다시 지어진 이곳은 처음에 왕궁 교회로 지어졌는데, 그 수난사는 처절하다. 17~18세기에는 카르트리를 지배했던 이슬람 왕 ’로스톰(1633~58)‘이 병사 3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요새로 건립했다. 1801년 러시아 식민지 시대에는 교회의 기능은 완전히 상실하고 군사용 막사로 이용되었으며, 구소련 통치 기간에는 극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819년에는 새 건물로 복원되면서 악명 높은 감옥으로 사용되다가, 1938년 폐쇄되었다.

건물은 조지아 정교회의 전통 건축양식을 따르지 않아 더 특별하다. 중세시대 성행했던 십자돔(Cross Cupola) 형태로, 지붕을 3개의 반원형 벽과 4개의 기둥으로 지탱하고 있다. 조지아 정교회로서는 특이한 형태인 돔으로 지어졌고, 동쪽 정문에 있는 4개의 기둥은 옛 형태로 지어졌다. 처음에는 벽돌을 쌓아 올리고 밖은 돌로 장식되었으나, 17~19세기에 들어와 수차례 훼손되고 복구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교회 안마당에는 세 개의 종이 있는데, 나리칼라 요새에도 두 개의 종이 있다. 세계의 유명한 성당이나 교회에는 천 년 이탈리아 종의 명가 ’마리넬리‘ 종이 달린다고 하는데, 이곳은 어떤지 궁금하다. 최근에 강화에 있는 한 성당에 3,000만원 상당의 마리넬리 종이 달렸다고 한다. 교회 내부는 동쪽 아프시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 매우 온화한 느낌을 준다.

(나리칼라 요새와 오른쪽에 조지아 어머니상. 촬영=윤재훈)
(나리칼라 요새와 오른쪽에 조지아 어머니상. 촬영=윤재훈 기자)

5세기 아르메니아 성녀 ’수사닉(440~475)의 무덤이 있는 곳에 왕궁을 세우고 요새를 지었다. 그러나 1235년 몽골군이 침입으로 폐허가 된 이후로 이를 확인할 구조물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오랜 풍화에 견디며 1,500년을 훌쩍 넘겨 퇴락을 거듭해 가는 교회, 그 어깨가 쿠라강의 물빛 아래 더욱 쓸쓸하고 고적해 보인다.

조지아 출신으로 구소련의 통치자 스탈린도 한때 이곳에 투옥된 적이 있다. 붉은 군대가 주둔(1936~38)하던 공포시대에는 교회를 완전히 파괴하려고 하자, 조지아의 지식인들이 일어났다. 그 선두에 ’디미트리 세바르드나제‘라는 유명한 화가가 나서자, 당 서기장이었던 ’라브렌티 파블로비치 베리아‘는 회유를 하기 시작했다.

교회는 박물관에서 볼 수 있도록 하겠으며, 박물관장 자리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거부하자 감옥에 가두었다가 처형했다. 그만큼 이 메테히 교회는 조지아인들에게 특별한 곳이며, 그들의 힘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수난의 현장이다.

안이 워낙 좁아서 신자들이 많이 모여 예배를 보기는 힘들겠다. 남편과 같이 온 여성은 여기까지 와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혼자 앉아있다.  종교처럼 무서운 이데올로기가 있을까?

“처처불상(處處佛像)이고, 사사불공(事事佛供)이며,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다.”

(메테히 교회 수난의 현장. 촬영=윤재훈)
(메테히 교회 수난의 현장. 촬영=윤재훈 기자)

교회 안에는 유명한 그림이 하나 있는데, 슬픈 역사가 숨어 있다. 1235년 원나라가 침입하여 단지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을 살육했다. 메테히 교회와 므크바리 강 건너 솔로라키 언덕 쪽에 있는 교회를 이어주는 다리가 있었는데, 그 위에 예수님과 성인들의 성화를 깔아놓고 밟고 지나가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성화를 밟고 지나가지 않으면 무조건 죽여, 강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림 상단부에 그 광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1980년 말 조지아 총대주교였던 ’일리아 2세‘와 훗날 조지아 대통령이 되는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 등은, 공산주의자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교회 복구를 위한 캠페인을 벌여, 1988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메테히 교회 담 풍경. 촬영=윤재훈)
(메테히 교회 담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메타히 교회 담 아래에는 많은 사람이 붐비면, 음악 소리 드높다. 흥청거리는 인파 속에서 소지품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담에 바싹 붙어있는 구형 벤츠 옆에 한 사내가 나를 부른다. 마이크라고 찍힌 명함을 주는데, 여기서 자가용 영업을 하는 모양이다. 옛 수도 므츠헤타까지는 25분여 걸리며, 가는 데는 45라리, 오는 데는 15라리라고 한다. 디두베 매트로역에서 내려 마슈르카를 타고 가면, 단돈 1라리(440원)인데, 너무 비싼 것 같다.

세상에나! 타슈켄트에서 만나 일본에서 대학에 다닌다던 스무살의 한국 청년 이민석을, 여기에서 다시 만났다. 참 세상은 넓고도 좁다.

(대통령궁. 촬영=윤재훈)
(대통령궁. 촬영=윤재훈 기자)

올드시티가 막 끝나는 지점 난간에는 사람들이 기대 않아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흥성거리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쿠라강변이 내려다 보이는 술집 마당에는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횡단보도가 잘 되어있지 않는 거리에는 사람들이 신호등을 거의 지키지 않으며, 태연하게 거리를 넘나든다. 단속하는 사람들도 없다. 언덕 쪽에는 그 옛날 우리의 핏빛 역사가 서린, 조선총독부를 닮은 대통령궁이 보인다. 광복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

(평화의 다리. 촬영=윤재훈)
(평화의 다리. 촬영=윤재훈 기자)

다리 중간쯤에 검정 차도르를 깨끗하게 입은 여성이 구걸을 하고, 그 옆에서는 자식들이 뛰어놀고, 남편도 서 있는 듯하다. 자식이 있는 여성은 참 강한 것 같다. 막 다리를 건너자 반짝이는 불빛 아래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르바이트를 아가씨들이, 쿠라강 보트 관광(Boat tour) 표찰을 목에 걸고 호객을 한다. 커다란 건물마다 조명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깊어가는 밤이 사람들을 더욱 설레게 만든다.

조지아의 지도 오른쪽에는 카스피해가 있고, 왼쪽에는 흑해를 접하고 있어서일까? 강 위에 하얀 갈매기가 유유히 난다.

(버섯 모양의 예쁜 건물. 촬영=윤재훈)
(버섯 모양의 예쁜 건물, 시청. 촬영=윤재훈 기자)

케이블카 탑승장(2,5라리)이 있는 리케공원을 지나 강가를 따라 걷고 있는데, 버섯모양의 아주 예쁜 건물이 있다. 콘서트홀이라 되려나 짐작했는데, ‘시청’이라고 한다. 사방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어 궁금했는데, ‘투명한 행정’을 하기 위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한다.

모든 관공서를 비롯한 경찰서까지 다 유리로 되어있다고 하니, 마치 언젠가 만연한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전쟁을 한다던, 우리나라에 도입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렇게 예쁜 시청사는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도 옛날부터 정부 건물들을 거의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깨끗했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그 옛날 아버지가 파출소나 동사무소에 갈 때는, 항상 자그마한 박카스 박스을 들고 가던 뒷모습이 새롭다.

더구나 얼마 전에는 검찰청에서였나? 자기편만 감싸고 돌다 기자들의 망원 카메라에 잡혀, 멀쩡한 유리창까지 다 막던 촌극을 잊을 수가 없다. 이 나라 역시 의도는 참 좋은데, 결과는 어떨지 무척 궁금하다

(쿠라강의 화려한 야경. 촬영=윤재훈)
(쿠라강의 화려한 야경. 촬영=윤재훈 기자)

오색의 불빛이 휘황한 ‘평화의 다리’ 아래에 있는 시티공원에서는, 레미레자블 주제가에 맞춰 분수쑈가 화려하게 물을 뿜는다. 다리 중간쯤에는 10대 아이들이 모여 어설프게 춤 연습을 하며, 돈 통을 흔든다.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는 예닐곱 살쯤 보이는 아이들 둘이 조잡한 타악기를 두드리고, 네다섯 살쯤 보이는 여동생이 돈을 달라며 계속 손을 내민다. 조금 부족한 듯도 보이는 엄마는 그 옆에서 하염없이 쿠라강만 내려다보고 있다. 다리 끝에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면 악기를 치기 시작하고, 지나가면 이내 멈춘다. 이 나라는 이렇게 빈부의 격차가 심하나? 이 해맑은 아이들은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할까, 아이들 앞에 밝은 햇살이 비치기를 기도해 본다.

“마치 구걸과 현실의 구분이 없는 나라처럼 보인다.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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