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㉚] '이순재의 리어왕'에서 진실을 보는 지혜를 얻다
[천건희의 산책길㉚] '이순재의 리어왕'에서 진실을 보는 지혜를 얻다
  • 천건희 기자
  • 승인 2021.11.11 14:03
  • 댓글 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관악극회 제공
사진=관악극회 제공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인간의 삶은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내면의 진실함을 보지 못한 잘못된 선택으로 비참한 결말을 초래하는 세익스피어 비극 이순재의 <리어왕>을 지난 11월 3일,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관람했다.

이순재의 <리어왕>은 ‘관악극회 창단 10주년’ 및 ‘이순재 배우 무대 인생 65주년’ 기념으로 이루어진 무대로, 세익스피어 ‘리어왕’ 원작에 충실했다. 세익스피어 희곡모음 중에서 가장 권위 있다고 인정받는 정전본 3500행 원전 대사를 모두 무대에 구현하여 공연시간이 3시간 20분이나 된다. 배우 이순재는 올해 88세로, 1956년 연극을 시작해 현재까지 65년 동안 약 350편의 작품에 출연한 대한민국 대표 배우이다. 리어왕 역을 맡은 배우로는 최고령의 기록으로, 총 23회 공연 동안 단독 캐스트로 출연한다니 그 열정과 체력이 놀랍고 기대가 되었다.

CJ토월극장 1000석 좌석은 코로나 방역으로 비워둔 좌석 외에는 만석으로 가득 찼다. 막이 오르자 1600년대 영국 왕실을 옮겨 놓은 듯, 촛불 장식과 아치형 입구가 있는 고전건축물이 고풍스럽고 배우들의 의상도 화려하다.

사진=관악극회 제공
사진=관악극회 제공

브리튼의 늙은 왕 리어는 세 딸의 효심 크기에 따라 왕국을 나누어 주고, 자신은 편안한 노년을 꿈꾼다. 리어왕 이순재의 걸걸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무대를 압도한다. 첫째 딸 고너릴과 둘째 딸 리건은 영토를 받을 욕심으로 과장된 말로 아부를 하고 자신들의 몫을 챙긴다. 그러나 막내 딸 코딜리어는 자신은 자식의 도리를 다하여 아버지를 사랑할 뿐이라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말한다. 격노한 리어는 고너릴과 리건에게 왕국과 권력을 모두 물려주고 코딜리어는 왕국에서 추방시킨다. 왕국을 물려받은 두 딸은 점차 본색을 드러내고 결국 리어왕은 폭풍우 치는 광야에 버려진다. 딸들에게 버림받은 리어는 분노와 고통으로 광인이 되어 버린다.

사진=관악극회 제공
사진=관악극회 제공

인터미션 후 무대는 욕망의 세상에서 공허한 세계로의 전환을 보여주듯 중앙에 커다란 고목이 쓰러져 있어 황폐하다. 리어왕의 신하 글로스터 백작은 서자인 에드먼드의 이간질로 인하여 적자 에드가를 내쫓고, 버려진 리어왕을 도왔다는 이유로 두 눈을 뽑히게 된다. 결국 탐욕과 질투로 리어왕의 두 딸이 죽고, 자기를 구해주려던 막내 딸마저 죽임을 당하자 리어왕도 죽는다.

<리어왕>은 페스트가 유럽에 창궐하여 런던의 극장가가 모두 문을 닫았던 17세기 펜데믹 시대에 세익스피어가 전염병을 피해 집에서 격리하던 중 집필한 작품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이 연상되는 대사와 장면이 많았다.

두 눈을 뽑힌 글로스터 백작이 “갈 길이 없으니 눈도 필요 없다네. 있으면 자만하고 그때서야 깨닫지”라며 스스로 삶을 포기하려 할 때, 아들 에드가의 말은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인간은 세상에 올 때처럼 떠날 때도 견디는 거예요. 때가 무르익도록.”

사진=관악극회 제공
사진=관악극회 제공

오만함과 분노에 눈이 가려 막내딸 코딜리어의 진심을 몰라본 리어왕이 폭풍우 몰아치는 광야에서 본인의 어리석음을 통탄하며, 헝클어진 머리와 공허한 눈빛으로 회한에 사무친 독백 또한 마음을 울린다.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아. 이 모진 폭풍을 어떻게 견뎠는가.

나는 그동안 너무나 무관심했구나.

인간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으면 벌거숭이 두발짐승일 뿐이다.

부자들이여! 가난한 자의 고통을 몸소 겪어보라.

넘쳐나는 것들을 그들과 나누고 하늘의 정의를 실천하자.”

 

관악극회는 시대의 사회적 주제를 투영하는 작업으로 공연예술계에 새로운 기풍을 조성하고자 대학 연극회 출신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2011년 창단된 극단이다. 지난 10년간 일반 상업극단에서 시도하기 힘든 동서양의 고전 명작 희곡들을 무대에 올렸다. 앞으로도 시대정신과 교감하는 순수 공연예술의 보루로 순수 연극 애호가들의 자부심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구순을 바라보는 이순재 배우의 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에 감사와 큰 박수를 보낸다. 이순재 배우와 함께 출연한 소유진, 이연희, 오정연, 유태웅, 권해성, 임대일, 그리고 관악극회 출신인 최종률, 박용수, 김인수, 이석우, 최기창, 김승주, 염인섭 등 후배 연기자들의 연기력이 돋보이는 무대였다.

진실을 볼 수 있는 지혜로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연극 이순재의 <리어왕>은 11월 21일까지 이어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5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소은정 2021-11-14 22:57:27
리어왕 작품 자체도 멋지고 울림이 많아 보고 싶은 연극입니다. 기사의 사진을 보니 이순재 배우님의 열정이 더해지고 함께 무대를 꾸민 배우나 스탭들의 정성도 느낄 수 있네요. 연극을 직접 보고 느낀 벅참을 애써 담담히 소개 해주셔서 더 직접 보고 싶게 되네요. 좋은 기사 감사드려요.

이규봉 2021-11-12 15:20:46
연극 스토리보다 대사가 더 와 닿네요.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황량한 벌판에서 리어왕의 후회의 독백이 들리는 듯합니다. 천기자님이 연극 내용뿐 아니라 느낌도 전해주네요.

려은맘 2021-11-12 13:43:44
공연의 설레임까지 느껴지는 기사 감사합니다.
꼭 한번 보고싶네요~~

고경은 2021-11-11 17:44:50
또 한번의 가을이 지나갑니다.
젊은날의 리어왕과 십수년이 지난 지금의 리어왕은 울림자체가 다르네요.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박미정 2021-11-11 16:23:38
인생의 장중함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잔잔한 삶이 축복이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